전국산행일기

한반도를 내려다 보는 정선 상정바위산(2007.8.5)

거꾸로 흐르는 맑은물 2007. 8. 12. 23:47

산행모임 '더불어한길' 총무를 맡고 있는데 요즘 산행대신 풍력발전에 빠져있다. 풍력을 위해 오랫동안 평창에서 지내다 보니, 여름 정기산행이 흐지부지 될 위기에 처했다. 총무의 준비 소흘에 더해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한길사람들이 여름휴가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임시로 산행 장소는 강원도 산으로 정하고 날짜도 미리 잡아 놓았다. 산행일정이 가까워져 평창에 내려올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해 보았다. 다행히 봄날이라는 친구가 그날 산행이 가능하다고 하였고, 약속한 날짜에 평창에 내려왔다.
 
비록 한 명이지만, 오랜만에 더불어한길 사람을 만나니 반갑고, 멀리 떨어진 곳까지 친구가 찾아오니 몇 배는 더 좋았다.
옛말에,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멀리 있는 벗이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멀리서 온 친구에게 평창읍내에서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숙소에 들었는데, 빗소리가 심상치 않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니 새벽에 강원도 평창, 영월 지방에 호우경보가 내려져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아침 시간을 보내다가 일단 산 아래까지 가보고 산행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다행히 굵은 빗방울이 가늘어지고 있지만, 하늘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
 
처음 산행장소로 택한 곳은 동강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평창 미탄면 백운산. 하지만, 백운산 가는 길이 침수되어 중간에서 차를 돌린다. 두번째로 향한 곳은 정선의 명산 가리왕산. 가리왕산 휴양림 매표소에 들러서 산행 가능여부를 물어봤더니 어은골로 올라가는 짧은 코스는 비가 많이 와서 올라가기 힘들 것 같고, 중봉으로 돌아가는 능선은 가능하다고 한다. 이미 오후 1시가 다 돼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가리왕산 산행도 힘들다. 정선군 산행안내지도를 살펴보다가 산행시간이 짧을 것 같은 상정바위산으로 향했다. 삼세번, 마지막 시도다.
 
정선읍내를 지나 진부로 가는 59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조양강(동강 상류)을 건너 문곡리 마을을 지나고, 작은골 입구에 있는 '추억의 조양강'이란 찻집 앞에 차를 세운다. 오후 2시가 가까워오지만, 비는 완전히 그치고 파란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산행 준비 상태를 점검하고, 폭우로 물이 콸콸 흐르는 작은골 계곡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평창 청옥산에 두 달가량 머물면서 매일 4륜구동차를 타고 산을 오르내렸지만, 이렇게 걸어서 산행을 하니 색다른 기분이다. 청옥산에서 일할 땐 해발 300미터에서 해발 1200미터까지 매연을 뿜어 되는 차를 타고 편하게 출퇴근하던 게 익숙해졌는지 산행시작한 지 얼마가지 않아 숨이 턱아래까지 차오른다. 나름 고지대에서 생활하고, 땀 흘리며 일을 많이 해서 체력이 튼튼해진 줄 알았고, 그래서 산을 더 잘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산을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고 심장박동이 높아지며 몸이 너무 무기력해진다. 
 
봄날은 "너무 힘들면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가요"라고 한다. '산을 다닌 게 몇 년인데 이렇게 산행 초입에서 내려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오기가 생긴다.  충분히 쉬고 느린 발걸음으로 천천히 가는데 5분 지나니 힘이 든다. 온몸이 땀으로 젖다가 조양강바람에 땀이 식으면 금세 으슬으슬 추워지기를 반복한다.
천천히 1시간 정도 올라가니 그제야 몸이 풀리고 호흡이 안정이 된다.

시작부터 곤욕스럽던 된비알 대신 상대적으로 경사가 덜한 산행길이 이어지더니, 한반도 지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엊그제는 들렀던 영월의 한반도지형과는 또 다른 모습의 한반도 지형이다. 
전망대 지나고 부터는 봄날과 얘기도 하고, 주변 새소리도 듣고, 달팽이도 보고, 여름 숲도 보면서 여유를 되찾아 산을 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작은골 입구를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상정바위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한반도 지형 모양의 정상석이 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20미터 정도 가니 전망대가 있는데 주변 조망이 시원하다.

