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6. 02:30ㆍ전국산행일기
주말을 맞이하여 양평군 양서면 국수리로 귀촌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근처 청계산에 올랐다.
아빠가 되었으니 산행보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것이 삶의 우선순위다. 청계산 아랫동네에 오니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산에 오르겠냐?'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일요일 아침 7시 20분, 어제 집을 나설 때 '혹시나 산에 갈 수 있을까?'하고 챙겨 온 등산화를 신고, 배낭에는 토마토 1개만 집어넣고 친구 집을 나선다.
어젯밤 인터넷 지도를 보며 급하게 정한 산행 코스는, 증동 마을 윗마을을 거쳐 된고개를 지나 정상을 찍고 반월형 마을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3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청계산이 포근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는, 증동리는 윗동네까지 귀촌한 사람들의 전원주택 들어와 있고, 올라가면서 보니 여기저기에서 건축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기원하겠지만, 큰 집에서 살고 싶은 자본주의적 욕망과 결합된 고급 전원주택 열풍에 대해서는 마음이 그리 편한 것은 아니다. 더 갖고 싶은 욕심을 조금 비우고, 그 빈자리를 자연으로 채우면 풍요롭고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욕망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하면 삶에 대한 간섭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도 없이 길을 나서다 보니 증동마을이 끝날 무렵에 나타나야 할 산행 들머리를 찾지 못해 주위를 헤맨다. 20여분 정도 임도로도 가보고, 주위를 헤매다가 왔던 길을 따라가는 게 확실할 거 같아 계속 직진하니, 방금 전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돌아섰던 곳에서 불과 100m 위쪽에 청계산-부용산 산행 안내판과 입산 안내판이 나타난다. 입산 안내판을 찾긴 했는데, 1년 중 해가 가장 높게 가장 긴 때라 이제 겨우 8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벌써 덥다.
산행 안내판을 지나 200~300미터만 오르면 차도가 끝나는데, 이 지점에서는 직진하여 다리를 건너면 사유지로 들어가므로, 오른쪽 억새밭 방향 임도로 올라 10여 미터 앞에서 다시 왼쪽 길로 직진하여 숲 속으로 들어가면 된고개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된고개로 오르는 등산로는 넓은 것은 아니지만, 외딴곳의 등산로로는 충분하다. 된고개까지는 어차피 외길이라 길을 잃을 우려도 없다.
오랜만에 초록 터널 같은 길을 혼자 걷노라니 예전에 동호회 친구들과 걷던 산행이 생각난다. 어쩌다 보니, 20대부터 큰 산보다는 경기도에 있는 산을 많이 다녀서, 오늘 오르는 청계산이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함께 산에 다니던 친구들의 재잘거리던 목소리들이 그립기도 하고, 여름이 다가오니 서로 휴가를 맞춰 떠나곤 했던 정기 산행도 생각난다. 그 시절, 산에서 만난 중년의 등산객들이 '다닐 수 있을 때 다니세요. 보기 좋고 부럽습니다'라고 말하던 의미가 조금씩 마음에 다가온다. 산은 40대가 되든, 50대가 되든 갈 수 있지만, 20대 후반처럼 열정적으로, 밝은 마음으로 오르던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된고개로 오르는 등산로 옆에는 이미 까치수염이 피기 시작했는데, 까치수염에는 나비들이 많아 나비 수염 같다. 동자꽃도 이미 피기 시작한다. 동자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전설만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전설 속의 애환도 조금 더 알 수 있을 것 같다.
산행안내표지판을 지나 30여분 만에 된고개에 도착해 보니, 북쪽 서후리 방향에서 올라온 등산객 몇 분이 쉬고 있다. 나도 일찍 올라왔지만, 꽤 부지런한 분들이다. 나는 된고개에서는 쉬지 않고, 왼쪽(서쪽) 능선을 따라 정상을 향해 걷는다. 된고개는 증동마을에서 서후리로 넘어가는 고개지만, 남한강과 북한강을 나누는 한강기맥의 일부분이라 동쪽으로 따라가면 옥산을 거쳐 중미산, 유명산과 용문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된고개에서 정상까지 능선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등산로는 대체로 평이하다. 조금 빨리 걸었더니 아침인데도 등에 땀이 주르륵 흐르지만, 참나무 숲길이라 살랑바람에 금세 시원해진다. 뜨거운 여름에 땀을 흘리면서도 산에 오르는 것은 바로 이렇게 땀을 식혀주는 바람과 나무 그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능선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귓가를 거슬리는 휘이읶~끼이읶~ 하는 기계소리가 들려온다. 뭘까? 765KV (76만 5천 볼트) 송전선로가 등산로 바로 옆으로 지나가긴 해도, 바람이 약하게 불기 때문에 송전선이 내는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7부 능선, 송전탑 근처에 가서야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았다. 바로 송전탑의 장력을 조정하기 위해 송전탑에 매달려 있는 둥근 공이 내는 소리였다. 그 둥근 공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둥근 공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이게 바로 책에서만 봤던, 송전탑 선로의 소음이었구나. 이 송전선로가 마을 옆으로 지나간다면....' 개구리와 꾀꼬리 노랫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소음은 지옥문의 삐걱거림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7부 능선 갈림길 옆의 송전탑을 뒤로하고, 정상까지는 다시 참나무 숲을 걷게 된다. 송전선의 소음이 멀어지자 참나무 숲 속에는 삐리리릭~삐리리릭 하는 산새 소리와 참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따라온다. 정상 조금 못 미쳐 가파른 길이 조금 있지만, 힘들지 않게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9시 10분, 평일에는 정신없이 출근을 하고 겨우 한숨을 돌리고 다시 오전 일을 위해 달릴 시간이다. 이렇게 살아도 인생은 가고, 저렇게 살아도 인생은 간다.
