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멈춘 틈에 연인산 매봉-경반계곡 산행 (2009.7.11)
기상청 발표에 의하면 올해 장마는 근 몇 년 만에 찾아온 장마다운 장마라고 한다. 더불어한길 사람들하고 주말에 산에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주중에 남부지방을 비롯하여 서울경기지방에도 많은 비가 내려서 걱정이 됐다. 마침 토요일에는 장마전선이 잠시 쉬어 계획된 산에 갈 수 있었다.
연인산 매봉을 거쳐 경반계곡으로 내려올 계획으로 청량리에서 [먼 발치에서]와 홍성에서 올라온 [산바람]을 만나 8시 30분쯤 청평행 버스를 탄다. 나름 일찍 출발했는데 토요일이라 길이 밀린다. 다음 주에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경춘국도의 정체가 좀 덜해지겠지. 15년 전 춘천으로 MT를 갈 때는 부분 부분 2차선의 좁은 국도였는데, 어느새 왕복 4차선의 국도가 뚫렸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고속도로까지 뚫리게 되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흐리고, 차량 증가는 멈출 줄 모른다.
길이 막혀 버스가 서행하고 있지만 더불어한길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대성리쯤 도착하니 차창밖으로 장맛비로 물이 많이 불어난 북한강이 보인다. 북한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승천을 돕고 있는 강 건너 화야산 산세가 유난히 멋져 보인다. 청평댐은 수문을 열어 흙탕물을 엄청나게 흘려보내고 있다.
청평 버스터미널에서 다행히 현리 가는 임시버스를 바로 갈아탔다. 조종천 수량이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여 참 보기 좋다. 경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종천과 가평천을 가지고 있는 가평군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축복받은 지역임에 틀림없다.
현리에서 10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으나, 산행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택시를 타고 올해 1월에 연인산 정상(우목봉) 산행 때 원점회귀 산행을 했던 마일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그땐 영하 15도 아래로 떨어지는 엄동설한에 꽁꽁 얼었던 계곡이, 지금은 살아 움직이듯 곳곳에 물길을 만들어내며 흐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확하게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산행코스이다.
엊그제 가평지방에 200mm 가량의 큰비가 온 덕분에 물길이 되어버린 등산로를 따라 우정고개까지는 힘들지 않게 오른다. 우정고개에서 왼쪽(북동쪽)은 우정능선으로 해서 연인산 정상 가는 길, 오른쪽(남서쪽)은 매봉을 거쳐 깃대봉, 대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우리는 계획대로 매봉으로 향한다.
매봉으로 이어지는 방화선에는 초록 억새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우정고개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오르던 [산바람]이 페이스가 떨어지는 더불어한길 정신에 맞게 속도를 늦춰 산행을 한다. 방화선에는 하얀 개꼬리 같은 까치수염이 곳곳에 피어있는데, 꽃봉오리가 작아 곤충들에게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도 벌과 나비들이 까치수염에 모여들고 있다. 우리가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까치수염만의 매력이 있을 테지......
오늘 산행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매봉정상에 도착해서 도시락을 먹는다. 이번에는 특별히 먼발치에서가 점심을 준비해 왔다. 집 근처 텃밭에서 키운 싱싱한 채소와 그걸로 만든 반찬을 가져왔다. 항상 입으로만 진보를 말하는 나보다 하나라도 실천하는 먼발치가 훨씬 앞서 있다.
억새밭 한가운데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매봉정상을 지나 깃대봉 방향으로 1km 약 30분가량 진행하다가 경반계곡으로 내려서는 이정표를 만난다. 계속 직진하면 깃대봉을 지나고 대금산, 청우산을 거쳐 조종천으로 내려가거나, 불기산을 거쳐 주발봉 호명산까지 능선이 이어진다. 물론, 불기산과 주발봉은 경춘국도로 갈라져있긴 하다. 이정표에서 방화선 능선을 버리고, 경반계곡을 찾아 숲 속으로 내려선다. 7월 장마철의 숲은 습기가 많지만 끈적이는 대신 서늘한 기운이 다가온다. 이곳은 경반계곡 최상류가 될 텐데,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고, 50년 이상된 나무들을 만날 수도 있다.
숲이 끝날 무렵 경반계곡이 시작되고, 이제부터는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 임도 옆 산딸기는 시골에서 자란 먼발치에서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입속으로 달콤함을 전해준다. 임도 옆으로 계곡물이 철철 흐르는 게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계곡보다 시원하다. 불어난 계곡물을 징검다리를 통해 건너고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물소리가 멀어져서 계곡 아래를 보니 수락폭포인듯한 폭포가 보이지만, 폭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너무 가팔라서 포기하고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우측 편으로 계곡을 거슬러 수락폭포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5분 정도 계곡을 따라 오르자 나타나는 거대한 물줄기. 그냥 내려갔으면 멋진 폭포를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폭포라는 것이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다르겠지만, 장마철이라 수량이 풍부하여 지금까지 보아왔던 폭포 중에는 2003년에 지리산 대원사 계곡에서 보았던 폭포 다음으로 웅장한 폭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폭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기운을 맞으며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돌아 나오니, 바로 아래에 경반사라는 작은 절이 나오는데, 그 옆의 아담한 경반폭포 또한 하얀 물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경반사 아래 다리 옆 갈림 길이 나오는데, 두 방향 모두 관리사무소이다. 지도를 보고 오른쪽의 긴 방향으로 가다 보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먼발치에서와 산바람 두 사람 의견을 받아들여 되돌아와 짧은 코스로 내려간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집단지성의 힘이었다. 폐교가 되어버린 경반분교를 지나고부터는 계곡물을 여러 번 건넌다. 계곡물 가로지르기를 수십 번이나 했던 지난 2006년 여름의 용추구곡에 비하면 그래도 났다. 양말 벗고 계곡물 건넌 게 기껏해야 7~8번에 지나지 않으니까!
드디어 칼봉산휴양림이 있는 관리사무소에 무사히 도착하지만 여기서도 가평읍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한다. 교통편이 마땅치 않고, 빗방울도 떨어지고 해서, 내려가면서 택시를 부르고 가평읍까지 나간다. 기차시간을 기다리며 뒤풀이를 하고 경춘선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 장마철이라 곳곳에 펼쳐진 시원한 물줄기, 초록 억새와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숲, 수락폭포와 경반계곡, 야생화, 그리고 더불어한길 사람들과의 즐거운 한때까지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최고의 산행이었다.
산행지 : 연인산 매봉(929m)-경반계곡 (경기 가평군)
산행날짜 : 2009년 7월 11일
날씨 : 흐림
산행시간 : 10:55~18:20 (7시간 25분)
산행코스 : 마일리 - 우정고개 - 매봉- 갈림길 - 경반계곡 상류 - 수락폭포 - 경반폭포 - 칼봉산휴양림-가평읍
일행 : 3명 (먼발치에서, 산바람, 맑은물)
교통 : 가평군 현리(1330), 마일리(택시), 가평읍(택시), 청량리(기차)
[포토 산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