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 24. 22:35ㆍ산행일기
1월에 봄 산행이라니...
어떤 산행이었을까요?
(03:40) 새벽어둠을 헤치고 구례구역으로 달려온 9명의 일행과 함께, 성삼재까지 택시를 타고 오른다. 2003년 여름에 지리산을 찾았을 때는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홀로 걸어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성삼재까지 택시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니 몸은 편하지만, 이런 길들이 지리산 환경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조금 불편하다.
새벽시간 성삼재 오르는 길은 택시기사분도 움찔할 만큼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짙게 내려앉아 있다.
(04:10) 성삼재에 도착했으나 매표소에서 출입을 막는다. 국립공원은 일출 2시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춥지 않은 날씨가 그나마 다행이다.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드디어 산행시작이다. 노고단산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넓기는 했지만, 12월 내렸던 폭설이 엊그제 내린 비에 녹아 빙판길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아이젠을 차야 할 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어서 미끄러지며 새벽길을 오른다. 우리 뒤로 다른 일행들의 불빛이 일렬로 줄지어있어 마치 야간 도주꾼들처럼 보인다.
(06:05) 1시간 만에 도착한 노고단 산장은 고요했지만, 산장 옆 취사장은 이른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컵라면과 즉석밥으로 든든한(?) 아침식사를 하고, 일출에 대한 기대로 서둘러 노고단재에 오른다. 새벽안개가 지리산 골짜기로 가라앉아 있지만, 해가 솟아나야 할 동쪽하늘에 구름이 남아있어 일출을 볼 수 없다. 지리산 일출은 아무나 보는 게 아니라는 말이 되내기며,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덩치의 반야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1월들어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 때문에 눈이 많이 녹았지만, 발자국으로 다져진 눈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예외 없이 무릎까지 쑥쑥 빠져 들어간다.
(07:55) 돼지평전에 도착할 무렵, 천왕봉과 남부능선 위를 덮고 있는 구름 위로 아침 해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일출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었지만, 고요한 지리산의 정적을 깨우는 태양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가던 길을 멈추고, 모두들 일출에 빠져든다.
돼지평전을 지나니 양지쪽은 눈이 거의 녹아 산행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는다. 주능선 남쪽 피아골과 북쪽 달궁계곡을 가득 채운 운해를 감탄하며 걷다 보니 지루하지도 않다. 임걸령 옆에 있는 샘은 한겨울인데도 얼지 않고, 물을 졸졸 흘려보내고 있다.
(10:25) 반야봉 바로 아래에 있는 노루목에 도착했다. 이 속도로만 가면 반야봉을 올랐다가 삼도봉도 잠깐 들렀다가 올 수 있을 것 같다. 1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 여유 있는 시간에 여유있게 반야봉을 오른다.
쉽게 오를 것 같았던 반야봉 등산로가 그리 만만치 않다. 한겨울 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로 해빙기처럼 눈 녹은 물이 등산로를 따라 흐르고,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길 옆 눈 속으로 발이 쑥쑥 빠진다. 등산복을 가볍게 입었는데도 따뜻한 날씨와 힘든 산행에 땀이 흐른다.
(11:35) 노루목에서 50분을 올라 반야봉 정상(1732m)에 도착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오르는 고됨을 씻어버릴 만큼 훌륭했다. 하늘에 있어야 할 구름이 지리산 골짜기로 모두 내려앉아 있다. 하늘에는 뜨거운 겨울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토끼봉-형제봉-촛대봉-천왕봉-중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고요하다. 멀리 남쪽과 서쪽 방향으로 운해에 떠 있는 봉우리들은 마치 다도해의 섬 같이 느껴진다.
(13:10) 반야봉 정상의 풍경과 분위기는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 신선의 세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신선이 될 수는 없기에, 점심을 먹고 아쉬운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오면서 뒤늦게 반야봉을 오르는 많은 산행객들을 마주친다. 모두 우리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인데, 인생의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은 이제 반야봉 정상을 오르고, 반야봉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젊은이들은 이제 인생의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며 가졌던 다짐들과 생각이 내려갈 때 쉽게 사라지듯 힘든 인생의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우리들 생각도 달라지게 될까?
