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우면 잘 안다는 착각? 북한산 청수계곡-문수봉-삼천사계곡 (2023.6.6)

2023. 6. 6. 11:06북한산특집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에 먼 산에 가려고 예매했던 기차표를 아침에 취소했다. 먼 산행에 대한 부담과 귀찮음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럴 때 북한산 아래에 사는 장점을 활용하여,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미리 챙겨놓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북한산 정릉탐방안내소에서 시작하여, 청수계곡을 따라 북한산성 보국문으로 곧장 오르고, 문수봉을 올랐다가 삼천사계곡으로 내려가거나, 문수봉에서 남장대 능선을 지나 북한산성 계곡 상류로 내려섰다가 다시 청수계곡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가까운데 있는 산이라 산행코스를 쉽게 정할 수 있다.
 
탐방안내소를 지나 평소에 자주 다녀 익숙한 청수계곡을 따라 걷는다. 아는 길을 가니 새들의 노래와 계곡 물소리가 더 잘 들리고, 등산로 옆의 풀과 나무도 더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예전 산행 때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북한산에도 물푸레나무가 있었나? 싸리꽃들이 벌써 피나?'. 다른 계절이면 식생이나 풍광이 다를 수 있지만, 같은 계절 산행과 비교해도 그때와 다른 것이 많이 보인다.

어쩌면 많이 보고, 가까이 있는 산이라는 생각에 '나는 청수계곡을 잘 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든 산이든, 살아있는 생명은 주변 관계에 따라 끝없이 변하기 때문에, 계속 주의 깊게 대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숲의 나무와 풀이 '지형과 토질', '뿌리와 밑동'이라는 기본을 바탕으로, '가지와 잎', '꽃과 열매'라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듯, 사람도 지향과 방향(철학)이라는 기본은 갖추되, 생각을 유연하게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 나는 그랬나?

적정속도로 산행을 하니 힘들다는 느낌 없이, 넓적바위와 쌍샘약수터를 지나 보국문까지 어렵지 오른다. 계곡 상부에서 보국문 구간은 짧지만, 한 번은 힘을 쓰고 올랐던 기억이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한창 공사 중인 보국문을 지나 북한산성길대신 숲길 우회로로 돌아가는데 생각보다 길이 좁고 험하고 낯설다. 걸으며 자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대성문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숲길 우회로와 헷갈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대성문에 들렀다가 이번에도 북한산성길 대신 숲길을 통해 대남문으로 향한다. 대남문 근처는 비봉능선, 의상능선을 통해 올라온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라 등산객들도 많이 늘어났다. 
 
대남문에서 5분 거리인 문수봉은 유월 답지 않게 바람이 거세고 차갑다. 북한산 하늘은 회색구름 반, 파란 하늘 반이다. 서울의 백악산, 인왕산, 안산은 빽빽하게 몰아치는 고층건물, 도시화의 파도에 맞서는 섬같이 떠있다. 저 멀리 남쪽 방향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니 희미하게 관악산과 삼성산이 보인다. 오묘한 날씨지만, 북한산 백운대, 노적봉, 만경대는 언제나 그곳에 고정되어 있다. 작년 12월 산행 때 만났던 유기견과 같은 것으로 보이는 누렁이가 등산객들이 주는 음식을 얻어먹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에서는 유기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는데, 배운 지식에 앞서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문수봉에서 남장대-북한산성계곡으로 갈까? 비봉능선-삼천사 계곡으로 갈까? 고민할 것도 없이 시원한 풍광이 펼쳐져 있고,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비봉능선으로 향한다. 멀리서 보면 큼직큼직한 바위길이 위험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끄럽지 않은 곳으로 길이 나있다. 
비봉능선의 하이라이트인 가파른 암릉길은 철난간이 없을 때 위험하여 두려움에 떨며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철난간이 생겨 위험하긴 해도 조심조심 다닐 수 있는 구간이 되었다. 2020년 12월 겨울 산행 때는, '예전에 지나갔던 길이긴 한데 그때와 너무 다르네'라며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20년 전 지나갔던 길 느낌이 났다. 같은 계절이라서 기억이 쉽게 재생된 것 같다.
 
암릉길을 내려와 갈림길에서, 청수동암문 방향 우회로 쪽으로 되돌아 200여 미터 가다가 삼천사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계곡으로 조금 내려오면 안내판, 표지판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봐서는 비법정탐방로가 아닌데도, 갈림길에 이정표가 없어, 지도앱을 이용하여 길을 찾았다. 삼천사계곡 상류는 인적이 드문 깊은 산의 계곡 같다. 원시림에 가까운 숲이 우거지고, 등산로가 끊기지는 않았지만 희미하게만 이어진다. 불과 일이십 분 전에는 백운대 다음으로 등산객이 많이 찾는 장소에 있다가, 갑자기 나 홀로 산행하는 곳으로 공간이동한 느낌이다.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이렇게 한적하지만, 길을 잃을 우려는 없는 산길을 좋아한다. 삼천사계곡 상류는 바짝 말라있지만, 때로는 등산로를 따라, 때로는 계곡 바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트레킹을 즐긴다. 

삼천사 계곡이 의상능선과 비봉능선 사이에 있다 보니, 비 온 직후에만 멋진 폭포로 변신하는 '비 오면 폭포'가 많이 있다. 의상능선 쪽 작은 계곡에도 몇몇 마른 폭포가 보이고, 사모바위 방향 계곡과 삼천사계곡이 만나는 곳에는 너른 바위 폭포도 지금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지만, 수량이 늘면 멋진 폭포로 변신할 것 같다. 

