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에 찾은 치악산은 한겨울 (2014.2.15)

2014. 2. 16. 00:19전국산행일기

월례행사처럼 다니던 산행이 언제부터인가 연례행사가 되었다.

마음은 숲으로, 계곡으로, 눈길로 떠나고 싶지만, 콘크리트 도시에서의 일상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한 달, 두 달, 세 달..... 산을 멀리하다 보니 이제 산을 가지 않는 삶이 익숙하다.

 

그러던 어느 날, 녹색당 모임에서 두어 번 만난 적 있는 OS 씨와 겨울산행을 하기로 마음이 맞았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이른 아침, 자고 있는 아내와 돌이 갓 지난 딸을 뒤로하고, 청량리역에서 원주행 기차를 탄다. 금세 서울을 벗어난 기차는 물안개 가득한 팔당, 새하얀 서리가 운치 있는 양평과 조용한 마을 용문, 양동을 지나 1시간 만에 원주역에 도착한다. 평소에 기차를 타고 원주역을 지나갈 때는 잘 몰랐는데, 원주역에 내려보니 한쪽 벽에 고 장일순 선생님과 고 지학순 주교님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두 분의 삶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지만, 선각자로 살았던 두 분의 삶이 원주시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 같다. 

 

원주역 앞에서 수원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OS 씨를 반갑게 만나, 구룡사 입구행 시내버스를 탄다. 며칠 전 찾아본 정보로는 구룡사 입구까지 버스로 40~50분 정도 걸린다고 하였는데, 막상 버스를 타니 30분도 안 걸려 구룡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다. 토요일 아침이라 원주시내가 한산하기 때문에 빨리 도착한 것 같다.
구룡사 입구 상가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10시 5분 전 출발하여 구룡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겨울 숲이지만, 구룡계곡 입구의 솔숲은 청량한 피톤치드를 뿜어내는지 상쾌함이 다가온다. 구룡폭포 옆길에 낙석이 떨어져 있다는 안내판이 있어, 구룡사에서 맞은편 계곡을 건너 전나무 숲길로 우회한다. 

구룡사 앞 전나무 숲은 작년 11월에 아내와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걷던 길인데,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겨울 전나무 숲도 운치 있다. 전나무 숲을 걷는 두 남자의 모습이 멋있었는지 저 멀리서 누군가가 우리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 모델로 나오는 영광을 뒤로하고 걷다 보니 곧 구룡계곡 야영장이 나오는데, 야영장을 지나고부터는 포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눈이 제법 쌓여있다.

세렴폭포까지는 평지나 다름없는 길을 걷게 되는데, 세렴교를 지나고부터는 엄청난 된비알이 시작된다. 이 구간은 치악산 정상 비로봉과 표고차가 800미터에 달해서 험하기로 유명하지만, 비로봉을 오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큰 산행이라 조금은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나무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기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힘을 쓰니 추운 날씨에 오히려 몸도 더 풀려서 힘들기보다는 몸이 가벼워진다. 사다리병창 길 양옆의 계곡과 앞쪽의 매화봉 능선을 보며 올라가다 보니 고도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의 이 두 다리를 제대로 써보는 것이 이 얼마만인가?' 두 다리가 뻐근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 한번 걸어 본다.

평소에 거의 운동을 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오늘 나의 컨디션은 좀 사기에 가까울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만, OS 씨는 겨울산행인데도 땀을 흘린다. 내가 힘든 것을 느끼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OS 씨와도 사회운동, 정치, 환경, 탈핵 등 이런저런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며 오르기 때문에 힘을 내는 것 같기도 하다.

 

사다리병창길을 꽤 올랐을 때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만나게 됐으니......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사다리병창 길의 솔바람 소리, 겨울 산새 소리를 들을 줄 모르고, 자기 취향에만 맞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사람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나이 좀 된 중년 등산객들이 주로 음악을 크게 틀고 산행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오늘 마주친 두 팀은 기껏해야 서른 전후, 예의 없음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음악 들으며 운동하려면 차라리 헬스클럽 가는 게 어떠세요?'라는 말이 목구멍을 가득 채웠지만, 꾹 참고 속도를 내어서 그들을 따돌린다.

