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서리산-축령산 종주산행(2009.8.30)

2009. 9. 25. 20:10산행일기

9월부터 회사를 그만둘 예정인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 어차피 미래에 대해서는 정해진 길이 없기에 어디에서 뭘 하든 머릿속에 떠오르는 걱정을 막을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산에 올라 생각나는 대로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하며, 눈에 보이지 않던 길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요일 아침,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오후에 날이 갠다는 예보가 있어서 도시락을 싸고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경기도 명산 중 아직 가보지 않은 서리산과 축령산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서리산-축령산은 운악산을 지난 한북정맥이 서쪽으로 휘어져 나갈 때 따라가지 않은 주금산이 중심이 되어 남쪽으로 천마지맥을 만들어 놓고, 동쪽으로는 축령 지맥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중심이 되는 산들이다. 축령 지맥은 서리산, 축령산을 비롯하여 오독산, 은두봉, 깃대봉으로 이어지다가 청평에서 조종천으로 가라앉는데, 남양주와 가평군을 갈라놓으며, 수동면과 현리 일대를 넓게 감싸 안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서울의 집을 나와 남양주시 수동면 비금리에 도착할때쯤 일기예보대로 비가 그친다. 303번 종점에서 내려 불기고개를 향해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다 보니, 교통사고를 당한 족제비가 죽어있다. 죽어서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족제비를 길가 풀숲으로 치워준다. 요즘 들어가는 곳마다 로드킬이라 불리는 동물 교통사고의 현장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나라는 이제 도로가 충분한데도, 정부의 통계는 도로가 부족한 것으로 발표된다. 도로는 계속 생기고, 도로를 가득 매운 차들은 야생동물쯤은 그냥 밟고 지나간다.

 

간이 휴게소가 있는 불기고개에서 서쪽으로 오르면 주금산을 오를 수 있는데(2.5km), 서리산으로 가기 위해서 동쪽으로 오른다. 서리산 정상까지 3.9km라는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이어지던 오르막 길은 10여분쯤 뒤에는 내리막길로 바뀌어 한참을 내려간다. 결국 올라온것 보다 더 많이 내려서 불기고개보다 더 낮은 고도로 내려가게 된다.  한참을 내려서니 아무래도 오른쪽에서 바로 올라오는 길이 있을 듯싶어 유심히 살피면서 갔더니 역시나 내방리에서 올라오는 길이 합류를 한다. 산이 나를 속인 것도 아니고, 산은 그대로 있는데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 누굴 탓하겠는가?

 

1000미터 이상의 높은 고산은 마음을 다잡고 준비를 단단히하여 힘들더라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이하의 산은 '적당히 두어 시간 올라가면 되지'라는 마음을 갖다 보니 방심하게 되고, 막상 산행에 나서면 더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오늘도, 이상하리만치 몸이 무겁지만, 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정상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려 한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나무 사이로 보이는 주금산 전망대 바위는 반가운 반면, 등산로 주변을 어지럽게 파헤쳐놓은 멧돼지의 흔적은 긴장감을 일으킨다.

 

649봉(화채봉)을 넘어 산길에 앉아 혼자 점심을 먹고,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잡목과 덩굴식물이 만들어놓은 터널을 지나 서리산 철쭉 능선에 오른다. 이제 정상까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데, 길가로 굵직굵직한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철쭉이 피는 4월 말에는 꽤 아름다운 길이 될 것 같다. 철쭉 쉼터(?) 옆의 바위에 오르니, 철쭉나무에 가려졌던 조망이 확 트이는데, 북쪽으로 연인산 우목봉에서 매봉, 깃대봉, 대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운악산, 그 뒤로 청계산과 귀목봉, 명지산, 화악산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천마지맥이 달려가고, 동쪽으로는 은두봉과 북한강 너머 화야산 산군이 그 옆으로 희미하게 용문산이 보인다. 산 정상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산지 지형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조망이 좋은 곳에 서 있을 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구름이라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일 때가 많다. 

