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처마 끝, 한북정맥 백운산(2010.6.6)

2010. 6. 7. 12:18산행일기

경기도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누군가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들의 묶음을, 또 누군가는 남한강 북한강과 서해 등을 자연적인 공간을, 또 누군가는 산업단지를 떠올릴 것 같다. 경기도는 도시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인구 수십만에서 백만이 넘는 대도시가 생겨났고, 논과 밭이었고, 풀과 나무들이 자라던 경기도는 점점 사라지고, 곳곳이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난개발의 경기도와 달리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경기도도 있으니, 바로 경기도 가평군 북면, 포천시 이동면 일대의 산악지대가 바로 그곳이다. 해발 1000미터 내외의 한북정맥이 지나가는 이곳은 웬만한 강원도의 산간지방보다 산이 많기도 하고, 그곳의 산은 멋있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산이 높다 보니 풍광이 아름답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가평천, 조종천, 영평천, 한탄강이 발원하여 흐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기도를 제대로 알려면 우선 한북정맥, 한남정맥과 남한강, 북한강, 한탄강등 지형을 먼저 알고, 그곳을 따라 어떻게 주민들이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다음으로 도시를 보고, 공장을 보고, 상가를 보고 경제활동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봐야 할 텐데.... 지난 지방선거 때 보니, 요즘 정치인들은 게을러서 그런지 사람과 제도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토목 중심의 난개발 경기도를 문제 삼는 정치인도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선의라 하더라도 인간 중심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필연적으로 자연과의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그나마 양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 정치인의 '사람중심 경기도'라는 슬로건은 이해는 되지만, 80년대를 고되게 살았지만 그들 역시 개발과 성장의 시대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다. 

 

어쨌든 지방선거가 끝난 주말, 여자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의 지붕인 가평의 한북정맥을 찾아 떠난다. 토요일 낮에 서울 도심을 벗어나는데 1시간이 걸렸지만, 남양주 진접읍을 지나고부터는 47번 국도가 시원하게 도로가 뚫려있어 단숨에 포천 이동면에 도착한다. 포천을 지나는 47번 국도는 고속도로처럼 직선으로 잘 뚫려 있어 주말인데도 차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경기도 북부에는 왜 고속도로가 없냐는 둥 하며 주민들에게 개발의 환상을 심어놓고, 불필요한 도로를 만들려는 욕심쟁이 정치인과 토목건설회사 아주 많이 있다.

 

차가 거의 없는 국도를 달려 이동면 백운계곡을 지나 구불구불 거리는 광덕고개(카라멜 고개라고 불리기도 한다)에 오른다. 광덕고개 휴게소는 휴일을 맞아 지나가다 들른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고, 근처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특산물, 먹을거리가 많아서 기분도 좋다. 번잡이는 도시를 떠나 야외로 오니 향기로운 산바람이 불고, 어느새 모두 녹색으로 변환 세상에 눈도 즐겁고, 여자 친구도 함께 있으니 마음도 즐겁고,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유난히 더 예뻐 보이는 여자 친구와 주변에서 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오후 4시가 다되었지만, 연중 해가 가장 긴 6월이라 늦은 시간임에도 광덕고개 휴게소를 지나 백운산을 향해 출발한다. 광덕고개가 해발 620미터이고 백운산이 해발 930미터... 표고차가 3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한북정맥 마루금을 따라 걷는 길은 험하지 않고 좋다. 게다가 지금은 녹색 나뭇잎이 바람소리를 받아 차르르르  구르는 소리를 내는 아름다운 6월인 거다.

