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30. 18:06ㆍ산행일기
더불어한길 사람들과 매달 가던 정기산행이 사라졌다.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요즘 산행이 뜸하다.
깊은 산 숲 속이 아닌 대도시의 건물 숲 속에 갇혀 지내다 보면 문득 산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는 했었다. 하지만, 주중에 답답한 삶이 지속되면 산을 그리워하고, 주말에 잠깐 쉬면 산을 잊어버리고....
지난 몇 달은 그렇게 산에 가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직장인들에게 팥빙수, 수박, 아이스크림, 찬물 샤워 같은 여름휴가가 다가 오자, 더불어한길 사람들과 여름 산행을 가기로 뜻을 모았다.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지만, 전국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후보지로 충남 금산의 서대산, 금강 상류 트레킹, 영동 천태산을 검토하다가, 천태산을 가기로 최종 결정했다.
여름휴가 첫날,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하여 군포에서 먼발치에서와 은빛날개 부부를 태우고 충북 영동의 천태산으로 향한다. 12시에 천태산 주차장에서 다른 일행과 만나기로 했지만, 서울 근교에서 막힌 도로 사정으로 12시쯤 금산 나들목을 벗어난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천태산 가는 길 옆으로 흐르는 푸른 금강을 만나니 벌써 가슴이 설렌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천태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서산에서 온 산바람과 여수에서 온 Hey-u가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 곧바로 산행 준비를 하고, 주차장의 뜨거운 열기와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일단 천태산 계곡으로 들어간다.
오늘 함께 산행을 하게 될 5명이 계곡 입구에 모여 앉아 준비해온 점심을 나눠 먹고, 대망의 2010년 더불어한길 여름 산행을 시작한다. 계곡 입구에는 유명한 천태산 삼단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쉴 새 없이 떨어뜨리고 있다. 폭포의 시원한 기운을 오래 느끼고 싶었지만, 산행 시간을 생각해서 눈으로 잠깐 감상하고 지나친다. 폭포를 지나면 경사가 급한 나무계단이 나오는데, 조금 힘들게 올랐더니 다시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동네에서 운영하는 매표소도 있는데, 매표소를 지나면 곧바로 영국사가 있다. 영국사 입구의 700년 된 은행나무까지는 짧은 거리지만 태양이 무척이나 뜨거워 얼른 은행나무 그늘로 들어간다.
은행나무 그늘에서 오늘 오를 천태산의 능선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태양이 이글거리는 길로 나온다. 요즘은 보기 힘든 미루나무가 인상적인 마을 앞을 지나 이제 진짜 산길로 들어선다.
동네 뒷산같이 아기자기한 오솔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미리 살펴본 산행정보에 의하면 여기부터 정상 바로 아래까지 바위길이 이어지게 된다. 더불어한길 여름 산행에 따라온 먼발치네 반려견 노마에게는 큰 난관이 아닐 수 없다. 바위 아래서 꼬리를 흔들며, 애처로운 눈으로 은빛날개를 바라보는 노마. 은빛날개는 미리 준비해 온 큰 배낭 안에 노마를 태운다. 도시개가 시골 산에 따라와서 사람의 등에 업혀 가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20대 때 보다 더 체력이 좋아진 뫼바람은 바람처럼 가볍게 바위길을 오른다. 대슬랩 구간을 지나 정상을 향해 올라갈수록 산 아래 마을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경치가 계속 나타난다. 한여름의 햇볕을 빨아들인 바위가 다시 내뿜는 열기가 찜질방을 방불케 한다. 그런 릿지 구간을 한참 갔더니 헥헥거릴 때마다 나도 열기를 뿜어대는 만화 속의 용이 된듯한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끔씩 운치를 자랑하며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소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달콤한 꿀복숭아를 나눠먹으니 더위가 한 걸음쯤 떨어진다.
햇볕은 여전히 바위마저 녹일 태세로 이글거렸지만, 이제 바위구간을 지나 그늘 진 참나무 숲에 들어선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태양을 가려주는 한여름의 참나무 숲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정상에 오르기가 꽤나 힘들었을 것 같다. 위에서 아래서 푹푹 찌는 더위를 이겨 내고 도착한 천태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생각보다 좋지 못하고, 바람도 전혀 없다. 서대산, 적상산과 금강이 보일 위치지만, 여름에는 나뭇잎이 가로막아 안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정상 안내석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한다.
참나무 숲을 되돌아 내려가 바위 코스로 내려가는 삼거리에서 올라올 때와는 다른 D코스로 내려간다. D코스는 완전한 릿지 코스는 아니지만 곳곳에 바위가 있어 가끔 바람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이 찌는 더위를 식혀 줄 정도는 아니었다. 노마를 업고 산에 올랐던 은빛날개는 하산길인데 뒤로 자꾸만 쳐진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제법 통통한 노마를 업고 산에 올라서 그런지, 은빛날개 다리가 경련을 일으켰다고 한다.
뫼바람, 헤이유와 함께 바위길을 지나 남고개를 지나 평지에 가까운 길을 만난다. 언젠가 산불이 났는지 잡목들과 키가 작은 억새풀만 자라고 있다. 산세는 동네 야산 분위기인데, 억새풀이 있어 분위기는 억새가 자라는 높은 산 같다.
'덥다 덥다'며 쫑알 대는 뫼바람이 앞서 가다가 작은 개울을 발견하고는 좋아한다. 개울 물이 보기와 달리 깊은 계곡처럼 차가워서 땀도 씻으니, 더위뿐만 아니라 온갖 시름이 다 씻겨나가는 것 같다. 기운을 회복하여 계속 하산하다 보니 영국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서 버드나무 습지를 지난다. 고산지대는 아니지만, 산 중턱에서 습지를 보게 되니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버드나무 습지를 지나 영국사에 도착하여, 마당의 시원한 물을 한잔 얻어 마신다. 보물로 지정된 영국사 3층 석탑 등 문화재를 천천히 둘러보며 뒤쳐진 노마와 일행을 기다리다가 결국은 뫼바람, 헤이유와 함께 먼저 주차장으로 하산한다.
오후 6시가 다 되었지만 주차장의 열기가 뜨거워 식었던 땀이 다시 샘솟는다. 화장실 물로 땀을 씻고 나왔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은빛날개, 먼 발치에서, 노마가 내려왔다. 노마는 언제 지쳤었냐는 듯 주차장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닌다.
산행을 정리하고, 천태산에서 가까운 전북 무주의 까마구네 집으로 출발하여, 무주 시내에서 금강으로 수련회를 왔던 나비를 만나, 함께 구천동 계곡으로 간다.
무주 구천동 계곡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로 고기 대신 버섯 야채 샤부샤부를 먹으며 처음 기획했던 유기농 산행의 정점을 찍는다, 다음 날 구천동계곡에서 오랜만에 입술이 파래지도록 계곡 물놀이를 한다. 복잡한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하루 더 머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서울의 건물 숲 속으로 돌아온다.
산행지 : 천태산 (충북 영동, 715m)
날 짜 : 2010년 8월
날 씨 : 맑음
산행코스 : 주차장 --> 영국사 --> 1코스(릿지길) --> 천태산 정상 --> 남고 개(4코스) --> 영국사 --> 주차장
산행시간 : 5시간(13:00 ~ 18:10)
참가자 : 맑은물, 먼발치에서, 은빛날개, 뫼바람, Hey-u
교 통 : 승용차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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