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계곡 산행, 청수계곡-남장대-백운동계곡 (2023.9.18)

2023. 9. 18. 13:06북한산특집

요즘 나는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깊은 계곡의 물고기가 된 것 같다. 꿈과 삶의 불일치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곡을 벗어나 오를 수만 있다면, 험한 길의 고단함도 즐거움으로 소화시킬 자신감은 커지지만, 점점 지느러미는 퇴화되고 있다. 꿈을 대체하기 위해 산을 더 찾는다. 산행에서 잠시 힘든 것은 삶에 비하면 새 날개의 깃털처럼 가볍다.

타인의 무례한 요구를 거절하고, 계획한 대로 월요일 연차에 나 홀로 산행을 떠난다. 혼자 가기에는 북한산이 딱 맞다. 집을 나와 정릉 탐방안내소로 향한다. 익숙한 주차장, 청수교를 건너 영취사 가는 길로 들어선다. 월요일 청수계곡은 인적은 드물고, 자연의 흔적만 가득 차 있다. 올여름 청수계곡을 들머리로 하여, 북한산의 여러 계곡을 탐방하고 있다. 6월 청수계곡-삼천사 계곡, 7월 청수계곡--진관사 계곡 산행에 이어, 오늘은 청수계곡 -북한산성 백운동계곡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숲의 초록 농도 변화를 감지하고, 도시와 다른 가을꽃을 보고, 도시와 다른 물소리, 새소리를 듣는다. 도시와 다르지만 나에게는 더 익숙한 청수계곡에서 신선함이 느껴진다. 청수계곡 지류를 따라 청수 2교를 건너 오르는 길은 익숙하지만, 삼봉사 방향으로 100여 미터를 잘못 오르다 되돌아 내려왔다. 작은 실수는 아무렇지 않은데, 손가락만 한 장수말벌이 우우웅 낮은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갈 때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점점 좁아지던 계곡은 작은 폭포를 지나며 실개울이 되었지만, 영취천샘을 지나 영취사까지 계속 이어진다. 처음 산행을 시작했던 계곡 아래에는 물이 풍부하지만, 계곡이 좁아지며 물도 점점 줄어든다.

오를수록 줄어드는 건 계곡 물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것들이 오르면 줄어든다.

오를수록 줄어드는 건 계곡 물뿐만 아니라 높이 오르면 세상의 많은것들이 줄어든다.
내가 가진 위치에너지를 버리고 낮은곳에서 여럿을 만나면 더 안정을 찾는다.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을 보면서도 아직도 좁은 계곡을 더 계속 오르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계곡이 완전히 끝나고 도착한 영취사는 평일이라 조용하다. 영취사 뒤, 조망이 트인 바위에 앉아 하늘 구름을 반찬삼아 점심을 먹는다. 밥을 먹고 보는 숲은 이상하게 달리 보인다. 굽은 나무, 곧은 나무, 굵은 나무, 잔 나무 모두 각자 역할을 하며, 모든 나무의 공동 주택인 숲을 이루고, 산을 함께 지킨다.
북한산성 능선이 보이는 대성능선을 지나 일선사 갈림길 전망대에 오른다. 정식 전망대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동쪽으로 칼바위능선, 문필봉을 거치며 내려앉는 능선을 바라보면 내 마음도 편안히 내려앉는 듯하여 좋아하는 장소이다.
일선사 갈림길 지나, 지날 때마다 헷갈리는 정릉천 발원지를 다시 찾아본다. 보현봉 암릉의 두 번째 계곡에 조금 더 많은 물이 흐르고, 그 아래로부터 물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니, 이곳을 정릉천 발원지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후, 대성문, 북한산성을 따라 대남문, 문수봉까지 산행을 이어간다. 보현봉, 문수봉 주변은 아직 여름이지만 조금씩 가을색으로 변해간다. 문수봉 정상에는 몇몇 산행객들이 있지만, 주말의 혼잡함에 비하면 사람이 적어, 바람의 소리, 까마귀의 울음소리에 귀를 열고, 북한산 조망에 눈을 더 크게 뜬다. 비봉능선과 서울 시내, 보현봉, 백운대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까지 설명이 필요 없는 절경이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남장대터 갈림길에서 오른쪽 남장대능선으로 진입한다.

남장대 능선 입구까지 온 적은 있지만, 남장대 능선 산행은 처음인데, 초입부터 의상능선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지점이 나타난다. 남장대 능선을 따라가니 어느 한 곳을 콕 집어 전망대라고 부르기 힘들 만큼 남장대 능선에서 보는 북한산의 모습은 장관이다. 서쪽 의상능선을 시작하여,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와 노적봉 정상부, 동쪽으로 동장대를 지나 대동문, 칼바위로 이어지는 북한산성 능선까지, 동서남북의 봉우리, 계곡이, 위로 가을하늘까지 남장대를 둘러싸고 있다. 그동안 보았던 봉우리들이지만, 남장대 방향에서 처음으로 보니 각 봉우리와 산성 주능선이 색다르게 보인다. 특히, 남장대능선의 북쪽 끝에서만 볼 수 있는 백운대 일대는 사진에도 모두 담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한동안 큰 고도차 없던 남장대 능선은 갑자기 급한 경사가 시작된다. 산사태가 아직 덜 복구되어 위험한 구간도 있다.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해, 내가 혹시 출입금지 지역으로 온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기도 한다. 북한산성 행궁지터까지 출입금지 안내판은 없고, 산행 안내표지은 보았으니 출입금지 구역은 아닌 것 같다.

