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5. 19:52ㆍ북한산특집
아내와 아이를 크리스마스 모임에 데려다주고 오니 '나 홀로 집에' 있게 됐다. 산행을 하려다 가까운 청수계곡에서 내원사까지 산책하기로 하고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청수계곡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다. 오전에 눈이 와서 그런지, 산책 나온 가족들도 많고, 등산객들도 많다. 며칠 추운 날씨에 계곡물이 얼음폭포, 얼음고드름 같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위로 하얀 눈이 내려 청수계곡은 백설계곡이 되었다. 그 밑으로는 아직 얼지 않은 물소리가 콸콸 들려온다. 아름다운 청수계곡에 있으니, 내원사 산책대신 청수계곡 지류를 따라 영취사 갈림길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청수 2교를 건너 계곡을 따라가는데, 오후가 되어 산행을 끝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다. 크리스마스 아침을 산과 보낸 사람들이다. 추웠던 날씨가 풀렸지만, 오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길이 미끄럽다. 선덕교 위쪽 계곡은 청수계곡 본류 넓적 바위 위쪽 계곡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슷한 지형의 등산로에 왼쪽으로 적당한 수량의 계류,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삼봉사 갈림길을 지나고 바로 영취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야 하는데, 계곡과 숲 분위기에 끌려 형제봉으로 목적지를 바꾼다. 영취사 갈림길에서 보토현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출입금지 구간인줄 알았는데, 눈 위로 발자국이 뚜렷하고, 출입금지 표지판도 없다. 여기까지 왔으니, 약수터 안내판을 따라 보토현-형제봉으로 돌아 내려가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약수터 표지판을 따라 가는데, 6년 전 봄에 가족과 형제봉에 갔다가 내려왔던 기억이 나서 흐뭇하기도 하고, 계절과 시간이 바뀌어 낯설기도 하다.
작은 능선과 골짜기, 70년 넘어 보이는 큰 참나무, 머리 위에만 눈을 얹고 있는 바위를 보며 오르니 이름 없는 약수터가 나온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집터였던 곳을 돌아 오르니 만생샘 약수터가 나온다. 초겨울에 내린 많은 빗물이 땅속에서 얼지 않고 만생샘을 통해 밖으로 나오고 있다.
만생샘에서 100여 미터 오르면 보토현 능선이다. 오르막길은 대성문으로 이어지니까, 나는 형제봉 방향으로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보현봉, 무명의 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눈 덮인 청수계곡은 참 예쁘다.
형제봉은 말 그대로 봉우리 두 개가 형제처럼 나란히 붙어 있다. 보현봉 쪽 형 봉우리는 462미터, 남쪽으로 100미터 떨어져 있는 동생 봉우리는 452미터로, 형 봉우리가 더 높지만, 동생 봉우리에서 조망이 더 좋다. 나는 조망을 위해 우회로를 돌아 남쪽 봉우리로 간다.
동생봉 정상은 기대대로 네 방향으로 조망이 모두 뚫려있다. 하늘을 반쯤 채운 구름과 눈이 녹으며 생긴 수증기로 낮인데도 어두운 분위기에 신비한 조망을 빚어낸다. 북쪽에서 두 형제를 내려다보는 보현봉은 오늘은 흰 수염의 산타할아버지 같다. 서쪽 멀리 강화도 마니산부터, 서남쪽 한강 너머의 계양산이 조망되고, 남쪽으로는 백악산, 인왕산, 안산이 가족처럼 손을 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정릉동, 그 뒤로 문필봉 끝자락 너머로 수락산, 불암산, 망우산, 용마산이 이어지고, 더 멀리 예봉산과 검단산이 보인다.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에는 팔당댐이 있는데, 짤록해진 부분이 있어 멀리 있어도 알아보기 쉽다. 북동쪽으로 북한산성 주능선의 보현봉이 성덕봉, 칼바위 능선까지 이어진다.
정상은 많이 춥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을 보느라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높은 산이 아닌데도, 구름과 해의 위치에 따라 빛이 달라지니 서쪽 풍광이 수시로 바뀐다. 발 아래 평창동은 잘 정돈된 저층 주거지역이 인상적이다. 평창동은 보현봉-형제봉-백악산으로 둘러싸여 골짜기 골짜기에서 물이 모이는 좋은 지형이다.
풍광에 빠져 있는데, 비봉능선 쪽으로 헬리콥터가 날아가더니 한참 정지 비행을 한다. 안전시설이 많이 설치된 비봉능선이지만, 미끄러운 눈길에 사고가 난 것 같다. 겨울 산행은 항상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산책에 나섰다가 산행을 하고 있는 나도 오늘은 조금 실수를 한 것 같다.
서쪽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할 때, 형제봉을 뒤로하고 정릉탐방안내소 방향으로 내려온다. 청수계곡에서 자주 오르락내리락거리던 길인데, 눈 위에 난 발자국으로 오늘 오후에 사람들이 어디로 많이 다녔는지, 샛길로 다녔는지, 알 수 있다. 이래서 '눈 내린 길을 함부로 걷지 말라'라고 했던가? 근래에 함부로 걷는 사람들, 함부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사람,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났다. 함부로 하는 행동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눈 길 위에도 드러나고, 운이 좋아 눈에 가려졌던 행동은 눈이 녹으면 드러난다. 그렇다고 늘 남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특별한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때때로 마음이 스스로에게 말한다.
'너 지금 양심에 맞게 행동하는 거냐?'
그럴 때, 그 소리에 귀 기울여 행동하면 된다.
정릉탐방안내소로 내려오다 뒤돌아 형제봉을 보니, 하얗던 봉우리가 이른 저녁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다.
산행지: 북한산 형제봉 (452m, 서울 성북, 종로)
날 짜: 2023년 12월 25일
날 씨: 눈 온 뒤 흐림
일 행: 맑은물
산행코스: 청수계곡- 영취사 갈림길- 보토현능선-형제봉- 정릉탐방지원센터
산행시간: 2시간 40분 (14시 25분~17시 5분, 휴식포함)
교 통: 도보 & 북한산 정릉탐방지원센터 (서울 시내버스)
[포토 산행기]
'북한산특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힘내라 초록잎 힘내라 진달래, 북한산 산행(2024.4.10) (0) | 2024.04.10 |
---|---|
10년 만에 폭설. 북한산 눈 보러 가자(2024.2.26) (0) | 2024.02.26 |
북한산 계곡 산행, 청수계곡-남장대-백운동계곡 (2023.9.18) (0) | 2023.09.18 |
짧은 여름산행, 북한산 형제봉 (2023.7.29) (0) | 2023.07.29 |
북한산 계곡 산행, 청수계곡~진관사계곡 (2023.7.2) (0) | 2023.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