강 건너 서쪽에는 우뚝 솟은 가리왕산이 구름 속에 숨어있고, 남쪽으로 보이는 높은 산군들은 정선 남면의 민둥산, 지억산, 곰봉 등으로 추측한다. 동쪽으로는 고양산과 동해로 넘어가는 청옥산으로 보이는 고산이 보인다. 북쪽으로 백석산이 가깝게 보인다. 상정바위산 주위에는 도시나 마을보다는 산과 강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 여기에서 살았으면 아리랑이 절로 나왔을 텐데, 이제는 잘 보존된 산과 자연이 지역의 훌륭한 자연유산이 되었다.
 
때로는 자연의 험난함과 싸우고 때로는 같은 사람들과 싸우면서 민초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한 맺힌 삶을 살았을지 상상해 본다. 자연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훨씬 풍족해진 현재의 삶과 몇 백 년 전의 삶 중에서 어느 삶이 더 나는것을까? 과거에 비하면 먹을거리 구하기가 훨씬 쉬워진 2007년 대한민국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고생하고 한이 맺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닌 것 같다.
 
상정바위산 정상에서 복숭아 간식을 먹으며 무릉도원의 신선놀음을 하다가, 천천히 하산을 시작한다. 오를 때와 달리 하산은 힘들 일이 없지만 젖은 길에 몇 번 미끄러워 넘어졌다. 작은골과 큰골 갈림길에서 큰골방향으로 하산을 하여 큰골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만난다. 아침에 내린 많은 비에 물이 불어 난 큰골 계곡을 건너다 발이 살짝 빠지기도 한다.
꽤 높은 산이고 힘들게 올랐지만, 3시간 30분 만에 산행 들머리였던 '추억의 조양강' 찻집 앞에 도착한다. 땀을 많이 흘렸기에, 작은골 계곡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올라가 발가벗고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씻어낸다.
 
정선 읍내로 돌아와 유명한 곤드레나물밥 집을 찾아 저녁을 먹고, 평창을 거쳐 장평터미널에서 봄날을 서울로 떠나보낸다. 강원도 평창과 정선의 고산들은 산행도 좋고, 드라이브하면서 여행을 하기에도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 한번 찾아보시라.

산행 후기의 후기
2007년 9월, 상정바위산 이름과 같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대선출마를 한다고 해서 많은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략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눈앞의 기득권만 지키려는 정파에 의해 진보정당의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산행지 : 상정바위산(1006m 강원도 정선)
날  짜  : 2007년 8월 5일
날  씨  : 구름 많음
산행코스 : 정선군 문곡리 -작은골(추억의 조양강) - 능선-전망대-정상-전망대-큰골-추억의조양강
산행시간 : 3시간 35분(13:40~17:15 )
일행       : 봄날, 맑은물
교통       : 승용차 (동서울이나, 원주에서 정선 가는 버스 이용, 정선에서 시내버스) 


[포토 산행기]

 [아침에 내린 폭우로 정선, 평창에 비 피해 발생] 
 

 [방황 끝에 도착한 상정바위산 작은골 입구] 
 

 [산에 든다. 잠시동안만~] 
 

 [달팽이가 많았다. 등산로 달팽이는 가끔 사람과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소나무, 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작은골로 정상에 올랐다가 큰골 방향으로 하산] 
 

 [상정바위산의 꽃] 
 

 [많이 보긴 하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꽃 같지만 버섯입니다~] 
 

 [드디어 보입니다. 한반도 지형, 당연히 똑같을 순 없죠. 하지만 비슷한 게 어디예요?] 
 

 [상정바위산을 알리는 정상석입니다] 

 

 [큰골 방향으로 하산하던 중, 전망대에서~] 
 

 [물이 많이 불어 난 큰골 계곡] 
 

 [8월은 칡꽃이 피는 계절이기도 하죠? 아직도 강원도에 가면 피어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입니다. 오른쪽 구름 속의 가리왕산부터 조망이 좋습니다. 클릭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