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계방산, 계방산 하는 이유 (2024.1.5)

2024. 1. 5. 21:39전국산행일기

많은 산행을 했지만, 100대 명산이나 대간-정맥 종주 같은 구체적인 목표 없이 자유로운 산행을 했다. 특정한 산행 목표를 세우면 정기적으로 산을 찾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특정 산에 대한 목표는 없었지만, 그 계절 혹은 날씨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산을 찾자는 느슨한 목표는 있다.
 
2024년 새해를 맞아 겨울 산행을 제대로 하고 싶어 졌고, 큰 고민 없이 겨울 산행지로 유명한 계방산을 떠 올렸다. 지난해 운두령 도로를 두 번 넘으며, 계방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운두령까지 가는 길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침 7시 50분 집에서 출발하여 홍천군 내면을 지나 10시 55분 운두령에 도착한다. 쉼터 주차장은 이미 만차라 갓길에 조심스레 주차하고, 겨울 산행 장비 착용을 꼼꼼하게 하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났다. 오대산 탐방로라고 적힌 계단 옆 풍력발전기를 보며 계방산 겨울 산행을 시작한다. 운두령 오는 길에 눈 세상을 보며 설렘을 채웠는데도, 눈 덮인 하얀 탐방로와 활짝 핀 상고대를 보니, 설렘이 기쁨이 되어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핀다. 이런 눈길이라면 제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힘들지 않게 오를 것 같다.
 
해발 1089미터 운두령에서 출발하여, 초반 1166미터  까지 올랐다가 잠시 내리막길이다. 1073미터 안부 구간은 바람이 덜 불어 상고대가 조금 희미하다. 눈 길을 오르며 고도가 높아지니, 안개와 바람은 점점 세지고, 상고대와 얼음꽃이 나무 가지, 나뭇잎, 탐방로 시설물까지 하얗게 붙어있다. 오늘은 해발 1100~1200미터 지점이 날씨의 변곡점인 듯, 바람과 체감온도 차이가 심하다. 등산로 옆으로 삐죽 솟은 산죽 잎을 보니, 적설이 20~30cm는 되는 것 같다. 부드럽던 등산로가 쉼터를 지나며 중간 난이도 정도로 경사가 가팔라진다. 하얀 눈과 상고대로 가득 찬 숲길이라 힘든 줄도 모르고 해발 1492미터 전망대에 오른다. 주차장을 출발한 지 1시간 30분 만이다. 전망대는 바람이 꽤나 차갑고 안개구름이 짙어 하얀 세상 이외에 주변 산은 보이지 않고, 직선거리 700여 미터 떨어진 계방산 정상도 보이지 않지만, 오늘은 겨울 정원 홍보담당 직원이 되어 멋진 눈꽃을 카메라에 담는다. 

전망대에서 계방산 정상까지는 체감온도는 다소 낮지만 무난한 난이도에 설경이 아름다운 길이다. 중간에 어떤 분의 아이젠 착용 방법을 여쭤봐서 도와주었더니 괜히 뿌듯함이 생긴다.
언덕같이 부드러운 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니 계방산 정상이다. 정상석과 안내판이 있는 계방산 정상에는 사람은 없고 구름과 안개가 바람이 빠르게 날아간다. 상고대가 붙은 정상석은 거센 강풍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우중충한 회색하늘에 강풍에 급하게 떨어지는 기온으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갑자기 구름이 걷히더니 새파란 하늘에서 밝은 햇살이 뿜어져 나오니, 정상 주변의 눈과 상고대가 새햐앟게 빛난다. 감탄할 새도 없이 다시 구름이 날려와 하늘을 덮어 버린다. 변화무쌍한 겨울산 봉우리 날씨다.

정상에서 남쪽 노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동쪽 주목군락지로 가는 길이 있다. 그칠 줄 모르고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동쪽 등산로를 따라가니, 바람과 나무, 눈, 얼음, 상고대가 만나 겨울 전시관을 만들고 있다. 눈꽃이든, 얼음꽃이든 실컷 보고 또 본다. 200~300미터 더 진행하니 겨울꽃이 하얗게 피어있는 주목군락을 만난다. 황홀한 기분에 계속 가고 싶었지만, 구름안개에 주변 시야가 열리지 않고 주목군락지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확실치 않아 적당한 거리에서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계방산 설경은 이미 눈을 통해 나에게 충분히 들어왔고, 렌즈를 통해 디지털 메모리에도 충분히 저장되어 있다. 담아도 담아도 자꾸만 더 담고 싶고, 계속 가지고 싶다. 멋진 설경을 담고 싶은 욕심이 크다. 이 멋진 자연을 물리적으로 가져갈 수 없지만, 마음과 사진 속에 담는 것은 조금 욕심을 부려도 된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니, 등산객들이 하얀 우주를 즐기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아까보다 구름이 걷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파란 하늘이 더 많이 보인다. 먼 계곡이나 이웃 봉우리까지 보이지 않지만, 정상 주의의 설경을 더 멀리 보고 내려간다.
 
