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국립공원

축구와 산행, 북한산 원효봉-염초봉(2004.6.6)

거꾸로 흐르는 맑은물 2004. 6. 15. 19:52

[원효봉 정상에서. 뒤쪽으로 백운대-만경대-노적봉}

 

 요즘 일요일 아침마다 동네 공원에서 축구를 한다. 아저씨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안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재미있다.  땀 빼고 집에 오는데, 회사친구가 산에 가자고 전화를 한다. 다리가 뻐근했지만, 산이라는 소리에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집에 가 얼른 샤워를 하고, 회사친구를 만나 산행 목적지 없이 일단 집을 나선다. 북한산, 도봉산, 수리산, 청계산 등 근교의 여러 산을 고려하며 전철을 탔는데, 이미 우리는 북한산으로 가고 있다. 북한산중에서도 최종 결정은 원효봉. 구파발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면서 내린 결정이다.

 

북한산성 입구 정류장에 내리니, 앞쪽 계곡이 시원해 보인다. 우리 목적지는 계곡이 아니고 산이다. 우리는, 백운동천 다리를 건너 원효봉 능선 오르는 길을 찾았다. 나무팻말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방향을 잡고 가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득 떨어진다. 다행히, 잠시 후 비가 그친다. 원효봉 길은 매표소가 없는 줄 알았는데, 북한산성을 통과하니 매표소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국립공원인데, 당연히 돈을 내야지 하면서도, 공짜산행을 놓친 게 아쉽기도 하다.

 

매표소를 지나 산성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시야가 확 트인다. 서쪽 시야가 먼저 트이더니, 이어 북쪽의 북한산성 계곡과 아기자기, 울퉁불퉁한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멋진 풍광을 감상하며 원효암을 지나 신바람이 나서 쭉쭉 더 올라갔더니, 어느새 원효봉이다. 백운대-만경대-인수봉을 정점으로 하는 북한산은 설악산만큼의 웅장함은 없지만, 설악산의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모습을 많이 닮았다.

 

원효봉을 지나 북문에서 하산을 할지 염초봉으로 오를지 잠시 고민한다. 염초봉 오르는 길에는 "주의! 위험등산로"라는 표지가 세워져 있다. 염초봉 등산로 입구는 그다지 험해 보이지 않아, 염초봉을 한번 올라보기로 한다. 그런데, 염초봉 오르는 길로 접어들어 얼마 안 간 지점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가파른 바위길이었지만 오를만하다는 생각에 조금씩 오르다 보니, 그냥 바위등산로가 아닌 암벽코스가 나타난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험한 구간을 어렵게 올라와서 내려가기가 더 어려워, 오르던 길을 더 올라보기로 한다.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사진을 찍으면 여유를 가져본다. 딱딱한 바위와 포옹하며 오르기를 몇 분, 마지막 바위구간만 지나면 바로 위가 염초봉이다.

 

염초봉이 바로 눈앞인데, 몇 미터 높이의 바위는 암벽 경험이 없는 우리에겐  더 올라가기가 어렵다. 가파른 암벽 길을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마침, 염초봉 위에서 우리를 발견한 아저씨가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지 말고, 고양시 효자동(밤나무골)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조언해 준다. 효자동 방향 길도 염초봉 바로 아래는 가파르고 위험했지만, 나뭇가지를 잡고 내려갈 수 있다.

 

위험 구간을 지나고, 한참을 내려가니 시원한 밤나물골 계곡이 나타나, 물속에 발을 담그고 간식과 약간의 음주. 발이 얼어붙는듯한 짜릿한 느낌은 괴롭지만 여름산 계곡에 오면 꼭 하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밤나무골 계곡 위쪽으로는 백운대-인수봉이 이어져 보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밤나무골로 해서 숨은 벽을 지나 백운대로 오르는 암릉코스(중급자용)가 있다고 한다)

 한 30분쯤 발을 담그고 놀다가, 등산로 대신 계속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밤나물골 계곡은 화강암 지형이라 흐르던 물이 갑자기 땅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밤나무골에는 작지만 예쁜 폭포도 있어서, 수량이 풍부한 계절에 오면 더 멋있을 것 같다.

계곡이 끝나갈 무렵, 굿 하는 집(?)을 지나면서 산행은 끝이 났고, 송추로 이어지는 도로 옆에서 버스를 타고 구파발로 돌아온다.

 

원효봉-염초봉 구간은 지금까지 산행중에 가장 위험했던 구간이었다. 준비도 소홀했었고, 그냥 오르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원효봉까지는 추천하고 싶지만, 염초봉은 초보자는 오르지 말아야 할 위험한 길이다. 이런 일을 통해 한번 더 산 앞에서 겸손해진다.


산행지 : 북한산 원효봉, 염초봉 

날  짜 : 2004년 6월 6일

날  씨 : 흐림

코  스 : 북한산성입구 - 원효암 - 원효봉 - 염초봉 - 밤나무골(고양시 효자동)

시  간 : 3시간 10분 (오후 2시 20분 ~ 5시 30분) 

일  행 : 2명 (맑은물, 형광등)

교  통 : 북한산성입구까지 버스 이용


[포토 산행기]

북한산

[왼쪽부터 백운대-만경대-노적봉~북한산성능선~의상능선-서울/ 클릭=큰 사진]

 

북한산

[염초봉 오르는 길, 매우 위험한 길이다.]

 

북한산

[맑은 물이 흐르는 밤나무골계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