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북한산 칼바위 능선 산행 (2021.1.31)

2021. 1. 31. 13:03북한산국립공원

적당히 춥고, 눈이 많았던 겨울이 대한이 지나니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1월이 끝나기 전에 겨울 산행을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1월의 마지막 토요일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일요일 아침 7시, 밖은 어둡고 몸과 마음이 무거웠지만, 따뜻한 집을 나와 산으로 향한다. 일출을 보려면 북한산 둘레길 명상의 길 구간으로 가야 하는데, 오늘은 일출 대신 내원사와 칼바위 능선의 문필봉까지 가벼운 산행을 하기로 한다.

정릉 청수계곡은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여전히 꽁꽁 얼어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수계곡 입구의 청수루를 지나 내원사길로 들어서니 사람이 없다. 요즘 달리기와 빨리 걷기를 많이 해서 가파른 길을 성큼성큼 올라갈 정도로 몸이 좋게 느껴진다. 서서히 밝아오는 동쪽 하늘이 오늘은 등 뒤에 있다. 초여름이면 아이와 올라와 산버찌를 따먹었던 곳에서 멀리 보이는 보현봉 바위 얼굴이 밝아지는 걸 보니 해가 떠오르는 것 같다. 
 
내원사 앞의 큰 참나무 숲은 겨울에 보니 색달라 보인다. 특히, 작은 나뭇 가지들의 촘촘한 구조는 마치 동물의 모세혈관이나 신경계, 실개천-하천-강으로 이어지는 프랙털 구조 같아 보인다. 이웃한 나무들끼리 서로 닿을 듯 말듯하며 영역을 나누며 여름엔 최대한 햇볕을 많이 활용하고, 남은(나뭇잎의 광합성을 피해 지표로 도달한) 햇볕은 지표의 관목과 식물류가 이용하며, 숲의 총 에너지 활용 효율이 높아지게 될 것 같다. 어떠한 현대의 과학기술, 공학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햇빛에너지를 제대로 활용하는 숲을 다시 보게 된다. 
 
큰 산성 같은 축대 위에 지어진 내원사 앞마당을 빙 돌아보고 칼바위 주능선으로 오른다. 이미 일출 시간이 지났지만 자꾸 서두르려고 하는 마음을 누르지만, 빨라지는 발걸음은 말릴 수 없다. 칼바위 주능선에 오르니, 북쪽 저 멀리 아침햇살을 받은 도봉산이 펼쳐져 있다. 봉우리 정상이 아니어도 멋진 풍경이 있으니 좋다. 
더 멋진 풍광을 기대하며 문필봉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오른쪽으로 바위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서울 동북 지역, 수락산, 불암산과 그 뒤로 경기도의 산들이 여러 겹을 이루고 있다. 서울산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전망대에서 몇 분 더 올라 왼쪽의 해발 480미터, 문필봉 정상에 오른다. 자주 갔던, 북한산 형제봉 보다 20미터가 더 높은 봉우리로, 북한산 정상 백운대 일대의 여러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3월, 아이와 함께 처음으로 문필봉에 올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원래 산행 계획은 문필봉이었는데, 북한산 아침 풍광이 너무 좋아 욕심을 내보기로 한다. 산행 출발한 지 아직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시간도 많으니, 칼바위 능선까지 가보기로 한다.
문필봉에서 크게 한번 내려섰다가, 정릉탐방안내소(청수계곡) 안내판 지점을 지나며 칼바위 능선의 가파른 구간이 시작된다. 처음으로 나타나는 철난간을 잡고 가파른 구간을 올라서면 여기저기가 전망대다. 두 번째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서고, 마지막으로 가장 위험하고 가파른 바윗길을 철계단을 잡고 올라서면 칼바위 능선의 정상인 석가봉(해발 598미터)에 도착한다.
 
칼바위 능선 정상에 서니, 사방이 확 트여있다. 겨울산의 모습을 하고 있는 보현봉에서 성덕봉, 언제나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백운대, 인수봉과 주변 봉우리들, 그리고 영봉을 넘어 도봉산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 희미한 사패산과 그 뒤로 양주 불곡산, 시야를 동쪽으로 내려오면 수락산과 불암산, 그 뒤로 경기도 천마지맥의 여러 봉우리들(주금산-천마산)이 아침 안개와 함께 멋진 모습을 하고 있다. 

평소에 지나친 도시화와 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하늘공간 난개발로 늘어나는 초고층 건물이 불편한데도, 지금 이 순간 눈앞의 풍광은 아름답다. 단, 남쪽 저 멀리 솟아 있는 L타워는 언제 보아도 흉물임에 틀림없다. 주변을 고려하지 않은 초고층 건물은, 인간과 이웃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건물이다. 예의가 없는 건물은, 처음부터 허가를 내주지 못하도록 도시 용적률이 강화할 수 없을까? 눈앞의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흘려보내는 게 옳은 마음일까? 눈앞의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생각을 늘려나가는 게 옳은 마음일까? 편하고 행복한 마음은 무엇일까? 
 
