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쓸쓸했던 북한산 (2003년 11월 16일)

2004. 2. 25. 23:08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은 지난 2년간의 동호회 활동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올랐던 산이다.

 

9년 전 늦가을 어느 날, 군입대 하기 전에 고등학교 동기, 동문들이랑 북한산 첫 산행, 복학생 시절에는 학내분쟁 중 친목산행... 그리고, 더불어한길 친구들과도 북한산에 몇 번 왔었다.

아무튼, 그 뒤로 세월이 흘렀고, 세상도 많이 변했고, 나도 많이 변했다. 20대 때는 고민도, 꿈도 많았었는데, 지금은 개인적인 꿈과 욕심이 별로 없어졌다. 직장을 다니며 오히려 돈이 중심인 세상이 바꼈으면 좋겠다는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불어한길 정기산행일을 맞이하여, 안산에서 1시간 30분가량 전철을 타고 수유역에서 내려 도선사 매표소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갔다. 우이동 버스정류장에서 더불어한길 사람들을 반갑게 만난다. 초겨울 추위가 찾아와 500원짜리 면장갑을 산다.

도선사로 오르는 길은 몇년만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주로 북한산성 방향으로 산행을 많이 했었다. 도선사입구 매점에서 초겨울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산행을 시작하기도 추위를 달래다는 명목으로 친구들은 막걸리를 한잔씩 마신다.

 

예전에 깔딱고개를 오를 때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은데, 최근 2~3년 새 산을 다녀서 그런지 깔딱 고개를 빠르게 올라도 숨이 차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등산은 점점 쉬워지는데, 인생은 점점 더 힘들게 느껴진다.

 

깔딱고개를 돌아서면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눈앞에 나타나는데, 북한산 인수봉이다. 때 이른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겨울에도 암벽 하는 사람들인데,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야영장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 백운산장 앞에서 점심을 먹는데, 앞쪽 계곡에 벌써 얼음이 얼어 있었다. 추운 날씨에 벌벌 떨며 점심을 먹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을 먹고나니 몇몇 사람들은 이제 그만 내려가겠다고 한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북한산성 위문에 도착하고, 거기서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북한산성 길로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사람들을 설득한다. 

"지금 내려가면 지금까지의 힘든 게 헛될 거 같다. 북한산성을 넘으면 더 즐거운 길이 있어"

 

모두 함께 북한산성 위문으로 향한다. 병목현상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백운대는 오르지 않기로 하고 북한산성계곡 매표소 쪽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어찌 보면 가장 무난한 길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찾는 길이기도 하다. 단풍은 거의 다 떨어졌지만, 등산로 옆으로 낙엽은 두껍게 쌓여있다.

 

북한산성매표소 쪽 길은 처음에는 약간 가파른 내리막길이지만 별로 험하지 않은 길이다. 오히려, 계곡길이 좀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낙엽 쌓인 늦가을이라 나쁘지는 않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원효봉-염초봉의 암릉은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은 릿지길이다. 북한산성 성벽과 대서문을 지나고부터는 아스팔트 포장길이 시작된다. 

매표소 근처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상점이 대규모로 들어서고 있다. 이 상가조성 공사가 끝난 몇 년 뒤 북한산성을 찾았을 때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예전모습을 기억하고 있을까?

 

5시간여 만에 산행을 끝내고,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충무로에서 함께 산행한 사람들과 뒤풀이를 하고 헤어졌다.  

늦가을이라서 그런지, 산행을 하고 사람들하고 헤어지니 유난히 더 많은 아쉬움과 쓸쓸함이 남았다. 가을을 타는 것일까?


산행지 : 북한산 (서울)

날  짜 : 2003년 11월 16일

날  씨 : 맑음

산행코스 : 우이동 - 도선사 - 깔딱 고개 - 위문 - 북한산성계곡 

산행시간 : 5시간 30분 

일  행 : 더불어한길 9인

교   통 : 전철과 버스 (우이동, 북한산성매표소)


인수봉
인수봉
위문 (백운대암문)
하산길, 선생님과 학생들인 듯 ㅋㅋ
원효봉을 배경으로.
대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