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10. 01:14ㆍ전국산행일기
1년 중 10월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10월에 오히려 산을 찾기 힘들었다. 아는 사람이 결혼을 하거나, 체육대회를 하거나, 회사 야유회를 간다거나 하는 일은 꼭 10월에 생기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올 시월에는 2주 연속으로 산행을 하게 되었다.
"호수와 단풍이 있는 산행"을 내세워 여러 사람들을 섭외해 봤지만 결국 지난주에 함께 산행을 했던 솜다리, 오랜만에 산을 찾는 산바람과 월악산에 오르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 송계리 계곡 민박집에서 솜다리, 산바람을 만나, 월악산에 걸린 가을 달을 보는 것으로 산행은 벌써 시작되었다.
일요일 아침에 송계리 덕주골 입구에서 충주호 쪽으로 조금 내려와 동창교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단풍철을 맞아 월악산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찾아왔다. 자광사를 지나 숲길로 들어섰는데 산 아래 나무는 아직 여름빛이다. 짙은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던 나무도 고도를 높여가자 빛이 바래간다. 연두가 초록이 되고 울긋불긋한 단풍이 되고, 낙엽이 된다.
산 아래에서는 작은 암봉에 불과했던 영봉이 점점 가까워오니 엄청나게 큰 바위 봉우리임을 알게 된다.
덕주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월악산 삼거리를 지나 영봉으로 향한다. 멀리 정상위에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다. 영봉을 오르려면 남쪽에서 동쪽 사면을 한참 돌아 북쪽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월악산 삼거리에서 족히 1시간은 더 가야 한다.
북쪽 사면 그늘진 곳에서 올가을 첫얼음을 발견한다. 아직 가을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겨울이 다가오고 있나 보다. 사람들로 붐비는 북쪽 철계단을 20분 정도 오르니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나타난다. 월악산 영봉 정상이다.
정상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가을 산 손님으로 붐빈다. 우리나라 한가운데 위치한 산이다 보니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나 보다. 다양한 사투리가 섞여있다. 단체로 온 사람들이 많은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졌다 또 밀물처럼 들이 닥친다. 솜다리는 지난주 북한산 산행 때도 그렇더니, 오늘도 바위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한다. 산을 정말 많이 사랑하는 친구다.
남서쪽 속리산부터 조령산을 지나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도 좋고, 산과 구름, 호수와 하늘이 어우러진 북서쪽 풍경도 좋다. 그리고 북쪽 저 멀리 치악산 비로봉이 안개구름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지난여름 평창 청옥산에 있을 때, 날씨 좋은 날이면 소백산을 지나 월악산이 조망되곤 했는데, 월악산에서 청옥산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따뜻한 가을 햇살을 맞으며 점심을 먹고,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오는 사람들은 방금 전 우리가 올라오면서 생각했던 것처럼 '정상이 얼마나 남았을까?'만 생각하고 있는 듯,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속 물어온다. 하산을 시작하여 여유가 생긴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만, 오르막을 오르는 그들에겐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마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 못 하듯이 말이다.
영스러운 영봉을 뒤로하고 덕주골로 하산하는 길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월악산 주능선은 완만하여 걷기가 좋다. 오늘 산행 중에 이렇게 편한 길은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능선길이 끝나고 내리막길이 시작되면 상황이 급 반전된다. 철계단과 바위 코스를 계속 이어져, 결국 일행 중 산바람은 무릎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산에서 갑자기 무릎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딱히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라 쉬어가며 천천히 내려갈 수 밖에 없다. 햇님이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라 무리하게 산행하면 작은 통증이 큰 부상이 될 수도 있다.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하고, 하산할 때 무릎에 가해지는 부하를 생각해서 무리한 산행을 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
산바람, 솜다리와 철계단과 가파른 구간을 천천히 내려가다 보니 신라의 마지막 공주였던 덕주공주 전설이 남겨져 있는 마애불이 나타난다. 덕주공주와 마의태자라는 귀족들의 삶을 보고 누구는 나라를 잃은 슬픔을 얘기할 테고, 누구는 왕건을 생각하며 새날을 열었다고 할 테지만, 나는 요즘 '궁예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이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월악산 마애불까지는 10여 년 전, 군 복무를 할 때 한번 왔던 기억이 있다. 공군의 자기 혁신운동 외부활동중 하나로 파란 체련복을 입고 올랐었다. "월악산 정기가 활주로에 서릴 때~"로 시작하는 군가도 부르면서 말이다. 군 복무시절은 이제는 추억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냥 지나간 과거일 뿐인 것 같다.
마애불을 지나 덕주사까지는 계곡 옆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정상은 늦가을이 었지만, 덕주골은 아직 초가을이다. 가을 산은 다양한 계절이 섞여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어젯밤에 산사음악회가 열렸었다는 덕주사는 뒷배경으로 있는 월악산 능선이 멋지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최근에 복원된듯한 덕주산성이 나온다. 덕주산성을 뒤로하니 식당들이 모여있는 덕주골 입구가 나온다.
덕주골 입구의 한 식당에 들러 따뜻한 저녁을 먹고 월요일 출근을 위해 각자의 집으로 떠난다.
산행지 : 월악산 (1097m, 충북 충주, 제천)
날짜 : 2007년 10월 21일
날씨 : 맑음
산행코스 : 동창교-자광사-월악산삼거리-영봉-월악산삼거리-주능선-마애불-덕주사-덕주골
산행시간 : 7시간 20분(10:00~17:20)
동행 : 솜다리, 산바람, 맑은물
교통 : 승용차 이용(서울-평택-안성-충주)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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