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1. 22. 20:26ㆍ전국산행일기
토요일 오후라 영동고속도로가 조금 밀리긴 했어도, 그들이 강원도 영월 맑은물의 고향집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그들이 머물곳은 공기가 깨끗하고 대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산골마을이란 것을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찬 별들이 알려주고 있었다.
맑은물의 부모님은 인공의 음식물보다는 직접 기른 농산물과 직접 띄운 청국장으로 친구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해주셨다.
덕분에 먼발치에서, 콩깍지, hey-u, 가난한밤의산책, 까마구, 땍규는 밥 한 공기 이상을 비웠다. 배부른 행복을 즐기는 친구들에게 맑은물이 후식이라고 내온 것은 목살과 집에서 직접 재배한 상추와 술이었다.
"이런 후식이 어디있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불만의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이야 말로 진정 배부른 자들의 불만이었다.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기는 구워졌고, 익기가 무섭게 사람들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밥 먹을 때는 인기가 없었던 매콤한 갓김치는 살짝 익혀서 고기와 함께 먹을 때는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술상을 정리하고, 산간오지의 깨끗한 기운을 느껴보려고 그들은 마당에 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녁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별들이 반짝거렸고, 길게 흐르는 은하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비록 현재 삶이 각박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다.
다음날 아침, 바깥에는 늦가을 서리가 하얗게 내려있었고, 간이수도 옆에 있는 세숫대야에는 얼음이 얼어있었다. 잠을 깨려고 얼음물에 세수를 하던 땍규는 대충 세수를 끝내고 얼른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맑은물의 어머니께서는 아침으로 콩가루국(?)을 끓여주셨는데, 맛이 순하고 담백하여 과음으로 불편한 사람들의 속을 풀어주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머니께서 직접 준비해 주신 밥과 반찬을 식지 않게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나눠서 배낭에 넣고, 맑은물의 집을 나섰다.
승용차가 2대였는데, 맑은물은 "안전하지만, 싱겁게 이동하고 싶으면 '산책'형의 차를 타고, 확실한 가이드와 스릴 있는 이동을 원하면 내차를 타"라고 했는데,
어제 고속도로에서의 곡예를 봤던 사람들은 맑은물의 차를 피했고, 결국 까마구와 hey-u가 맑은물의 차에 타게 됐다.
시골길을 벗어나, 구불구불한 남한강을 따라 잠시달리다가 앞서가던 맑은물의 차가 소나기재 정상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주차장에서 내린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예전에 한번 이곳을 찾은 적이 있는 콩깍지는, 너무 멋진 곳이라면서 뛰어서 올라갔다. 그곳은 영월의 명소 중에 한 곳인 선돌이었다.
[영월 선돌]
수십 미터 절벽아래에서 흐르는 남한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첩첩이 포개어진 부드러운 산 줄기를 비추는 아침햇살, 늦가을의 청명한 아침하늘...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선돌을 떠나 소나기재 아래에 있는 장릉(조선 6대 왕 단종의 묘), 청령포, 영월읍내, 동강다리, 동강-서강 합수머리, 남한강변을 따라 난 아슬아슬한 도로, 고씨동굴 앞, 옥동천 옆의 기암절벽등을 지나 마침내 김삿갓계곡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맑은물의 차에 탄 까마구와 hey-u는 주위경치도 감상하고 훌륭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지만, 가난한밤의산책의 차에 탄 먼발치, 콩깍지와 땍규는 동강과 서강을 헷갈려했다.
김삿갓계곡 주차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직 아침이라서 그런것 같았다. 마대산을 가야 하는데,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해서 주차장옆에 있는 ○○상회 주인에게 맑은물이 길을 물었더니, 집옆으로 난 길이 맞는데 지금 산불예방기간이라서 벌금이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벌금이라는 소리에 잠시 갈등하던 그들은 일단 산길을 따라 올랐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쪽길이 마대산이 아니라 곰봉 등산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마대산 등산로가 어디에요?'라고 물어본 것이 아니라, '산에 가려면 어디로 가요?'라고 물어보았고 그래서 상회 주인아주머니는 그냥 곰봉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맑은물과 까마구가 지도를 보고 의심하기는 했지만, 마대산 남쪽 능선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올랐다. 한 30분을 올라가서야 맑은물은 이 길이 마대산이 아니라, 곰봉 오르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려갈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곰봉이라고 말하고 계속 오르던 길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마대산 앞에 곰봉이 있다는것은 알고 있지만, 지도 한 장 없어서 조금 걱정되기도 했지만, 까마구가 등산객들이 버린 지도를 발견하여 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곡골갈림길을 지나니 가파르지 않은 능선길을 쉬엄쉬엄 오르는데, 산책은 어제 과음을 했던지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콩깍지는 나무작대기를 잡고 이곳저곳을 파헤치면서 조그만 둥굴레를 캐었다.
