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1. 08:17ㆍ북한산국립공원
금. 토 이틀 동안 40mm 넘는 비가 내렸다. 겨울비치곤 많지만, 1월에도 가끔은 많은 비가 내리니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일요일 새벽에 내린 눈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하루종일 흐리기만 하다. 3일 동안 햇빛을 멀리한 몸과 마음에 곰팡이가 잔뜩 피었는지 하루종일 움직이고 싶지 않다. 집 밖으로 나갈 결심만 하다가 '일요일 오후 3시'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밖에 나가 보니 북한산 중턱까지 짙은 안개가 내려와 있다. 산봉우리 위쪽은 보이지 않지만, 안개사이로 희끗한 눈이 보여 형제봉으로 향한다.
북한산 둘레길 명상의길 구간 아래쪽은 비가 내린 흔적이지만, 조금씩 올라갈수록 진눈깨비를 거쳐 눈 내린 풍경으로 바뀐다. 아래쪽에서 약 100미터 정도 고도를 올라왔더니, 안개가 짙어 주변 산, 계곡은 보이지 않는다. 회색 안개가 가득 차 있는 하얀 눈길 위에 난 등산화 자국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기분에 따라 이런 길이 운치 있게 보일 수도 있고, 우중충하게 보일 수도 있고, 두려움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높고 큰 산에서 이런 날씨에 이런 눈길을 걷는다면, 조난당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는 길이라 그냥 덤덤히 걷는다.
보현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나는 큰 형제봉 아래 우회로를 돌아 작은 형제봉으로 향한다. 서울 기온은 영상 1도 정도로 추운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형제봉 북쪽 사면은 거센 바람에 안개가 휘날린다. 눈보라까진 아니지만, 간간히 눈발도 날린다. 얼굴이 시리지만,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은 아니다. 마음속에 머무르던 회색기운이 바람에 날려가 시원한 느낌이 든다. 다행이다. 오길 잘했다. 상고대와는 다르지만, 눈안개가 멋지다.
해발 452미터, 작은 형제봉 정상인데, 시계는 100미터가 체 안된다. 높은 산봉우리도 없고, 내가 서있는 곳을 받쳐주는 계곡도, 인적도 없다. 이 시공간은 신선의 공간일 수도 있고, 극지대, 고산의 어느 한 부분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 내가 있고, 보현봉도 있고, 계곡도 있고, 길도 있다.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길을 따라가면, 원래 그곳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사진을 찍는 일, 바람에 옷깃을 올리고, 장갑을 꼭 끼는 일, 눈앞의 계단을 따라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 이미 알고 있지만, 잊기 쉬운 것을 다시 깨우쳤으니 짧은 산행은 성공이다.
주말에 집을 비웠던, 아내와 아이가 집에 돌아 올 시간이 됐다. 집을 향해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긴다.
산행지: 형제봉(m) / 서울 성북, 종로구
날 짜: 2023년 1월 15일
날 씨: 흐리고 눈비
일 행: 1명 (맑은물)
산행코스: 북한산 정릉탐방안내소-명상의길-보토현갈림길(보현봉)-형제봉-정릉탐방안내소
산행시간: 2시간 20분 (15시 20분~17시 40분)
교 통: 도보 (*북한산국립공원 정릉지구 버스)
#사진으로 보는 산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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