칼바위 능선 정상에서 이른 아침 산행은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고, 북한산성으로 올라 보국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북한산 백운봉 주변 봉우리들은 나무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한데, 그래도 멀리 있는 경관이 반쯤은 보이는 게 겨울산행의 묘미 중에 하나이다. 보국문 근처에 이르니, 예전에 모르고 지나쳤던 문수봉 꼭대기와 남장대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보국문을 빠져나와 하산을 시작한다. 눈이 조금 쌓여 있고, 녹은 눈이 살짝 얼어 있지만, 아이젠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그런데 더 내려와 계곡이 가까워오자 오히려 눈이 덜 녹고, 길이 더 미끄럽다. 골짜기라 햇빛이 비추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대략 몇백 미터급 산에서는, 해발 고도에 따른 온도보다는 햇빛의 영향이 남아 있는 눈이나 얼음길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겨울인데도 얼지 않은 샘터에서 물을 한잔 마시고, 쭉쭉 내려왔더니 어느새 넓적바위 갈림길, 청수 2교이다. 제법 내려왔는데 이 구간도 아직 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난여름 비가 올 때마다 아름다운 계곡으로 변했던 청수 계곡 중상류는 고요하다. 
 
정릉 탐방안내소가 가까워질수록, 하얀 마스크를 쓰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청수 폭포와 청수루를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간다.


산행지: 북한산, 칼바위 능선 (서울 성북-강북구)
날짜: 2021년 1월 31일
날씨: 맑음
코스: 정릉탐방안내소 --> 내원사 --> 문필봉 --> 칼바위 능선(석가봉 정상) --> 북한산성 보국문 --> 청수계곡 넓적바위 --> 정릉 탐방안내소
시간: 2시간 40분 (7.5km, 7시 30분 ~ 10시 10분)
일행: 나 홀로
교통: 도보


[포토산행기 - 북한산 청수계곡 칼바위 능선 겨울아침 산행]

꽁꽁 얼어 붙은 청수계곡
밝아오는 동쪽 하늘
북한산 내원사 가는 길에, 아침햇살 받은 보현봉
참나무 숲에 둘러싸인 내원사
동트는 아침에 내원사 풍경
내원사를 둘러싼 참나무 숲
칼바위능선 가는 길에 도봉산, 오봉 조망
칼바위 능선 길에 도봉산(왼), 수락산(오른쪽)
동남동쪽 조망, 랜드마크 타워가 없었더라면.
칼바위능선 길에 동쪽 조망, 앞쪽 가운데 불암산, 뒷쪽 오른쪽은 예봉산, 왼쪽은 천마지맥?
칼바위능선에서 동쪽 조망, 수락산(왼), 불암산(오른쪽), 뒤로는 남양주 예봉, 백봉 산들.
칼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삼각산, 인수봉, 영봉, 도봉산까지.
칼바위능선(석가봉?)에서 바라본 보현봉(왼쪽)
칼바위 능선(석가봉)에서 본 청수계곡 일대, 오른쪽(형제봉), 그 뒤로 남산(서울타워), 뒤로 청계산 능선, 관악산-삼성산이 보인다
칼바위능선에서 다시 남쪽 조망,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형제봉-인왕산-안산, 그 뒤로 남산, 청계산, 관악산 등이 보인다
사진설명은 위와 같음
칼바위능선에서 서쪽, 보현봉(남쪽 끝), 북한산성과 남장대 능선
칼바위능선(석가봉)에서 북쪽 삼각산 조망(망경대, 노적봉, 백운대, 인수봉이 차례로)
칼바위 능선에서 바라본 북한산 백운대, 인수대와 도봉산(저 멀리)
칼바위능선(석가봉 정상)에서 다시 동쪽. 노원구와 수락산(왼), 불암산(오른쪽)
칼바위능선에서 북한산 백운대와 도봉산, 북한산성 능선따라 대동문이 보인다
북한산 정상부, 망경대(왼쪽), 노적봉, 백운봉, 인수봉(오른쪽)
북한산 칼바위능선에서 동쪽, 수락산(왼), 불암산(오른쪽), 그 뒤로 왼쪽(북쪽)부터 철마-천마지맥, 백봉, 예봉산, 검단산(오른쪽)으로 이어진다.
겨울 북한산성 안쪽은 눈길이다.
보국문 근처에서 바라본 노적봉, 망경대, 백운대, 인수봉
북한산성 보국문
겨울에도 얼지 않는 청수계곡 상류 약수터
누군가 넓적바위위에 이름을 써 놓았다
꽁꽁 얼어붙은 청수계곡
청수폭포도 꽁꽁 얼어 붙었다. (산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