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름산행, 북한산 형제봉 (2023.7.29)

2023. 7. 29. 07:33북한산특집

소문에 의하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여름산행을 한 번도 안 한 사람과, 여름산행을 여러 번 가는 사람. 여름산행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덥고 습한 여름이지만, 나무 그늘 아래에서 햇빛을 피하고, 차가운 바람과 시원한 계곡물로 더위를 털어낼 때 느끼는 즐거움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산도 비가 오면 좋은 계곡을 만들어 내지만, 오늘은 계곡을 품지 않은 형제봉에 다녀오기로 한다.
집을 나와 국립공원 주차장까지 걷는데 아침 햇살이 벌써 뜨겁다. 둘레길 명상의 길에 들어서니 기대한 대로 참나무 숲이 햇빛을 가려 시원했지만, 이어지는 200여 계단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니 금세 땀이 줄줄 흐른다.
며칠 전 장마 끝 무렵에 북한산 계곡을 산책할 때는 숲이 촉촉하고 시원하니 생동감이 넘쳤는데, 오늘 명상의 길은 무덥고 바짝 말라있다.

오늘 산행에서는 시각 청각 후각에 집중하고, 생각에게도 여름휴가를 주려고 한다.
숲은 매미소리가  가득 채우고 있지만, 도시 소음의 도전이 거세다. 귓가를 맴도는 날벌레 소리가 성가시게 따라왔지만, 처벅처벅 거리는 내 발자국 소리 리듬에도 귀를 기울인다.
바닥에 떨어진 참나무 잎 마르는 냄새에 후각을 집중하지만, 동시에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꽃향기에도 코를 벌렁 인다. 
장마 끝이라 다양한 버섯이 많이 보인다. 지하와 지상에서, 식물과 나무와 벌레와 양분을 주고받으며, 달리 말하면 자연에서 서로 먹고 먹히는 버섯이다. 지하의 버섯 본진은 오랜 수명을 살지만, 지상에 나오면 금방 사라져 짧은 생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자연의 구성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버섯과 나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우주에 살고, 통하는 언어도 없다. 하지만, 현란한 색과 모양을 가진 버섯의 비언어적 신호에 이끌려 그들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버섯은 균사네트워크 속에 그대로 있는데, 나는 인터넷 네트워크에 버섯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를 기다린다. 나도, 인류도, 점점 자연과 접점이 사라진다. 시. 청. 후. 감각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생각의 늪에 빠져 들고 있다.
 
정릉동이 내려다 보이는 너른 바위 전망대에 올랐지만,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아 희미하다. 대신 나뭇잎 사이로 칼바위봉, 북한산성, 성덕봉  보현봉은 잘 보인다. 걷다 보니, '삐쭉삐쭉 삐쭉삐쭉' 익숙한 새소리가 들려 나무 위를 바라봤더니, 박새가 휘리릭 날아간다. 봄을 지나 여름이 되는 동안, 박새 소리는 잊고 여름새 소리에만 귀를 열었다. 박새가 계절과 무관하게 이 숲에 살고 있다는 인지가 어떤 깨닮음으로 다가온다. 

보현봉 갈림길에서, 북쪽 형제봉 정상 아래 우회길로 돌아 동생 형제봉 정상에 오른다. 주차장에서 형제봉까지는 늘 1시간이 걸린다. 큰 보형봉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형제봉 조망도 참 좋다. 좌우로 능선을 거느리고 있는 보현봉은 언제나 늠름한 모습이다. 3주 전 산행 때 올랐던 비봉능선의 비봉을 이제는 알아볼 수 있다. 먼 서울시내와 한강 너머는 안개로 보이지 않지만, 서울 N타워와 백악사인, 인왕산은 흐리게 보인다.
오늘 형제봉 정상 주변에는 잠자리 수백 마리가 날아다닌다. 잠자리가 아닌 다른 벌레들이 날아다녔으면, 또 한 번 호들갑스러운 벌레소동이 벌어졌을까? 최근 몇 년, 북한산 주변으로 매미나방 애벌레, 러브버그(우단털파리), 노래기등 벌레들이 이상 증식하는 일이 연달이 발생하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생활공간(물과 땅, 숲, 풀숲, 농지)을 빼앗긴 곤충들이 녹지가 풍부한 북한산으로 몰려드는 이유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립 인간공원이 아닌 이상, 당연한 현상이다. 

형제봉 정상은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어 오래 견디지 못하고, 올랐던 길을 따라 내려온다. 더운 여름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영불사 갈림길에서 청수계곡 방향 골짜기로 내려갔더니, 능선과 달리 그늘진 등산로는 물기가 넘치고, 청량감과 생동감이 살아있다. 물 빠짐이 좋은 화강암 지형이라 능선길은 쉽게 마르고, 지하수가 다시 솟아 나오는 골짜기는 여전히 촉촉했던 것이다. 
이후 야생화 꽃밭이 있는 쉼터를 지나 청수계곡을 만난다. 맑을 청에 물 수를 쓰는 청수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산행지: 북한산 형제봉(462.2m, 서울 성북구-종로구)
날 짜 : 2023년 7월 29일
날 씨 : 맑음 
산행코스 : 정릉주차장 -  북한산둘레길(명상의 길) - 보현봉갈림길 - 형제봉 - 신성천 약수터 - 정릉주차장
산행시간 : 2시간 30분(오전 7시 25분~오전 9시 55분)
일 행 : 단독산행
교 통 : 산행 들머리-날머리 도보


[포토 산행기]

명상의길 전망대, 보현봉(왼), 성덕봉(가운데 바위), 칼바위(오른쪽 2번째), 문필봉(오른쪽 끝)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
꽃을 버린 까치수영
너른 바위 전망대에서 정릉동 방향(안 보인다)
북한산성 능선 성덕봉이 보인다
아침 산행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형제봉 오르는 길에 보현봉
보현봉
형제봉, 오른쪽 아래 국민대학교와 내부순환도로
형제봉 오르다 본 보현봉과 동쪽으로 이어지는 성덕봉
형제봉 정상에서 동남쪽 방향
형제봉에서 본 보현봉 전경
형제봉에서 남쪽으로 백악산, 인왕산(오른쪽)
동쪽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수락산이 보인다
남쪽 서울N타워
서쪽 뒷쪽 능선 오른쪽의 비봉
형제봉에서 본 보현봉, 오른쪽 앞으로 형 봉우리
보현봉과 형제봉(형 봉)
평창동 전경
대공감시구역인데 흠....잠자리는 자유다
장지뱀
또 다른 장지뱀
소나무 위의 청서
여름 산 다운 조망
자연으로 돌아갈 날
굵은껍질을 찍으려고 했는데, 예수님(종교와 무관)
청수계곡까지 내려왔다
맑은 물이 흐르는 청수계곡
청수계곡
청수계곡
이번 산행은 버섯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