한참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데, 날씨의 느낌이 좀 이상하다. 양서류가 아닌 인류지만, 평소보다 다소 차가운 기온인데도 습한 공기, 조금 더 어두워지는 하늘, 소나기가 오려나? 기상청 앱 '레이더 지도'를 확인해 보니, 비구름이 바로 옆 고양시에서 북한산 방향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많은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후 천둥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비가 후드득 떨어지는데, 이 계절 산행에는 필수 아이템인 우비, 우산을 펼칠 새도 없이 바로 그친다.
 
삼천사 계곡 트레킹을 계속 이어가는데, 20여분 뒤에 또 소나기가 10분 정도 내리더니 그친다. 폭포가 될 만한 너럭바위를 지나니 너른 길이 시작되고, 삼천사 옆 다리가 나타난다. 
보물 657호로 지정된 삼천사 마애석가여래입상을 보고, 삼천사 경내를 돌아 나온다. 삼천사까지는 자동차 길이 이어지는데, 길 옆 삼천사 계곡은 제법 넓지만, 출입금지 구역이다. 국립공원 자연환경 보호는 기본이지만, 사람과 관계가 없는 자연은 그림에 불과하기에 적정한 접점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오는데, '미타교'를 주변 상가 쪽으로는 삼천사 계곡에 잠시 들어갈 수 있는 유연함(?)이 있었다. 
북한산 국립공원 사무소를 지나 한옥마을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산행지: 북한산 북한산성-문수봉(727m) - 삼천사계곡 / 서울 
날 짜: 2023년 6월 6일
날 씨: 맑음, 소나기
일 행: 맑은물
산행코스: 정릉 청수계곡-보국문-대성문-대남문-문수봉-비봉능선-삼천사계곡-은평 한옥마음
산행시간: 5시간 50분 (10시 25분~16시 15분, 휴식포함)
교 통: 시점(우이신설 경전철, 서울 버스), 종점(서울 시내버스)


 [포토 산행기]

서울 청수계곡에는 버들치가 산다
작지만 아름다운 청수폭포
보국문(암문)은 공사중이다
떡 하니 앞을 가로 막은 바위. 혹시 바위 아닌 동물?^^
숲 속에서 만난 대남문
대남문에서 본 보현본
대남문에서 본 보현봉-2
문수봉 방향에서 본 보현봉
진짜 문수봉(오른쪽)은 출입금지다. 문수봉에서 이어지는 비봉능선
비봉능선, 승가봉-사모바위-비봉-족두리봉.
왼쪽으로 북한산성-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까마귀가 서핑하듯 산바람을 즐기고 있다
아래 문수사 지붕이 보이고, 구기동계곡이 이어진다
문수봉 정상 표지목 뒤로 진짜 문수봉이 보인다
문수봉 정상은 오래 있고 싶고,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문수봉에서 본 백운대 일대, 오른쪽 뒤로 도봉산
노적봉, 만경대, 백운대
문수봉에서 본 기암괴석, 뒤로 탕춘대, 안산(서대문)
구름이고 싶거나, 구름위에 누워 낮잠 자고 싶거나...
보현봉을 보며 바위를 걷는 등산객
뒤돌아 본 문수봉
서울 하늘의 파리를 노리는 두꺼비
북한산에서 최고의 바윗길인 의상능선
문수봉 내려가는 암릉길
문수봉 암릉길, 비봉능선(왼쪽), 삼천사계곡 (가운데)
의상능선, 멀리부터 의상봉-용출봉-용혈봉, 나한봉(?)
철 손잡이가 있어 비교적 안전한데, 천둥치는 날은 제외
문수봉 암릉길, 철 손잡이를 꽉 잡고 내려왔다
문수봉 암릉길
삼천사계곡 상단부의 직각바위?
북한산은 화강암의 풍화, 침식 작용을 볼 수 있는 자연박물관
삼천사계곡 상단인데, 나월봉 혹은 나한봉이 보인다
인적이 드문 삼천사계곡, 먹구름이 몰려든다
계곡물이 흐르지만, 조금 더 내려가면 바짝 말라있다
삼천사계곡 중류쯤?
삼천사계곡 중류, 여기는 물이 말랐다
삼천사계곡 양쪽으로 암릉이라, 집중호우가 내릴때 수위가 급격히 늘어날것 같다. 조심해야 할 구간.
점점 많아지는 먹구름, 끈적거림, 천둥소리
여름 소나기를 만났다.
기괴한 바위 숭배는 미신이라기 보다는 심리학(?)
바게뜨 끄트마리 같이 잘린 바위, 어금니로 씹어볼까?
삼천사 윗쪽 너럭바위 폭포
삼천사
삼천사 보물 657호, 마애여래입상
뾰족 튀어나온 통신시설과 고층건물을 보면, 현대문명은 자연과 불화를 겪을 수 밖에 없나 보다
조화로운 삼천사와 북한산 1
조화로운 삼천사와 북한산 2
조화로운 삼천사와 븍한산 3
삼천사 하류 계곡. 여름철 한시적인 개방이 좋을것 같다
삼천사계곡 따라 재잘거리며 오르는 청년들을 보며 20년전 나의 모습을 떠 올렸다
저 다리 건너 200미터 가면 삼천사가 있다
산행 끝. 한옥마을 옆 저류지와 의상능선
의상능선 2
한옥마을, 근래 서울 도시계획중 가장 잘한일이다
6월 북한산의 참싸리 꽃
6월 북한산의 땅비싸리
....
6월인데 벌써 까치수염(까치수영)
삼천사계곡 중간지점의 산딸나무

 

간략한 등산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