(13:40) 올라갈 때와 달리 반야봉에서 노루목까지 30분 만에 내려왔다.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오후산행은 시간에 쫓길 것 같다. 피아골로 내려가는 삼거리까지 되돌아가는 길은 오전에 지나쳤던 길인데도 처음 오는 길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 조금 내려서면 계단길이 시작되는데, 남쪽능선이라 그런지 눈이 모두 녹아있어, 아이젠 없이 산행하는 게 편하다. 겨울산행인데 눈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안개는 가득하고, 바람은 따뜻하다. 오늘은 겨울 산행이 아니라, 이른 봄비 내린 다음날 아침에 오르는 산행 분위기다.
(16:25) 산행 시간이 점점 늦어져 걱정했는데, 굴뚝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피아골 산장에 도착하니 한시름 걱정이 사라진다. 산장부터 직전마을까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피아골 절경에 빠져들 수 있는 구간인데, 주위가 어두워 보이는게 없으니 아쉬움만 남는다.
(18:35) 구름다리를 지나고, 몇몇 명소를 지나 드디어 직전마을 제일 위쪽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했다. 산행을 끝내고도 새벽까지 뒤풀이를 했던 다른 때와 달리, 어제밤 수면 부족과 산행에 지친 사람들은 저녁을 먹은 뒤 일찍 꿈나라로 떠나 버린다.
반야봉 겨울산행은 산을 오른 게 아니라, 신선의 나라에 잠시 놀러 갔다가 내려온 듯한 기분이 드는 산행이다.
산행지 : 지리산 반야봉(1732m)
날 짜 : 2006년 1월 14일
날 씨 : 맑음(골짜기는 안개)
산행코스 : 성삼재-노고단재-돼지평전-임걸령-노루목-반야봉-노루목-임걸령-피아골삼거리-피아골산장-피아골-직전마을
산행참가 : 9명(맑은 물, 봄날, 하나사랑, 까마구, 솜다리, hey-u, 풀꽃, 먼발치에서, 산바람)
산행시간 : 13시간 25분(휴식, 식사시간 포함 05:10 ~18:35)
교통 : 영등포-구례구역(기차)-성삼재(택시)
피아골(버스)-구례(버스)
전주(버스)-안산(버스)
[포토 산행기]
[노고단의 새벽]
[임걸령 부근 어디쯤을 지나고 있다]
[노루목에서 왔던 길을 뒤돌아 보다]
[반야봉 정상에서... 운해가 노고단을 덥고 있다]
[지리산의 품에 안긴 여인]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청년들의 등산 모임!!! 더불어한길~]
[임걸령 샘 터지나 반야봉 오를 때는 날씨가 이랬는데...]
[오후에 내려올 때는 안개 때문에 날씨가 이랬다]
[이곳에서 피아골로 내려가면 됩니다]
[안개가 내려앉은? 혹은 운해 속의 피아골 상류]
[꼭 읽어보시고, 외우고, 실습하세요^^]
[가끔 단체사진을 끼워줘야죠^^]
[안개 낀 피아골 분위기]
[철계단을 내려서..]
[나무를 너무 사랑한 나무]
[피아골에는 귀신이 산다?!]
[다음날 점심, 우리는 12:30분 버스를 탔습니다. 피아골 갈 때 참고하세요~]
[우리가 탔던 구례군농어촌버스]
[파노라마는 클릭하시는 거 아시죠? 일출시간에 노고단재에서 본 반야봉과 노고단]
[만복대와 달궁계곡을 가득 채운 운해]
[돼지평전 지날 때쯤 일출을 보다]
[노고단, 만복대, 반야봉으로 둘러싸인 달궁계곡]
[남쪽방향입니다. 운해가... 눈부셔요~]
[반야봉 오르는 길에, 사진왼쪽이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오른쪽은 황장산 이어지는 능선]
[피아골 운해와 노고단, 만복대]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남쪽으로 운해가 대단합니다]
[천왕봉을 좀 더 가까이...]
[더 가깝게 줌으로 당긴 천왕봉과 주변의 운해들]
[마지막 천왕봉 사진입니다. 운해를 사진 속에 가두기만 해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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