 

같이 간 친구와 함께 산나물을 찾아보기도 하고, 숲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숲길을 따라간다. 녹음이 우거져가는 깊은 숲에 울려 퍼지는 검은등뻐꾸기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그 소리에 담긴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애절함이 가득 묻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등산로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 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검은등뻐꾸기를 보고 싶어 고양이 걸음으로 조심조심 움직여 보니, 참나무숲에 홀로 웃자란 낙엽송 위에 검은등뻐꾸기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급하게 나비를 불렀으나 인기척을 느낀 검은등뻐꾸기는 숲 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후 검은등뻐꾸기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산행 내내 검은등뻐꾸리 소리를 듣다 보니 나중에는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 몽환적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검은등뻐꾸기와 꾀꼬리, 산새 소리를 들으며 나비와 함께 걷는 한북정맥은 참 좋다. 살랑살랑 바람을 따라 진한 더덕 냄새도 그치질 않는다. 향기로운 더덕은 아쉽지만, 그대로 두고 길 옆에 보이는 취나물을 뜯어 입에 넣어 보니, 숲의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듯하다.

 

토요일 오후의 한북정맥은 산새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나비와 나의 다정한 대화가 전부이다. 광덕고개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표고차에 비해 거리는 좀 길다. 예전에 더불어한길 친구들과 함께 왔을 때는 참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가파르지는 않지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된다.

광덕고개 주차장을 출발한 지 1시간 30분 만에 백운산 정상에 도착한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북쪽 끝에 광덕산 정상이 있고, 서쪽으로 명성산이, 동쪽으로는 석룡산과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한북정맥이 도마치봉, 국망봉, 강씨봉으로 이어지지만, 우거진 나뭇잎에 한강 찾아 뻗어가는 정맥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낮이 가장 긴 6월이라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아직 밝은 낮이다. 해가 서서히 내려가는 것 같아 우리도 산을 내려가가 시작한다. 등산길이 험하지 않으니 다소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숲 속 향기에 후각이 익숙해질 때가 됐건만 더덕 향기는 계속 바람에 날려온다. 해가 어스름 지면서 검은등 뻐꾸기뿐만 아니라, 산새들이 찍찍찍, 삐삐삐, 게게게게 하면서 더 시끄럽게 울며, 바삐 움직인다. 우리도 바삐 움직여 주차장으로 안전하게 내려간다.

광덕고개 휴게소에서 나비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초록 숲, 향기, 새소리를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검은 등 뻐꾸기의 매혹적인 노래, 자꾸만 숲으로 나를 부르는 더덕 향기, 긴 산행에 대한 유혹이 있었지만, 오늘은 자연의 유혹보다 나비와 함께 산행하여 좋은 날이었다.


산행지 : 백운산 (903m / 경기도 포천, 가평)

날짜 : 2010년 6월 6일 (토)

날씨 : 맑음

산행코스 : 광덕고개 - 한북정맥 - 백운산 - 한북정맥 - 광덕고개

산행시간 : 3시간 30분 (16:00 ~ 19:30)

일행 : 2명 (맑은물, 나비)

교통 : 포천시 이동면까지 뚫린 47번 국도 이용 


[포토 산행기]

[광덕고개 정상을 지키는 반달곰상, 실제 반달곰은 작다고 한다]

 

[이런 꽃을 100번도 못 보는 게 우리 인생,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ㅠㅠ]

 

[시골에서는 이것을 꽃 나물이라 불렀는데...쥐오줌풀이라나?]

 

[나무가 좀 아프긴 해도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검은등  뻐꾸기처럼 신비스러운 여인]

 

[한북정맥, 백운산 정상이 그리 멀지는 않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답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참 예쁘다]

 

[겨울에는 함박눈, 초여름에는 함박꽃]

 

[한북정맥 광덕고개 일대의 녹음]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나라 곳곳에는 인간 말고도 많은 곤충,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북정맥 숲 속의 작은 풀]

 

[복잡한 나뭇잎 무늬]

 

[벌깨덩굴과 가까운 꽃]

 

[대충 이름은 알지만.... 이름보다 있는 그대로~]

 

[흰 구름이 머무는 산]

 

[병이 난 듯 보이는 병꽃]

 

[둥굴레?]

 

[한북정맥이 만들어 놓은 넓은 녹색의 공간... 건물 숲과 비교가 안되는데...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