경사가 급한 등산로가 아니었기에, 눈이 많이 쌓여 있지만 미끄럽지는 않다. 오히려, 깊이 쌓인 눈이 발걸음의 충격을 흡수해 주는 역할까지 해준다.
구름이 완전히 걷혀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상고대를 보니 초현실 미술작품 같다. 10년 전 양평 백운봉 겨울 산행, 설악산 겨울 산행 때 느낌도 이랬다. 정상을 지나며 카메라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었으니, 자연의 위대한 작품은 마음속에 가득 채운다.   

'이래서 겨울에는 계방산, 계방산 하는구나' 
어떤 말을 보탤 수가 없다.

 

지나가는 등산객은 '계방산 설경에 중독되어서 또 오고 싶다'라고 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사진이 언어가 되어 인터넷을 통해 계방산 설경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직접 본 설경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 구름, 햇빛, 바람, 안개, 눈비가 나무를 만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상고대를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눈, 귀, 코, 피부로 직접 탐지되는 이 공간의 생생한 분위기. 이 세상 어떤 작가도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없을 테고, 어떤 미술관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1200미터 고도까지 내려오는 조금씩 희미해지는 상고대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산행의 또 다른 묘미다. 게다가, 해가 서쪽으로 옮겨가니, 하산길에서는 나무에 붙은 얼음조각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된다. 
운두령이 가까워오니 출발했을 때와 달리 바람이 많이 잦아들어 체감온도가 높다. 차가 많이 떠난 운두령 주차장으로 내려가 산행장비를 정리하곤, 아쉬움에 다시 계단을 올라 눈 쌓인 등산로를 걷다가 내려와 산행을 끝낸다.


산행지: 계방산 (1577m, 강원 평창, 홍천)
날 짜: 2024년 1월 5일
날 씨: 흐린 뒤 차차갬
일 행: 맑은물
산행코스: 운두령- 쉼터 - 전망대- 계방산 정상-주목군락지 (운두령 원점 회귀)  
산행시간: 4시간 (11시 20분~15시 20분)
교 통: 운두령까지 자차 이용 (참고. KTX 진부역 활용한 동선 알아봤으나 여의치 않음)


[포토 산행기]

운두령 전나무 숲
너무 높아 구름도 망설이는 고개
운두령쉼터 전경
운두령 쉼터 설경
운두령 풍력발전
눈꽃과 얼음꽃
운두령에서 계방산 산행 시작
겨울 산에 가면 눈을 덮고 잠든 누군가 꼭 있다
상고대 생성중
상고대 나무
무채색 무설명
하얀 세상에 가끔 파란 하늘
고독해 보이지만.
조릿대로 적설을 알 수 있다
눈꽃 핀 계방산 나무
해발 1400미터 쯤
1492 전망대 근처
봄에는 야광나무 겨울엔 눈꽃나무
전망대에서 계방산은 1km
계방산 정상 가는 길
계방산 정상 가는 길
천년해로 하시길
계방산 정상 오르는 길
계방산 정상 오르는 길, 하늘이 열렸다 닫혔다.
계방산 정상 오르는 길
설마, 저기가 정상?
해발 1577미터, 계방산 정상
노동계곡으로 이어지는 계단
안개구름이 걷히며 빛나는 설경, 계방산 정상
갑자기 구름이 걷히더니,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고독하지만 임무수행중인 산행 안내판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하늘이 시시각각 변한다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주목군락지 방향에서 본 계방산 정상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짙은 안개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의 얼음손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계방산정상 - 주목군락지 구간
하산 중 구름이 걷히고 파란하늘이 열렸다
눈꽃이 아니라 얼음꽃
유니슨의 풍력발전기
유니슨 풍력터빈
운두령에서 서남쪽
운두령 속사방향 가던중 본 계방산 정상. 여기는 눈꽃이 뭐에요? 정도( 정차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