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에서 산행친구의 재회(2007.5.20)

2007. 5. 31. 02:03전국산행일기

요즘 들어 더불어한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산행이 부쩍 줄어들었다.
 
갑자기 산행이 줄어든 것은 아니고, 연초록 20대를 활기차게 보내고 진초록 30대에 접어들어 생업현장에서 점점 바빠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몇십 년을 살려면 이제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야 할 때이니 바쁜 삶이 이해는 되지만, 세상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점점 더 빨리 흐르고,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일 텐데, 맨몸으로 이 세상의 격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어쩌면 부질없는 짓 같다.
 
어쨌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의미에서 5월 산행을 준비하였고, 몇몇 사람들이 주중에 산행 참가 의사를 밝혔다.
 
드디어 기대하던 토요일, 과천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전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오늘 산행에 참가하기로 한 호~옹부부와 연락이 닿아 사당역에서 만난다. 오랜만에 호~옹을 보니 무척이나 반갑다. 과천역에 도착해서 산행 들머리로 잡은 과천향교 쪽으로 걸어가는데 먼발치에서-은빛날개 부부는 갑자기 못 오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전화통화를 해보니 목소리에 시베리아 저기압에 한랭전선이 깔려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으니 금방 나아지겠지만, 오늘 산행은 호~옹 부부랑 3명만 가게 되었다.
 
호~옹 부부는 지난해 엄마, 아빠가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산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던 호~옹이 1년 넘게 산을 찾지 못한 것이다. 오랜만에 산행이라 호~옹은 꽤 즐거워 보이고 장난 심한 것은 여전하다. 관악산 계곡에도 보기 드물게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엊그제 내린 비로 인해 계곡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나무들은 선명한 연초록색이 되었고, 고운 산새소리는 그치지 않고 울려 퍼지고 있다. 오늘은 모든 게 좋다.
 
 계곡 옆길을 따라 걷다가 더우면 나무그늘 아래서 5월 바람에 땀을 날려 보내고, 차가운 계곡물에 손을 담그기도 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산행 속도를 지도에 나와있는 시간에 맞추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빨리 오르면 정상에는 빨리 도착하겠지만, 작고 아름다운 풀과 나무들, 꽃과 벌레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놓쳐버렸었던 것 같다. 특히 오늘은 아기 엄마가 된 호~옹이 오랜만에 산행에 나섰기 때문에 느린 산행을 해야만 한다.
 
이런 마음으로 느긋하게 걷다 보니 과천 향교를 출발한 지 2시간 30분이 되어 연주암에 도착한다. 연주암은 주중에 있는 석가탄신일을 맞아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었지만, 연주암은 뒤로하고 관악산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에는 몇 년 전에는 없던 정상표지석이 보인다. 
산손님들로 관악산 정상 바위는 북적거린다. 답답한 도시를 뒤로 하고 자연과 함께하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본능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이 들듯, 수천, 수만 년을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인간에게 자연을 그리워하는 유전자가 있음은 당연한 거 아닐까? 
 
정상에서 시원한 봄바람과 주변 풍광을 둘러보고, 서울대가 있는 계곡으로 하산을 한다. 이쪽 계곡으로는 여러 번 다녀보았지만,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경우는 오늘이 처음이다. 계곡물이 흐르는 관악산은 보기만 해도 맑고 시원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가끔 손을 담그면 맑은 물이 손등을 간지럽히며 '나 살아있어요'라고 말하는 거 같다. 천천히 내려가도 어느새 서울대학교 건물이 눈앞이다.
 
계곡 중턱까지 올라선 서울대학교 건물은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지만, 오늘은 인위적인 것에 불평을 하기보다는 자연적인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호~옹 부부와 관악산 광장까지 천천히 걸으며 잠깐 들렀던 관악산을 벗어난다. 호~옹 부부는 아기를 찾아 일찍 집으로 떠나고, 나는 뒤늦게 노량진에 있는 if형과 함께가자우리를 만나 산행 뒤풀이를 한다.
 
만난 사람은 헤어지게 마련이지만, 헤어진 사람도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오늘 관악산에서 만난 산새와 인사도 없어 헤어지더라도 내년 봄이 오면 그 산새를 다시 만나겠지. 인연은 사람 사이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
 
 


산행지   : 관악산 (서울, 경기 과천)
산행날짜 : 2007년 5월 20일
날 씨     : 맑고 화창
산행코스 : 과천역-과천향교-연주암-연주대(정상)-서울대
산행시간 : 11:30~17:30(6시간)
동 행     : 호~옹 부부, 맑은물
교통      : 전철, 버스 


[포토 산행기]

[봄비로 계곡이 깨끗해 졌다]
[아~ 여기가 관악산 계곡이 맞는가?]
[봄꽃이 피었어요. 노랑괴불주머니인가요?] 
[고들빼기류의 꽃도 피었습니다]
[5월 하늘은 푸르고 5월 숲은 초록입니다]
[거미는 뜨겁지도 않을까?]
[비온 뒤에만 볼 수 있는 관악산 쌍폭 ^^]
[시원하다]
[벌깨덩굴이라는 꽃이죠?]
[언제나 산손님으로 붐비는 연주암] 
[병꽃이죠? 거꾸로 하면 병처럼 생겼다고 해서요.]
[연주대 입니다]
[정상석이 언제부터 있었죠?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여백이 있는 단체사진 입니다^^]
[관악산에는 이런 멋진 바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산 나무도 이런 꽃을 피웁니다]
[하산길에 올려다본 관악산 정상, 맑은물이 흐르는 계곡]
[늘 푸르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주로 이쪽으로 많이 올랐었는데 오늘은 하산길입니다. 다시 만나겠죠? 관악산도...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