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국립공원

크게 다칠 뻔 했던 북한산 문수봉 (2004.6.20)

거꾸로 흐르는 맑은물 2004. 7. 14. 19:44

친구들과 북한산에 가기로 한 일요일 아침 걱정에 아침 6시 무렵 깨었다. 바깥은 흐려있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티비 일기예보에서도 어젯밤에 내려졌던 호우경보는 새벽 3시에 해제되었고, 큰 비는 지나가고 소강상태라고 하였다. 산행을 약속했던 몇몇에게 문자를 보내니 답문자가 왔다.

   "얼른 오세요!"   


간단히 산행준비를 시작하여, 안산을 출발하여 서울 6호선 독바위역으로 갔다. 약속시간 10시를 40분이나 지난 시간에 독바위역에 도착했다. "봄날"과 "희망에반하여"가 기다리고 있었다.
 
역에서 나와보니 아직 흐려 있는데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먹을것을 사려다 봄날과 희망이 먹을것을 충분(?)하다구 해서, 커다란 물만 한통 샀다. 산행입구 매표소 가는길을 몰라서 산행복장을 한 어떤 아저씨를 따라갔더니, 매표소가 아닌 한적한 곳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후후, 잘하면 입장료 건져 술한잔 할 수 있겠구나~' 회심의 미소가 맴도는 순간, 멀리 보이는 독바위 매표소! 매표소를 보고는 마치 모범생인듯, '그래, 산을 오르는데 입장료를 내야 쓰레기도 치우고, 자연도 보호하지.'라고 바뀌는 생각..^^;
매표소를 지나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도 했지만, 많이 오지는 않았다. 10여분 오르니 능선길이 나왔다. 어제밤 비가 많이와서 계곡은 보이지 않지만, 아래 계곡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렸다.
 
능선을 따라 오른 쪽두리봉은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였다. 안개가 짙게 끼어있지만, 서울 은평쪽하고, 구기동쪽이 시야에 들어왔다. 쪽두리봉에는 마치 치즈같은(?)혹은 혹성에서 떨어진것 같은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날씨가 좋으면 바윗길을 바로 내려가면 되는데, 비가 내려서 공단직원이 위험 구간을 통제 하고 있다. 통제에 따라 안전한 길로 우회했다.
쪽두리봉을 지나 평탄한 길을 잠깐 걷다보니 거대한 암봉을 앞을 막는다. '저길 어떻게 올라가나?' 걱정을 하며 아래로 다가가 보니 최근 5년간 10명 정도 사망사고가 일어났다는 위험 등산로 경고판이 있다. 무엇인가 처음 예상했던 산행과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향로봉(536m)였다.
다행히 향로봉에는 우회등산로가 있었지만, 비가와서 더 미끄러워진 암벽(?)을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향로봉옆을 돌아 경사가 완만한 곳으로 올랐다. 50여미터를 오르니 암봉정상인데,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오르기는 쉬워도 계속 진행하기에는 상당히 험한 길이 이어졌다. 
여성들도 별 무리없이 그곳을 지나가는데, 아무래도 그들은 암벽이나 릿지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지, 괜히 그런곳에서 '여자들도 하는데~'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좁은 바윗길을 벌벌 떨면서 지났더니 다행히 평평한 길로 이어진다. 관리공단 직원이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이 우리가 지나쳐왔던 위험구간으로 들어가는것을 막고 있었다. '여기서 막을것이 아니라, 우리가 빠져나갔던 철조망이 있는곳에서 막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대로 안전한 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또다시 바위봉우리(비봉, 560m)가 나타난다. 
조금전에 지나쳤던 향로봉 보다 규모가 작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비에젖은 바위가 미끄러웠다. 우회로도 보이지 않고, 또 2명의 여성분이 올라가는것을 봐서 오르기로 했다.(여기서 위험한 생각을 한것이다. 여자도 오르는데, 우리라고..이런 생각은 정말 산에서나 사회생활하면서나 위험하기 짝이없다.) 바위 틈에 손을 끼우고 양발을 내딪는데 마지막에 잡을때가 없어 바위에 매미처럼 매달려 있는데, '희망에 반하여'가 손을 잡아주어서 겨우 오를 수 있었다. '봄날'은 혼자서도 잘 올라왔다.
 
다시 가슴높이정도 되는 바위를 올라야 하는데, '봄날'과 '희망에반하여'는 그냥 오르는데, 난 도저히 오를 수 없어서 허리정도 높이의 바위를 계단삼아 오를려 했다.다리를 올리고 손으로 바위를 잡고 다른 발을 떼는순간 쭉~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찔한 순간 밑을 바라보니 5m 정도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놀라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바위끝에 걸려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악착같이 바위를 잡았던 손바닥은 깊게 파여 있었고, 브레이크 역할을 했던 무릎 역시 깊게 파여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너무 놀라 다리가 떨렸고, 한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순간에 '봄날'과 '희망에반하여'는 보이지도 않았다. 
잠시 심호흡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미끄러운 바위를 올라 평평한곳에 털썩 주저앉아 휴지로 지혈을 시작했다. 그제서야 '봄날과 '희망에반하여'가 웃으며 나타났다. 
"형 왜그래요?"
"어...그냥 좀 미끄러졌어."  

일단 지혈을 시키고 마지막 남은 바위를 오르니 책에서 봤던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 정상(560m)였다. 거대한 순수비를 보고는 쩔뚝거리며 비봉을 내려갔다. 
 
