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31. 01:04ㆍ전국산행일기
짧은 휴가를 맞아 고향집에 들렀다가, 잠깐 시간을 내어 영월의 시루산에 올랐다.
원래는 동강 어귀의 완택산을 가려고 했지만, 교통편이 좋지 않아 집에서 버스로 바로 도달할 수 있는 시루산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시루산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고향 마을에서 연당으로 나갈 때 바라보면서 '누워있는 사람 얼굴' 혹은 '큰 고릴라가 기어오르는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 속에서는 익숙한 산이다.
아침 10시 40분 집을 나서, 영월군내 버스를 타고 북면 두목 마을 입구에 내린다. 영월 종교미술 박물관 표지석이 서 있는 두목마을 입구에서, 미리 출력해온 지도를 보며 오늘의 산행 들머리를 잡아 본다. 마을 입구에 있는 300살 된 느티나무를 지나, 수직굴 안내판 삼거리로 오를 수 있지만, 내가 가진 지도상에는 그 길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왼쪽(북쪽) 시루 바위봉 쪽으로 방향을 잡고 마을 안 길을 지나 골짜기로 접어든다. (나중에 찾아본 바에 의하면, 두목 마을에서 느티나무를 지나 직진하여 종교미술 박물관 앞에서 왼쪽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마을의 주택을 지나, 번듯하게 지어진 어떤 가족의 묘지까지 약 500미터 정도 비포장 길을 따라 걷는다. 묘지 뒤쪽으로 등산길이 있을 터어지만, 인적이 드문 산이라 등산로의 흔적은 없고, 단지 산불조심기간 중에는 입산을 금지한다는 안내판만 보인다. 이리저리 등산길을 찾아보다가 입산금지 안내판 뒤쪽을 조심스럽게 찾아보니, 희미한 등산로가 보인다. 등산로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계속 주의 깊게 살피며 걸어야 하지만, 초입부터 이런 초록길을 걸으니 산에 들어온 기분이 난다.
장마가 거의 끝나는 시점에 인적이 드문 숲길의 풀과 나무들은 더없이 싱그럽고 푸르다. 인생의 중반기를 지나고 있는 내 삶이 어쩌면 이 지금 눈앞의 초록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초록이 아름다운 4~5월 신록의 시절은 지났고, 그렇다고 활기차게 자라는 6월의 초록 시기도 지난 것 같고, 그렇지만 아직 8월 입추가 지난 시점의 짙은 녹색은 아닌 것 같으니, 뭔가 왕성하게 자라면서도 열매 맺을 준비도 하는 장마철 초록이 지금의 나와 맞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10여분을 올랐더니 조금 더 뚜렷한 능선길을 만나고, 산행 표지기도 발견하니 이제야 제대로 등산로에 들어선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등산로라고 하기에는 원시의 숲에 가까워, 길을 막고 있는 거미줄이 땀과 함께 얼굴에 달라붙곤 한다. 그럼에도 거미가 애써 만들어 놓은 거미줄을 훼손하고 싶지는 않다.
능선길로 10여분쯤 올랐더니 큰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 434봉에 도착한다. 아직은 동네 뒷산처럼 비교적 작은 소나무, 참나무와 흔히 볼 수 있는 풀들이 자라고 있다. 그래도 오를수록 등산로가 점점 뚜렷해지는 것은 마음이 놓이는 일이고, 오를수록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두목 마을에서 1시간가량 오르면, 멋진 소나무가 서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멀리 않은 곳에 시루바위봉이 위치하고 있고, 능선 바로 아래쪽 골짜기가 급한 경사로 떨어져서 높이에 비해 고도감을 느낄 수도 있고,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문곡리의 모습도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북서쪽 골짜기에는 꽤 큰 규모의 돌 광산이 위치하고 있는데, 생각을 더듬어보니 북면 문곡리길로 다닐 때 큰 덤프트럭들이 들락거리던 것을 본 것 같기는 하다. 그때는 몰랐는데, 산 위에서 보니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석회석 등 많은 광물자원들이 있는 영월과 단양 등은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산과 돌을 재물로 바쳐야 하는 얄궂은 운명이다.
소나무 전망대를 지나고부터는 굴참나무 키가 부쩍 커져있다. 산 중턱의 굴참나무는 석회암지대 특성 때문인지 작게 자라고 있는 반면, 해발 약 500미터를 지나고서는 여느 높은 산처럼 굴참나무의 키도 크고, 두꺼운 표피도 두껍게 잘 자라고 있다. 굴참나무가 햇빛을 가려주고 산바람도 계속해서 시원하게 불고 있지만, 까마귀 떼가 계속 나를 따라오면서 울어대니 기분이 썩 좋지 못하다. 게다가, 멧돼지들이 파헤쳐 놓은 숲 속을 혼자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 바짝 긴장을 하며 걸을 수밖에 없다.
