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0. 10:55ㆍ산행일기
휴가를 맞아 고향집에 며칠 머물다 보니 크게 할 일은 없고, 답답함이 느껴져 산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영월군에 있는 산을 갈려다가, 인근에서 가장 높은 가리왕산을 목적지로 향하고 정선을 지나 숙암계곡을 따라 물레방아가 돌고 있는 장구목이골 입구에 도착한다. 벌써 오후 2시다.
집에서 가져온 과일과 물병이 든 배낭을 챙기고, 서둘러 장구목이골로 들어선다.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장구목이골은 숲이 우거져 있어 따가운 여름 햇살을 피할 수 있다. 산행입구에서부터 등산로 옆으로 요란한 계곡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 정도 물소리라면 꽤 괜찮은 폭포가 있을 것 같다.
20분 정도 숲길을 따라 오르니, 나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맑은 계곡에 내려가 손을 담가보니 아주 차갑다. 앞으로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있는데, 차가운 냉기가 얼굴에 닿는다.
그늘 진 등산로를 따라 오를수록 계곡에는 이끼가 많다. 가리왕산의 북동사면을 흐르는 장구목이골과 장전계곡은 이끼계곡으로도 유명하다. 계곡으로 내려가면 이끼를 밟을 수밖에 없지만, 너무 예쁜 모습에 반해 계곡으로 내려가본다. 경사가 급한 장구목이골 계곡물은 다른 산과 달리 천천히 흐르는 곳이 없다. 작지만 아름다운 폭포와 계류가 끊이질 않는데, 작은 폭포는 작은 물방울을 바위로 튕겨내고, 촉촉한 바위에는 이끼들이 생존을 하고 있다.
보통 계곡 끝의 골짜기 상류로 가면 물이 점점 줄어들면서 물줄기가 사라지는데, 장구목이골은 수량이 많다. 왜 그런지 궁금하여 계곡을 보며 가다보니 최계곡 마지막 돌틈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면서 계곡이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그 위쪽은 지표면에는 물이 흐르지 않지만 지표면 바로 아래로는 물이 계속 흐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북동쪽면은 습기가 많아 이끼가 잘 자라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갑자기 끝나버린 물줄기를 아쉬워하며 돌너덜길을 따라 오르니, 가리왕산을 둘러싸고 도는 임도가 나타난다. 여기서 임도로 빠지면 고생을 한다고 하니 정상을 향해 직진한다. 꽤 고도를 높였다고 생각되었지만, 짙게 우거진 나무에 가려 아래쪽 조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뜨거운 여름햇살을 막아주는 나무들이 고맙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쓰러지고, 썩어가고, 그곳에는 고비를 비롯한 수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제법 키가 크고 굵은 나무들이 가끔 눈에 들어오더니, 해발 1200~1300미터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주목나무가 많이 보인다.
나무 그늘길을 올라오긴 했지만, 한여름이라 목이 마를 무렵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온다. 장구목이골 계곡은 한참 아래에서 끝났는데 무슨 소리일까? 궁금해하며 조금 더 올라가니 샘터 안내판이 나와서 가보니, 야생 풀로 둘러 쌓인 곳에 비교적 많은 물을 뿜어내고 있는 샘터가 있다. 샘터의 물은 냉동실에서 꺼낸 얼음물보다 더 차갑고 물맛도 좋아,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샘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중봉과 정상(상봉) 갈림길이 나오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옆으로는 쥐손이풀, 동자꽃, 원추리, 노루오줌 등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정상에 도착하니 사방이 막힘없이 확 트여있다. 어렴풋이 알아 볼 수 있는 산만 꼽아보아도 서쪽의 백덕산, 태기산, 북쪽으로 계방산, 오대산, 남쪽의 두위봉, 태화산, 서쪽 바로 앞의 청옥산 등이 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방위로 추정하여 동북쪽부터 발왕산, 노추산, 두타산, 함백산, 태백산, 민둥산 등 강원 남부일대의 고산들이 가리왕산을 빙 둘러싸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정선, 영월, 평창일대의 고산들이 오래전 갈왕처럼 가리왕산을 받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가리왕산은 갈왕이 피난 와서 살았다고 해서 불려진 갈왕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늦은시간이라 광대한 가리왕산의 정상에 홀로 고산의 분위기에 빠져있는데, 돌 틈에서 다람쥐가 쏙 나타난다. 다람쥐에게 과일을 주고 사진도 찍어주며 같이 논다. 한여름 높은 산 위의 하늘은 더욱 높아 보인다. 고요한 정상에서 내려가기 아쉬워 1시간 가까이 머물다가 더 있으면 늦을 것 같아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은 아직 해가 중천이었지만, 정상을 내려서자 능선에 걸려있던 해가 이내 산 아래로 사라진다. 아직 주변이 밝기는 하지만, 올라올 때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던 멧돼지의 흔적이 오싹함으로 다가온다. 산에 대해 잘못한 게 없으니, 벌을 받거나 험한 일을 당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여유를 가져보지만, 등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임도를 지나 계곡이 시작되었지만, 오르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고 시간도 늦어 계곡에 내려가지 않고 빠른 발걸음을 옮긴다.
주위가 약간 어두워지니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가 더 하얗게 느껴진다. 마치 백발마녀처럼.....
오를때는 혼자지만 재미있어서 지루한 줄을 몰랐는데, 내려가는 길이 되게 길게 느껴진다. 결국 오후 7시 무렵, 장구목이골 입구에 도착한다. 도시나 평지에서는 여름날 저녁에 더위 때문에 땀을 흘릴 텐데, 산에서는 어둠과 오싹함으로 인한 식은땀으로 등이 많이 젖어 있다. 아무도 없는 계곡에 잠깐 몸을 담가봤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차갑다. 작은 계곡인데도 소가 깊어서 물속에서 누군가 나의 발목을 잡아당길 것 같다. 서둘러 계곡을 떠나 물레방아가 있는 산행 들머리로 돌아와 장구목이골을 떠난다.
보름이 하루 지났는데, 산 위에 걸린 달이 유난히 밟고 둥글게 보인다.
산행지 : 가리왕산 (1561m, 강원 정선)
날짜 : 2009년 8월 6일
날씨 : 맑음
산행시간 : 5시간 10분 (오후 1시 50분~7시 / 오를 때 2시간 40분 - 정상에서 1시간 휴식 - 하산 1시간 30분)
산행코스 : 숙암계곡 장구목이골 입구 - 임도 - 갈림길 - 정상 (반복코스)
일행 : 단독산행
교통 : 승용차 이용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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