비봉을 지나서는 다행히 험한 길이 없었다. 시간도 꽤 지났고, 배가 고파와서 밥먹을 곳을 찾기위해 두리번 거렸다.
그나마 평탄한 길을 10분정도 걸으니 사모바위가 나왔다. 근처 넓은 암반지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희망에반하여는 먹는것보다는 작은것을 내보내는일(?)이 급했다. 찾다가 못찾은 희망에반하여는 결국 큰 바위옆에서 일을 봤다.
일을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밥을 먹으려는데 지금까지 괜찮던 하늘에서 심술궂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펴고, 봄날이 싸온 도시락과 기타 간식거리를 배불리 먹었다. 비가오는가운데서도 비빔밥만들기에 성공했다.^^;
 
벌써 2시간 30분을 산행을 했는데, 아직 갈길이 멀었다. 아주 위험한 구간은 없었지만, 중간중간 미끄러운 곳은 많았다. 삼천리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승가사에서 올라오는길을 지나서 도착한곳은 문수봉으로 바로 오르는 길과 우회로가 만나는 곳이었다. 우회로로 오는 아저씨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릿지경험이 있으면 가도 되는데, 비도 오고해서 위험할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비봉에서 넘어져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라 위험한곳은 가고싶지 않았다.
봄날과 희망에반하여는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문수봉으로 바로 올라야 하는것 아닌가?'라는 눈빛이었다. 결정을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위험한 문수봉길로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 우리도 모두 문수봉길을 택했다.(하지만, 그분들은 경험있는 릿지길 가이드라도 있었다)
 
우회로 갈림길에서 5분 정도 숲길을 오르니 암벽이 나타나는데, 윗쪽은 안개에 싸여 보이지도 않았다. 봄날과 희망에반하여는 이번에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올라갔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나는 뒤따라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큰소리로 그들과 대화했다.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요~~~~" 가슴은 쿵쿵 뛰고 있었지만, 안정을 찾아가며 한걸음 한걸음 바위틈을 올랐다. 마지막에 위험한 바위 횡단구간이 있었지만, 마침 내려오시던 분이 바위를 안고 건너라고 가르쳐 주셔서 거의 기다시피하며 지날 수 있었다.
   
위험한 구간을 지났지만 계속 바위 위를 걷는다. 아직 문수봉 정상은 아니지만, 살짝살짝 안개가 걷히며 북한산 절경이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문수봉까지는 바윗길이 이어졌지만, 큰 어려움 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문수봉에 오르니 햇빛도 간간히 비추었는데, 멀리 고양시쪽이 보이기도 하고, 서울시내 풍광이 조금 열리기도 했다. 순식간에 열렸다가 다시 안개속으로 감춰지는 모습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먼발치'에게 전화를 했다. 수유에는 하루종일 비가온다고 했다. "여기는 문수봉 정상! 우리는 구름위에 있다. 이상~" 

뒤풀이에 불러내려고 하였으나, 일이 있단다. (정말이었을까? ^^)

 

문수봉부터는 북한산성을 따라 걸었다. 대남문에 도착하니 40대로 보이는 50여명의 산악회원들이 시끌벅적하게 닉네임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닉네임 소개는 당연한 일인데도 잠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날씨는 더 나빠지지도 않고, 좋아지지도 않고 그냥 흐린체로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북한산 백운대, 노적봉, 망경대등의 전망이 아주 좋은 구간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남문을 지나 대성문을 지나고 보국문에 도착했다. 보국문에서 정릉쪽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대동문까지 가기로 했다. 대동문에서 쉬면서 남은 간식거리를 먹었다. 작년 12월에 우이동으로 엠티를 왔다가 올라왔던 곳이다. 
 
내려가는길은 그때 올랐던 소귀천계곡길을 거꾸로 가는것이다. 그때와는 전혀다른 느낌이다. 하얀 눈이 쌓여있던 길에는 짙푸른 녹음이 우거져 어둡기까지 하다. 계곡을 따라 중턱쯤 내려오니 어제밤 비로 계곡에 물이 제법 많이 흐른다. 봄날과 희망에반하여와 함께, 시원한 등목을 했다. 단 몇초였는데, 짚고있는 손이 얼어붙는듯 하다. 발을 담그고 10초를 견디기가 힘들다.
마음같아서는 다 벗어버리고 나무꾼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교양인으로 꾹 참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할걸 그랬다.)
 
잠시후 소귀천매표소를 지나  아스팔트길을 따라 우이동 버스종점으로 내려갔다. 이쪽으로는 몇번 올라왔던 길인데, 내려가니 느낌이 색다르다. 또, 계곡에 물이 많이 흐르니 진짜 산에 온것 같은 느낌이다. 비릿한 밤나무꽃 냄새를 뒤로 하고, (지금은 없어졌을) 8번버스를 타고 대학로에서 뒤풀이를 하고 헤어진다.


#산행정보

산행지 : 북한산 비봉능선-북한산성능선 

날  짜 : 2004년 6월 20일

날  씨 : 흐림

코  스 : 독바위역 - 족두리봉 - 향로봉 - 비봉 - 문수봉 - 북한산성능선(대남, 대성, 대동문) - 소귀천계곡 - 우이동

시  간 : 6시간 30분 (오후 10시 45분 ~ 5시 15분) 

일  행 : 3명 (맑은물, 함께가자, 봄날)

교  통 : 6호선 독바위역, 우이동에서 버스


#포토산행기

족두리봉
족두리봉
치즈같이 생긴 족두리
향로봉?
홍은동으로 추정하는데, 구기동 같기도 하고 ㅠ
신라 진흥왕 순수비
사모바위
비봉능선 어딘가에서..
구름이 휘날리는 틈에 잠시 고양시 뜰이 보입니다
문수보살이 쓰고 갈 문수봉
보현봉으로 추정되고요
낮은 구름위로 올라온 우리
구름과 어울리는 비봉능선
대동문인듯.
소귀천계곡
비봉능선 파노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