땍규는 처음이라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과 많이 어색해하지는 않았다. 맑은물은 특유의 말장난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려고 노력했다.
934봉과 갈림길에서 왼쪽(북동쪽)으로 가야만 곰봉에 오를 수 있는데, 많은 산행경험으로 그들은 어렵지 않게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곰봉 정상 쪽에는 거대한 바위들도 많은데, 전망대에 오르지 않고 정상에서 점심 먹을 생각으로 앞으로만 가고 있었다. 주차장을 출발한지 2시간 30분 만에 드디어 그들은 곰봉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영월군에서 세운 표지석과 오래된 나무표지석이 있었는데, 나무표지석이 걸려있는 뒤쪽 바위가 곰을 닮아서 곰봉이라고 불린다는 사실도 역시 그들은 알지 못했다. 평소에 함께 산에 오르면 주변에 있는 여러 산들을 알려주면서 즐거움을 주었던 맑은물도 '여긴 나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 저쪽으로 어래산, 소백산 형제봉이 있는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정상에서 제천에서 왔다는 산행객들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정상아래 평지에 자리를 잡고 비빔밥을 준비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밥과, 갖은 나물로 만든 비빔밥은 그 어느때보다도 빨리 없어졌다.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지친 몸으로 산책이 배낭 속에 넣어온 맥주를 한두 잔씩 돌려마시면서 오래전 김삿갓처럼 구름 따라, 산 따라, 물 따라 자리를 떴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이제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었는데, 실제로 처음에는 가파르기는 했지만, 그다지 험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 십 년 된 소나무, 참나무, 이름 모를 나무들에 감탄했고, 낙엽을 방석삼아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쉬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순간 갈림길을 지나고부터였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진 길에는 참나무 이파리가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겨울 눈길보다 더 미끄러운 것이었다. 그들은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밧줄에 의지해서 내려갔지만, 그들 가운데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산책은 넘어져서 손바닥이 벗겨졌고, hey-u와 콩깍지는 넘어지고 구르고 아찔한 순간을 보이기도 했다.
참나무 숲이 끝나고 소나무 숲이 나타나면서 경사도 완만해지고, 멀지 않은 곳에 농가가 나타났다. 드디어 곰봉을 모두 내려온 것이다. 곰봉 아래에는 조선민화박물관이 운치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콩깍지는 "여기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리저리 굴러서 산을 내려와서 예술을 감상할 여유는 없는듯했다.
김삿갓계곡까지 내려온 그들은 맑은물과 산책이 처음 출발했던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를 타고 고씨동굴로 향했다. 산책은 피곤하다고 그냥 가자고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고씨동굴을 안 보고 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맑은물의 말에 다른 일행들이 모두 설득당하고 말았다.
고씨동굴은 석회암동굴이었는데, 처음 들어와 본다는 콩깍지가 특히 더 좋아했다. 그렇지만, 동굴을 한 바퀴 돌고 나올 때쯤에는 모두들 힘이 빠지고 산행보다 더 힘들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씨동굴 맛집, 칡국수]
고씨동굴 앞에서 맑은물의 소개로 칡국수를 먹게 되었는데, 양도 많고 맛도 있어서 모두들 만족스러워했다. 운전을 해야 하는 맑은물과 산책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산행의 피로를 풀었는데, 평소 술을 좋아하던 맑은물은 참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컴컴해진 남한강을 따라 맑은물의 고향집에 잠시 들렀다가, 각자의 생활공간이 있는 수도권으로 향했다. 산행이 피곤했던지, 맑은물의 차에 옮겨 탄 먼발치에서와 콩깍지는 잠이 들어버렸고, 맑은물 옆자리의 땍규도 언제부턴가 자고 있었다.
맑은물이 운전하는 차는 영동고속도로를 외롭게 달리고 있었다.
#포토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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