지도상으로는 수직굴 안내판이 있어야 할 위치를 지나고부터는 가파른 길이 조금 덜해지고, 이곳에서는 10여 분만 가면 시루바위봉에 도착할 수 있다. 고향 동네와 비슷한 현무암과 닮은 바위로 이루어진 시루바위봉은 서너개의 작은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봉에 올랐더니 안개가 덜 걷혔지만, 남면 뒷개 마을에서 방절리까지 이어지는 서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검각산과 옹정리의 오봉이 희미하다. 북서쪽으로는 북면 문곡리와 그 뒤로 평창의 삼방산이 희미하고, 동쪽으로는 봉래산과 발산 봉우리가 보인다. 날씨가 더 좋았으면 더 멀리, 더 자세히 보였을 텐데 약간 아쉬움도 남는다.
조망을 뒤로하고, 되돌아 나오려는데 불과 2~3미터 수풀 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노란 털의 산짐승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 산짐승과의 조우는 1초를 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고, 그 산짐승도 놀라서 그 좁은 암봉 옆 수풀 속을 이리저리 뛰어가다가 겨우 진정하고 조용히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 산짐승은 바로 노루였는데,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해보니 이렇게 노루와 가까운 곳에서 마주치는 것도 다 운명인데, 내가 너무 놀라서 노루도 덩달아 더 놀랐던 거 같다. 짧은 한순간 마주침으로 노루와 친해지는 비현실적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더라도, 선한 눈 마주침 정도는 시도해 볼 수 있었는데...
시루바위봉과 시루산 정상은 5분 거리, 어떤 지도에는 시루바위봉이 690m, 시루산 정상이 685미터로 표기되기도 하니, 두 봉우리는 거의 비숫하다고 보면 된다. 시루바위봉은 바위봉, 시루산은 그냥 평범한 갈림길 상의 봉우리 일뿐, 정상 안내판이 없었으면 그곳이 정상인 줄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시루산 정상에서 방향을 잡아 보려고 지도를 찾았더니, 주머니 속의 지도가 없어서, 북쪽으로 잘 정리된 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내려갔더니 아무래도 문곡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라서, 부랴부랴 휴대폰으로 산행정보를 찾아봤더니 시루산 정상에서 정동향으로 가야 한단다.
10분 내려간 거리를 20분을 올라와서, 시루봉 정상에서 동쪽 방향으로 가보니 등산로의 흔적이 전혀 없다. 10분 정도 이리저리 잡목과 풀들이 우거진 숲 속을 헤매다가 이런 길로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시루산 정상으로 되돌아나와 처음 내려갔던 북쪽 방향으로 난 뚜렷한 길을 따라 내려간다. 처음 가는 산은 늘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막상 산행에 나설 때는 지도 한두 번 찾아보고, 다 아는 것처럼 자신감 있어하다가 산에 가면 헤매게 되고..... 산이 크지 않으니 다행이지.... 조심조심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별다른 오르막길도 없고 계속해서 지루하게 내리막길과 평탄한 길이 계속 나온다. 북쪽 접산에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처음에는 눈높이로 보였지만, 이제 점점 꽤 높은 산으로 보이고, 접산에서 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어느새 내가 서 있는 곳보다 높다. 추측컨대, 아무래도 북면 마차리로 내려가는 것 같다. 그래도 가는 곳을 대충 알게 됐으니 마음도 놓이고, 주위의 초록숲길도 더 예쁘게 느껴진다.
초록 숲길이 끝나고 다시 석회암 지대 특유의 작은 소나무, 참나무 잡목 숲길을 지나 묘지들을 지나니 드디어 집이 두어 체 보이고, 찻길이 보인다. 시루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집 옆 개울물에 땀을 씻어내고, 찻길에서 친절한 영월주민이 차를 태워주어서, 10여분 만에 영월읍내로 나와, 겨우 고향집으로 들어가는 군내버스를 탔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장릉 뒤쪽 발산 능선이 더 웅장하게 보인다.
산행지 : 시루산 (강원도 영월, 685m)
날 짜 : 2013년 7월 26일
날 씨 : 구름 조금
산행시간 : 2시간 40분 (11:15 ~ 13:55)
산행코스 : 두목 마을 --> 가족묘 --> 소나무 전망대 --> 시루바위봉 --> 시루산 정상 --> 북쪽 능선 --> 북면 마차리 분덕재 아래
일 행 : 1인 산행
교 통 : 군내버스 (영월에 머물렀기 때문)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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