 

다시 조용해진 산길을 걷노라니 10여 년 전 더불어한길이라는 동호회 사람들과 치악산을 올랐던 기억이 시각적으로 다가온다. '그때 저기에 앉아서 과일을 나눠먹었지.... 그때 저기에 앉아서 쉬어 갔었지....'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한데,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사다리병창 구간이 끝날 무렵 해발 1100미터 안내판을 지나는데, 여기부터는 치악산 '등반'이라고 부를 만큼 험한 빙판길이 시작된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은 아이젠이 소용없을 정도로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내려온다. 올라가는 사람들 역시 아이젠을 착용한 신발은 효용이 없이 등산로 옆 버팀목과 밧줄을 잡고 오른다. 내려오는 사람이 크게 넘어져 미끄러져 내려오는 위험한 순간도 지나고, 빙판길 구간을 지나니 이제 비로봉이 바로 눈앞이다.

 

12시 40분, 주차장에서 부터 2시간 45분 만에 사방이 확 트인 치악산 비로봉 정상에 도착한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치악산보다 낮은 산군들이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높은 산이라고 이름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첩첩산중 이어지는 강원도의 겨울 산의 모습에 그저 잠시 시선을 맡겨본다. 

 조망을 끝내고 OS 씨와돌탑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먹고, 남쪽 사면 주능선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사다리병창 길은 북서 사면이라서 빙판길이었는데, 남쪽 사면은 눈이 녹기 시작해 질퍽해진 길이 미끄럽다. 남대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따라 30분쯤 가다가 입석사 갈림길로 내려가는데, 사다리병창 길 못지않게 가파르다. 주 능선을 뒤로하고 내려오면서도 눈이 녹아 질퍽하거나 잔돌이 깔린 구간이 이어져, 내려가는 길임에도 다리에 피로가 쌓인다. 오를 때는 몸이 힘들더라도 천천히 걸으면서 사색에 잠기기도 하지만, 내려갈 때는 발끝에 신경을 집중하여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로지 다음 발걸음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만 생각하며 내려오다 보니 입석사에 도착한다. 

 

입석사는 아주 작은 절이지만, 뒤쪽의 입석대에서 바라보는 원주 조망이 좋다고 하지만, 뒷길로 100미터를 다시 올라가야 해서 입석대는 오르지 않고 그냥 하산을 한다. 

입석사를 지나면서 아스팔트 길이 나와서 금방 산행이 끝날 줄 알았더니, 지루한 포장길이 계속되다가 50분을 더 걸어서야 황골 매표소에 도착한다. 하지만, 마을 입구를 지나 큰길까지 20여분을 더 걸어 나와 치악산 산행을 끝낸다.

 

버스를 기다리며 치악산 산세를 보며 왜 오늘 산행이 힘들었는지 뒤늦게 복기해 본다. 치악산은 최고봉 1280여 미터의 산이지만, 주변에 큰 산 없이 원주의 평지에서 우뚝 솟은 산이라 내륙의 산 치고는 표고차가 매우 높고 가파를 수밖에 없는 지형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도, 겨울 산행이라 쉬지 않고 걸었더니 지도에 표시된 것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산행을 끝낸다. 겨울의 끝트마리에 찾은 산이었지만, 겨울산행을 충분히 즐긴 것에 만족하며, OS 씨와 원주역 앞에서 간단히 산행 뒤풀이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떠난다. 


산행지 : 치악산 (1288m. 강원도 원주)

산행날짜 : 2014년 2월 15일

날 씨 : 맑음

산행코스 : 구룡사주차장 - 구룡사 - 세렴폭포 - 사다리병창 길 - 비로봉 - **갈림길  - 입석사 - 황골 매표소

산행시간 : 6시간 (09:55~15:55)

일 행 : 2명 (맑은 물 / OS 씨)

교 통 : 대중교통 (버스 - 원주 터미널, 기차 - 원주역 & 원주시내버스 )


#사진으로 보는 산행일기

[원주시의 품격을 높여주는 고 지학순주교, 고 장일순 선생님]
[산행 시작 - 여기는 구룡사 우회길]

 

[구룡사 계곡]

 

[구룡계곡을 뒤로하고 가파른길 시작]

 

[사다리병창길로 이어지는 돌계단길]

 

[사다리병창길]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진다]

 

[산행은 할 만하지만 방심은 금물]

 

[꽤 높이 올라와서 조망이 좋다]

 

[구룡사계곡 전경, 왼쪽은 삼봉, 오른쪽은 천지봉-매화봉]

 

[비로봉 바로 아래에서 바라본 치악산 삼봉]

 

[비로봉 바로 아래에서 만난 겨울나무]
[가운데 구룡사 계곡, 오른쪽이 오늘 올라온 사다리 병창길]
[가운데 삼봉에서 오른쪽은 투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왼쪽은 남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치악산 비로봉 정상의 미륵불탑]
[비로동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혼란스러운 질서, 겨울나무]
[입석사 대웅전]
[산행 종점은 황골 마을 번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