 

서리산 정상을 지나 축령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부드럽고, 등산로가 잘 되어 있다. 축령산 자연휴양림과 연계하여 나무에 대한 설명판을 설치해 놔서 가족들과 가볍게 산행하기 좋을 것 같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절고개 삼거리를 지나 축령산 정상까지 단숨에 오른다. 해지는 저녁 무렵 보이는 은두봉,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골짜기의 명암이 뚜렷하여 입체감이 느껴진다. 축령산 정상의 조망은 서리산 옆의 철쭉 전망대만큼이나 훌륭하다. 시간이 늦어지고 있지만, 정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다.

 

축령산 정상은 부드럽지만, 내려가는 길은 거칠다. 주요한 하산길은 남이바위-독수리바위를 지나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은두봉으로 이어지는 수레넘어고개길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잘 가지 않아 등산로 찾기가 쉽지 않다. 무척이나 가파른 길은 위험하긴 하지만, 로프를 잡고 내려섰는데, 그 뒤로는 사람이나 동물이 다녔을법한 희미한 길의 흔적을 따라가야 한다. 수레 넘어 고개에 이르니 넓은 임도가 나와서 일단 안심을 한다. 임도를 따라가다 불당골로 내려가려 했지만, 임도는 이상한 방향으로 이어져, 결국은 임도에서 계곡으로 내려와 물을 따라 내려간다. 큰 계곡이라기보다는 작은 골짜기의 물줄기였지만,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 예쁘다.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조용한 계곡이 끝나고 마을이 나와서 마을 안 길을 따라 하산을 하는데, 해를 감춘 천마지맥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저녁노을은 높기만 하다. 버스 타는 곳까지 외방리 석고개 마을까지 50분을 더 걸어 나와 청량리 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8월 31일, 월요일 하루만 출근하면 한동안 직장 없이 지내야 하지만, 걱정을 잊게 해 준 산행이었다.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엇을 통한 경제활동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 같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누군가의 명언이 맴돈다.


산행지 : 서리산(825m), 축령산(879m) / 경기 남양주-가평

날짜 : 2009년 8월 31일

날씨 : 맑음

산행시간 : 6시간 30분(12:50~19:20)

산행코스 : 불기고개 - 화채봉 - 서리산 - 절고개 - 축령산 - 수레 넘어 고개 - 불당골 - 외방리(석 고개)

일 행 : 단독산행

교 통 : 대중교통 330-1번 버스 이용


[포토 산행기]

[649봉과 서리산, 요양병원 방향으로 올라가는 게 가깝다]
[불기고개(수동 고개)]
[예쁜 버섯]
[딱따구리]
[왼쪽은 불기고개, 가운데 내방리 쪽 길이 요양병원 길]
[멧돼지의 흔적]
[바다 같기도, 산 같기도 한 이끼]
[주금산 정상 옆의 전망대가 보인다]
[서리산 정상 도착]
[참나무종에서 구분이 좀 쉬운 신갈나무]
[신발창으로 써도 되겠죠?]
[층층나무 설명]
숲길의 파수꾼, 숲속의 무법자, 층층나무
[축령산 정상]
[운악산이 보인다]
[청평호]
[가운데 희미하게 남산타워가 보인다]
[수레 넘어 고개]
[작은 불땅골]
[불땅골 폭포]
[큰 계곡은 아니지만, 잠시 쉬었다 가긴 좋다]
[저녁노을]
[구름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앞쪽 철마산 능선이 더욱 선명하다]
[불기고개 가는 길의 코스모스]
가을 꽃이 피기 시작한다
가을 꽃 #2
[물 봉숭아]
[벌개미취]

 

[누리장나무 인가?]
[사이좋은 버섯]
[왠지 독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름 모를 많은 가을 야생화들]
[이름 모를 많은 가을 야생화들]
[이름 모를 많은 가을 야생화들]
[이름 모를 많은 가을 야생화들]
[이름 모를 많은 가을 야생화들]

 

 

 

 

 

 

 

 

 

 

 

 

[철쭉동산 전망대에서 북쪽.... 아래 골프장과 그 뒤로 운악산]

 

[서리산 정상에서 바라본 축령산]

 

 [축령산 정상에서 조망, 왼쪽 운악산부터 가운데 명지, 구름 아래 화악산, 오른쪽으로 연인산에서 매봉, 깃대봉, 대금산, 청우산 등]

 

[오독산 -은두봉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축령 지맥]
[천마산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
[축령산 아래 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운데 낮은 곳이 수레넘어 고개, 뒤로 오독산, 은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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