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22. 21:17ㆍ전국산행일기
가을 산행을 찾아보고 있는데, 아내가 이번에는 같이 가자고 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도 같이 가게 되었는데, 여차저차 이유로 아이 친구까지 4명이 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일요일 아침, 우려와 달리 길이 막히지 않아 서울에서 운악산 주차장까지 1시간 5분 만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이미 절반 이상 채워지고, 산악회의 대형 버스도 줄지어 서 있지만, 이제 9시 45분이니 출발은 좋다.
음식준비로 분주한 두부전문 식당가와 새로 생긴 근사한 외관의 카페를 지나, 활기찬 등산객들에 어울려 빠르게 운악산 매표소(무료) 방향으로 이동한다. 등산 안내판에서 오늘 산행코스를 확인하고, 일주문을 지나 언덕길을 조금 올랐더니 아이들이 덮다고 외투를 벗기 시작한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옷을 두껍게 입고 왔지만, 차에 벗어 두고 왔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아이들 옷을 넣어 불룩해진 배낭이지만 다행히 무겁지는 않다. 나무에 가려진 소박한 무우폭포를 지나 올해(2023년) 생긴 운악산 출렁다리 오르는 길이 나온다.
올 7월에 개장한 출렁다리 오르는 계단 옆으로 울창했던 숲과 지형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회복되겠지만, 출렁다리 구조물을 옮기는 과정에서 많이 훼손시킨 것 같다. 감악산 출렁다리만큼 높은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아이들은 더 즐거워하고, 어른들은 얼굴이 살짝 굳어있거나, 엉거주춤한 자세다. 기존 등산로와 다른 풍광을 볼 수 있지만,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은 시설에 세금을 낭비하는 문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음식을 먹으며 왁자지껄 즐거운 인생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어느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지 착잡했다.
출렁다리를 건너 한동안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가니 눈썹바위가 보인다. 눈썹바위 옆으로 돌아 나오면,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두 어린이가 배고프다고 밥 타령을 한다. 간식을 주어도 곧바로 배고프다는 소리가 들리니, 정기적으로 계속 간식을 주며 몰고 가니 어느 순간 밥타령이 조용해졌다. 이젠 제법 높이 올라온 느낌도 있고, 주변의 명지산, 연인산, 매봉능선은 푸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고, 등산로의 단풍은 고운 빛깔로 물들어 있다.
나무 의자가 있는 쉼터를 넘어 병풍바위 전망대에 도착하자, 아내는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고, 아이들도 멋있다고 한다. 동양화가 그려진 병풍바위에 빨강, 노랑, 주황, 초록 단풍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니, 운악산 명소 중에서도 이 가을에는 병풍바위가 최고로 아름답다.
아름다움 앞에서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지만, 가야 할 길이 있기에 병품바위를 뒤로하고 다시 오르막길로 향하는데, 이제는 계속 주변풍광이 트여있어 심심하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중간중간 다소 험한 바위길이 있지만, 아이들도 스스로 안전하게 잘 오른다. 도시 주변의 산에는 아주 어린아이들도 종종 보이지만, 험한 운악산에 10살을 막 넘긴 어린이들이 오르니 오래간만에 많은 칭찬과 응원을 받는다.
단풍철이라 최고 절경을 병풍바위에 넘겨주었지만, 운악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미륵바위에 도착한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긴 해도 서울산처럼 줄을 설 정도는 아니라, 연인산 능선을 배경으로 우뚝 선 미륵바위 감상시간을 갖는다. 어느 위치,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멋진 모습이다.
계속 바윗길이 이어지니, 아이들의 밥타령이 다시 시작된다. 이 구간만 지나면 주변 조망이 확 트인 망경대에 오를 수 있어 이번에는 아이들을 달래 가며 오른다. 이제는 전설이 된 수직 철사다리 구간을 지나며, 20년 전 한번 올라봤다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얘기해 준다. 지금 봐도 무시무시한데, 그땐 어떻게 올랐는지 차라리 기억이 나지 않는 게 다행이다. 그 뒤로 2008년인가 운악산을 다시 찾았을 때 이미 철사다리 옆으로 철로프길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번에 방부목 계단으로 모두 바뀌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철사다리의 용도도 잊힐 것 같다. 바위 위 멋진 소나무를 지나 사방이 확 트인 망경대에 오르니, 가까운 연인산, 명지산 능선부터, 사방으로 용문산, 천마산, 철마산, 축령산, 서리산, 주금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사패산까지 알아볼 정도로 시야가 좋다. 사패산 뒤로 봉우리가 두 겹(?) 정도 겹쳐 보이는데, 식별하는데 애를 쓰기보다 멋진 능선을 따라 시야를 이리저리 돌려 본다. 서쪽 감악산 뒤로 제법 선명한 산이 보이는데, 방향으로 보면 북한 개성시의 산(국사봉, 천마산?)으로 보인다.
만경대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을 조금 더 미루고 운악산 정상(동봉)에 오른다. 아래와 달리 정상에는 사람들이 적당하다. 잠시 기다렸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아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김밥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운악산 서봉은 나 혼자 빠르게 다녀오기도 한다. 서봉은 포천시인데, 예전 산행에서 하산하다가 상당히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보니, 포천시 방향 등산로도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확인 필요).
서봉에서 다시 동봉으로 돌아와 절고개 방향으로 빠르게 걸으니, 먼저 출발한 아내와 아이들이 보인다.
절고개 갈림길에서 현등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 때문에 조심조심 내려간다. 뜻밖의 행운은, 절고개에서 현등사 내려가는 길은 아름답고 황홀한 단풍길이다. 곱게 물든 단풍이 많기도 하고, 마침 오후 햇살과 단풍의 만남이 환상적이다.
거친 길이 끝날 무렵 만나는 현등사는 예전보다 한결 깔끔해졌다. 아래 주차장에서 계곡길을 따라 현등사까지만 왔다 가는 사람들도 많다. 현등사 108 계단은, 아내와 결혼 전 걸었던 길이라, 느낌이 새롭다. 오늘 아내는 운악산이 생각보다 바위와 길이 험한 산이었지만, 바로 올라갔다 내려오니 힘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세월의 힘인지, 자연의 힘인지 민영환 암각화는 많이 희미해져 있다. 오후 햇살과 단풍, 사람들의 여유로 가득한 현등사 계곡을 천천히 걸어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다.
산행지: 운악산 (937.5m, 경기 가평, 포천)
날 짜: 2023년 10월 22일
날 씨: 맑음
코 스: 주차장-일주문-출렁다리-눈썹바위-병풍바위-미륵바위-망경대-정상-절고개-현등사-출발점 (8.9km)
시 간: 5시간 10분 (오전 9시 55분 ~ 오후 3시 5분)
일 행: 4명 (맑은물, 아내, 아이, 아이 친구)
교 통: 자가용 (*참고: 청량리역 1330 혹은 청평역에서 가평버스 이용)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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