청계산 정상에서는 양평읍을 지나 양수리로 흘러내리는 남한강 조망이 멋지지만, 아침 안개가 끼여 남한강은 흐릿하게만 보이고, 주위 산들의 조망은 선명하지 못하지만, 푸른 안갯속에 묻힌 산과 골짜기에서는 아침의 정기가 느껴진다. 10분 정도 머물며 아무도 없던 정상에서 등산객 1명을 맞이한 다음 올라왔던 길로 하산을 시작한다.
같은 길을 걷는데, 올라올 때는 보지 못했던 나리꽃과 수국이 더 많이 보인다.
하산은 된고개까지는 가지 않고, 7부 능선 갈림길에서 송전탑 아래로 방향을 튼다. 76만 5천 볼트 송전탑 아래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한강기맥으로 달려 넘어가는 송전탑을 보이는데, 송전탑이 살아있는 산의 정기를 바짝 마르게 하는 느낌이 든다. 송전탑 아래에서 조금 더 머물다 보니 괜히 머리가 오싹해지는 것이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라 얼른 참나무 숲 속으로 빠져나간다. 요즘 밀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전의 무리한 공사와 한전 용역들이 주민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는데, 76만 5천 볼트 송전탑 아래에 서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후 송전탑을 뒤로하고 다시 참나무가 우거진 숲길로 들어가 계속해서 내려가는데, 반월형으로 내려가는 능선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다. 묘지를 몇 개 지나고, 된고개 오르는 길처럼 허리를 숙여 잡목 숲 사이로 몇 번 지나가고 나서야 반월형 마을 위쪽의 전원주택이 나타나고, 산행은 끝나게 된다. 보통 산행을 끝내고 만나는 개울에 들어가서 발이라도 씻지만, 반월형마을 상류는 이미 전원주택을 지나고 흐르는 물이라 발도 담가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반월형마을 표지석이 있는 큰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국수역까지는 20여분을 더 걸어 나가야 한다.
* 참 고 * 청계산을 지나는 송전탑은 충남 서해안 - 안성 - 가평으로 이어지는 765KV 송전선로의 일부이다. 충남 서천-보령-태안-당진의 화력발전 단지에서 생산한 전력을 서울로 보내기 위해, 당진-서산-안성-용인-이천을 지나 이곳 청계산을 넘어 신가평 변전소까지 이어지게 된다. 혹자는 전기를 쓰기위해서는 고압송전탑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765KV 송전선로가 이렇게 놓인것은 불과 몇년 전의 일이다. 고압송전선로를 사용하면 전기저항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것은 공학서적에서는 사실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주민들의 저항과 환경파괴 등의 사회적 손실은 커지게 된다. 우선 가정에서는 전기를 적정하게 쓰고, 산업용 전기요금은 점진적으로 100% 인상, 도시의 상업용 전기요금도 원가를 반영하여 인상할 필요가 있다. 핵발전소 대신 도시 곳곳에 집요하리 만큼 많은 태양광판넬을 설치하고, 도시에는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고, 대형 건물에 비상발전기 등을 설치하여 활용하면, 국토가 좁은 한국에서는 이런 고압송전탑을 건설하지 않고도, 안정적인 송배전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 |
산행지 : 양평 청계산 (658m)
날짜 : 2013년 6월 30일
날씨 : 맑음
일행 : 단독산행
산행코스 : 증동마을 -된고개 -7부 능선 송전탑 - 청계산 정상 - 7부 능선 송전탑 - 남쪽 능선 - 반월형마을
산행시간 : 3시간 10분 (7시 20분 ~ 10시 30분)
교통 : 중앙선 국수역 이용
[포토 산행기]
(초록 숲길 - 3)
(저 멀리 팔당 양수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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