조선왕조 임금의 움직이는 궁궐인 행궁지는 발굴작업 중이라 우회로를거쳐 백운동 계곡을 만난다. 이곳에서 더 상류쪽으로는 보국문과 연결된다.
백운동 계곡 상류는 예사롭지 않게 이끼로 가득 차 있다. 북북서 방향으로 흐르는 계곡이고 남장대 눙선과 의상대 능선때문에 일사량이 적어 이끼가 많은 것 같다. 유명한 이끼계곡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북한산의 이끼계곡이라 부를 만하다. 이후 한동안 조용히 이끼계곡을 만들며 흐르던 백운동 계곡은, 중흥사를 지나 수량이 많아지며 바위를 타고 넘고 떨어지며 계류가 시작되며 왁자지껄해진다.
조금 더 내려가 만나는 산영루의 아름다운 풍광은 한양까지 소문이 자자했는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도 찾아왔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찾고, 풍류를 즐기는 나도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그 선생들과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산영루를 지나고도 백운동 계곡의 멋진 풍광은 눈으로, 귀로, 때로는 서늘한 기운이 피부로 다가온다. 나는 예전에 가뭄이 심했던 6월과 수량이 적었던 초겨울에 백운동 계곡을 찾았기 때문에, 백운동 계곡의 풍광을 보지 못했는데, 뒤늦게 백운동 계곡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또 하나, 백운동 계곡의 계류도 아름답지만, 고개를 부지런히 돌리면 원효봉과 또 다른 멋진 암봉을 볼 수도 있다.

중성문을 빠져나와 백운대 갈림길을 만나고, 이어 북한산성계곡(북한동) 역사관을 만난다. 여기에서, 예전에 몇 번 지났던 대서문길 대신 나는 백운동 계곡길을 선택했는데, 훌륭한 선택이었다. 북한동 역사관에서부터 탐방지원센터 약 1.2km 구간의 백운동 계곡은 해발 1000미터를 넘는 명산의 심산유곡 못지않게 많은 수량, 바위, 폭포가 이어지고, 원효봉과 백운대를 볼 수 있다. 큰 산에 왔다는 느낌인지, 산행을 끝내며 편안해진 느낌인지, 풍광에 대한 즐거움인지 하나를 꼽기 어려운 좋은 느낌으로 산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구간이었다.

올해는 북한산 우이계곡, 삼천사계곡, 진관사계곡, 백운동계곡, 자주 가는 청수계곡까지 북한산 계곡을 많이 찾아다녔다. 수량이 풍부할 때도, 매 말랐을 때도 있었으나, 북한산의 건조한 느낌이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굳이 계곡을 벗어나 봉우리에 오르는 꿈을 버리고, 그냥 이 환경에 더 잘 적응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맑은물고기님!


산행지: 북한산 문수봉-남장대-백운동 (서울, 경기 고양)
날 짜: 2023년 9월 18일
날 씨: 맑음
일 행: 맑은물
산행코스: 청수계곡-대성문-대남문-문수봉(727m)-남장대-행궁지-백운동 계곡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산행시간: 6시간 10분 (11시 10분~17시 20분, 휴식포함)
교 통: 도보 &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서울 시내버스)


[포토 산행기]

청수계곡 초입
청수계곡에서 영추사 방향
여기도 넓적바위
영추사 방향 이정표
영추사 방향 소폭포
9월 습한 숲엔 버섯이 많다
9월 습한 숲엔 버섯이 많다
영추사 뒤 바위에서 본 조망
영추사 뒷 바위에서 본 하늘
영추사 뒷길에서 본 성덕봉(좌), 칼바위(우)
일선사 갈림길에서 본 칼바위 정상(좌), 문필봉(우)
정릉천 발원지
븍한산성에서 본 청수계곡
븍한산성에서 본 형제봉
보현봉(우), 아래로 형제봉(좌)
대남문 부근에서 본 문수봉
대남문으로 내려오다 보이는 백운대
대남문에 올라 보현봉을 보다
대남문의 가을
벌개미취
쑥부쟁이
문수봉에서 백운대 방향
문수봉 정상 표지와 진짜 문수봉
문수봉에서 본 보현봉
문수봉에서 남서쪽
백운대(흰 바위는 노적봉)와 도봉산
보현봉
문수봉에서 동쪽 조망
비봉능선 전경
입산금지 구역인 진짜 문수봉
문수봉에서 보이는 수락산, 불암산
북한산성 성랑지(아래 참고)
남장대 능선에서 본 의상능선
남장대 능선에서 본 의상능선(좌), 백운대(우)
의상능선
의상능선과 백운대
의상능선 너머 고양시
백운대(가운데 최고봉), 노적봉, 만경대, 용암봉, 인수봉
백운대와 원효봉(좌)
남장대 능선에서 본 의상능선
문수봉(좌), (가운데)
백운대 방향, 산은 그대로인데 하늘이 바뀐다
백운대 방향, 뒤로 멀리 도봉산
백운대 봉우리들과 원효봉(좌)
남장대지
백운대, 만경대, 용암봉(왼쪽 산군), 수락상(멀리 우)
수락산(좌), 불암산(우), 더 멀리 천마지맥
남장대 능선 마지막, 노적봉, 백운대가 가까워졌다
남장대 능선을 내려와 백운동 상류의 이끼
백운동 상류 이끼
백운동 계곡 상류 미니 폭포
백운동계곡 상류
조선시대 문인들의 소풍장소 산영루 앞
백운동 계곡에서 슬쩍 노적봉이 보인다
저런 바위가 떠 내려 오다니.
성 밖으로 나가는 중성문
북한산 백운동 계곡의 재발견이다
계곡 소리를 위해 동영상을 찍어야 할까?
북한산 백운동 계곡, 이런 모습을 이제서야 알게됐다
백운동 계곡, 원효봉 아래 구간
원효봉 아래 백운동 계곡
원효대? 원효봉(?)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