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2. 21. 19:30ㆍ산행일기
설 연휴를 맞아 강원도 영월군 남면에 있는 검각산(해발 505m)을 올랐다.
검각산은 많이 알려진 산이 아니라서, 고향에 있는 산이지만, 작년 가을에서야 등산로가 있다는 것과 조망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 높은 산도 아니고, 산행 초입은 마을과 붙어있어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산도 아니지만, 멀리서 접근하기에 대중교통이 편리한 것은 아니다.
(11:10) 아침에 눈발이 좀 날리다가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려있다. 고향에 설을 쇠러 내려왔기 때문에 등산장비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대충 집에 있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입고 형과 함께 집을 나섰다. 큰 산은 아니지만, 형과 산을 가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동네를 벗어나, 갱쟁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농사를 짓지 않아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밭을 지나 사람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은 길을 찾아 능선을 오른다. 묘지가 있는 능선 안부에 어렵지 않게 도착한다. 이곳에서 국지산과 태화산이 보여야 하지만,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가을에 길을 잃었었던 갱갱이 골 갈림길에서 오른쪽(북동쪽)으로 길을 따라간다. 능선에는 지난가을과는 달리 누군가 잡목들을 베어내고 등산로를 내놓았고, 등산로를 따라 노끈이 매여져 있어서 길을 찾기가 쉬웠다. 동네 주민 누군가가 한 것 같지는 않고, 면사무소나 군청에서 길을 낸 것 같다. 검각산의 동쪽은 경사가 가파르고, 서쪽은 마을이 있어서 능선이 부드럽다. 하지만, 등산로는 험한 구간 없이 평범하다. 주위의 나무들도 소나무를 비롯하여 동네에서 많이 보던 익숙한 것들이다.
(12:25) 검각산 정상은 누군가 나무들을 어지럽게 베어 놓았다. 보아하니 주변의 시야 확보를 위해 잘라낸 것 같았는데, 기분이 씁쓰름하다.
나도 그렇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을 좋아하겠지만, 이렇게 많은 나무를 베어서까지 조망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누구를 위한, 어떤 경치가 중요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정상을 지나고 나서는 하늘이 조금씩 개기 시작한다. 동남쪽으로 눈에 띄는 삼태산, 초로봉이 부드러운 산세를 드러낸다.
배 골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섰다가, 거꾸로 돌아올라가 능선길을 따라가니, 전망 좋은 410봉 정상이다. 하얗게 얼어붙은 영월 서강이 검각산 아래를 돌아서 청령포를 휘감고 사라진다. 저 멀리 영월읍과 선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더 멀리 볼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안부를 내려섰다가 오른 곳은 400봉이다. 태기산에서부터 흘러온 평창강이 영월의 연당리에 이르러 물길을 180도 바꿔서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동남쪽으로 흐르게 만드는 산이 바로 검각산이다. 400봉에서는 연당리와 방절리를 마치 반도처럼 휘감아 흐르는 서강을 조망할 수 있다. 400봉을 지나면 오래전 주요한 교통로였던 각한치에 다다르게 된다.
각한치는 소의 뿔에서 땀이 날 정도로 가파른 고개였으나, 제천 쪽에서 영월읍으로 가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각한치 아래에는 태백선 터널과 확장된 38번 국도의 각한 터널이 지나고 있다.
(14:20) 각한치에서는 등산로가 보이지 않아 잡목 숲 사이로 해서 서쪽 방향으로 내려가니, 작은 배 골이다. 얼어붙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태백선 철다리를 통과하고, 38번 국도의 지하도를 통과하니 서강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향을 떠난 지 10 수년만에 서강(평창강)에 내려가 흐르는 강물을 본다. 강물이 무심히 흘러가듯, 수많은 세월이 무심히 지나갔다. 그저 흐르는 세월에 떠내려가듯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산행지 : 검각산 (해발 505m, 강원 영월)
날 짜 : 2005년 2월 8일
날 씨 : 흐림
코 스 : 갱갱이골-묘지-390봉-검각산정상-410봉-400봉-작은배골-연당천
시 간 : 3시간 20분 (11:10 ~ 14:30)
일 행 : 2명
교 통 : 영월 연당까지 직행버스 1시간에 2~3회 운행, 갱갱이 골 입구나 광천리는 시내버스 하루에 3~4회 운행
[검각산 정상-나무들이 잘려나갔다. 나무도 아프고, 내 마음도 아프다.]
[410봉에서 바라본 서강, 단종으로 알려진 청령포가 지척이다.]
[산행코스 : 도장골 -묘지 -390봉 -검각산 정상 -410봉 -400봉 -작은배 골 -연 당천 따라서 도장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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