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칼바위 능선의 문필봉 아침 산행 (2021.2.27)

2021. 2. 27. 22:09북한산국립공원

새벽에 잠이 깨어 밖에 나가보니 아직 대보름 달빛이 환하다. 어젯밤 대보름 달에게 소원을 빌지 않았는데, 멋진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형제봉 너머로 내려가는 보름달 빛에 요정이 나타날 것 같은 신비로운 기운이 묻어있다.
저녁에 해가 지면 달이 뜨고, 새벽에 달이 지면 해가 뜬다. 희망이 지면 또 다른 희망이 뜨고, 희망은 돌고 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시대는 저녁을 향해 가고 있을까? 아침이 밝아 오고 있을까?
해가 아니라 지구가 돌 듯, 사회와 나의 시계 역시 외부 환경이 아니라, 지금 여기 한국의 시민들이 행동하여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 들어왔다가 뒷산인 북한산 칼바위 능선의 문필봉을 가려고 다시 집을 나선다. 아침 6시 30분, 우수 지나 경칩이 다가오며 낮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 더 이상 어두운 밤이 아니다. 정릉 북한산 둘레길 솔샘길 구간을 따라가다, 정릉 생태숲을 지나 칼바위 능선 통제소를 지나 산으로 들어선다. 이른 아침인데 벌써 운동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숲 사이로 보이는 동남동쪽 하늘이 밝아 오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꼭 일출이 목적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일출을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따뜻한 물병이 유일한 짐이라 빠르게 걸었더니 금세 마당바위 전망대에 오른다. 동남동쪽 하늘은 더 밝아졌지만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자고 있는 듯 고요한 어둠을 덮고 있는 서울 아침 풍광도 좋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일출을 서둘러 문필봉으로 향한다.

마당바위에서 문필봉으로 오르는 길은 나무 계단이 이어지는데, 운동도 할 겸 빠른 걸음으로 오른다. 마당바위까지는 아침공기가 싸늘하다고 느껴졌는데, 이제 몸이 후끈해진다. 청수계곡 내원사에서 화계사, 냉골로 넘어가는 능선 사거리 부근을 지나는데 나무 사이로 붉은 해가 뜨기 시작한다. 냉골 약수터 안내판과 돌계단을 빠르게 지나 문필봉 아래 전망대에 오른다. 조금 늦은 일출이다. 동지 무렵에는 하남 검단산 방향에서 떠오르던 태양이 이제 남양주 운길산보다 더 북쪽에서 떠오른다. 올 겨울에는 북한산 형제봉 능선에서 일출을 많이 봤는데도, 볼 때마다 따뜻한 기운과 감동이 느껴진다. 동쪽 불암산과 수락산에도 고요한 아침 기운이 흐르는 듯하다. 
 
전망대 바위에서 내려와 문필봉(해발 480미터)에 오르니, 북한산성에서부터 백운대, 인수봉, 영봉,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칼바위정상 0.3km라는 표지판을 보고, 칼바위 능선까지 가볼까 잠깐 고민하다가, 오늘은 계획한 대로 문필봉에서 되돌아 내려가기로 한다. 

문필봉을 내려와 냉골-청수계곡 갈림길에서 내원사 방향으로 간다. 눈은 숲을 보지만, 마음은 생각의 숲에 갇혀 걷다 보니 금세 내원사에 도착한다. 내원사 대웅전 앞으로 높게 자란 참나무 숲을 보며 아침 기운에 호흡을 맡겨본다.
참나무 뿌리처럼 깊게, 참나무 밑동처럼 굳건하게, 참나무 가지처럼 유연하게... 참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간간히 산새 소리가 들려온다. 아까 올랐던 칼바위 능선의 나무들이 역광에 마치 고슴도치 가시처럼 보인다. 

내원사를 뒤로하고 참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큰 기계소음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북한산 국립공원 사무소 신축공사 현장에서 엄청난 소음이 발생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를 위해 국립공원 동식물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탁상행정, 귀차니즘 행정 같다. 원래 국립공원관리 사무소가 있던 자리는 복원하고, 국립공원 외부의 가까운 지점에 신축건물을 만들어도 될 텐데, 왜 이런 큰 소음을 내며, 국립공원 돌을 깨고, 국립공원에 콘크리트를 부어가며 건물을 신축하는 것일까? 게다가, 대형 신축 건물이 완공되면, 건물에서 상시적으로 나오는 소음과 냉난방 오염은 또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국립공원공단 직원 개개인은 모두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겠지만, 공단은 관료화되어 거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그들에게 맞설 힘이 없음에 답답함을 느낀다. 얼음이 녹고, 물소리가 정다운 청수 계곡을 지나 동네로 돌아온다. 
 


산행지: 북한산 문필봉 (480m)
날짜: 2021년 2월 21일
날씨: 맑음
코스 : 정릉 - 칼바위능선 통제소 - 마당바위 - 문필봉 - 내원사 - 청수계곡 -정릉 탐방안내소
시간: 2시간 (07:00 ~ 09:00)
일행: 단독산행
교통: 도보


[포토 산행기]

[월몰, 형제봉으로 달이 진다]
[월몰, 어렴풋 달이 진다]
[이런 월몰은 처음이다. 형제봉으로 달이 진다]
[월몰과 일출 사이, 묘한 시간이다]
[일출 직전, 왼쪽 도봉산, 오른쪽 수락산]
[예봉산 방향에서 해가 뜬다]
[일출]
[일출, 운길산-예봉산 방향
[어두운 서울을 밝히는 해]
[동남쪽 방향, 서울 용마선 능선과 뒤로 검단산이 보인다]
[일출 직후, 왼쪽 수락산, 오른쪽 불암산, 뒷쪽으로 남양주 산군]
[일출 직후, 수락산 모습]
[오늘의 목표는 480미터 문필봉, 칼바위능선 가는 길에 있다]
[문필봉에서 본 북한산 정상부-영봉-도봉산]
[문필봉 부근에서 본 북한산 정상부]
[문필봉 부근에서 당겨 본 오봉-도봉산]
[문필봉 부근 전망대에서 도봉산, 우이동 일대]
[내원사로 내려오다 바라본 참나무 숲]
[내원사 참나무 숲, 나무 가지는 곧 신경세포, 산과 강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