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8. 00:44ㆍ산행일기
수도권에 청계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3개가 있다. 한자로도 모두 淸溪山으로 표기되는 거 보면, 예전에 모두 맑고 고운(淸) 계곡(溪)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산들이다.
과천 청계산은 북한산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으로 등산로가 가장 많이 훼손되었고, 점점 다가오는 개발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포천 일동의 청계산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름대로 맑고 푸른 계곡을 숨기고 있다.
최근에 중앙선 전철역 개통으로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양평 청계산 아직은 괜찮지만,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 훼손되는 건 시간문제. 하지만, 이제 등산객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고, 양평군에서도 신경 쓰고 있을 테니, 과천 청계산보다는 괜찮은 운명일 것 같다.
그동안 국수역 뒤로 보이는 청계산을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함께가자우리'와 마음이 맞아 일요 봄 산행을 나서게 됐다. 중앙선 전철을 타고 청량리에서 국수역까지는 대략 40분, 구리와 팔당, 운길산역 등을 지나 전철 종점인 국수역에 내린다. 이른 시간 집을 나와서, 우선 국수역 앞에 있는 국숫집에 들어가 잔치국수를 먹고 산으로 향한다.
마을을 지나 산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한참 동안은 오르막 보다는 평탄한 능선길이 길게 이어지다가 약수터를 지나고서야 오르막 등산로가 나타난다. 평탄한 능선길은 군포 수리산역에서 슬기봉을 오르는 능선처럼 완만해서 지루할 수 있지만, 곳곳에 봄을 알리는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있고, 나무들의 초록 새순이 솟아나고 있어, 심심할 틈이 없다.
이른 4월의 산행은 올라갈수록 봄이 다가 온 정도가 달라, 어린 새싹과 꽃의 개화가 눈에 보이게 달라지는 묘미가 있다. 4월 봄산 헹궈 10월의 가을 산행은 높지 않은 산에서도 풀과 나무들의 색깔로 표고차를 느끼며 산행할 수 있다.
힘든 산행이 아니라서 천천히 형제봉을 오르고, 그다음 도착한 작은 봉우리에서 함께가자우리와 간식을 먹으며 한참을 쉰다. 봄 산행이니 만큼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 정상 아래 안부에는 거대한 송전탑이 세워져 있는데, 철탑을 세우느라 숲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공사가 끝나면 원상 복구되겠지만, 몇 년 뒤에는 거대한 흉물이 청계산 일대를 가로지르게 될 것이다.
안부에서 힘을 다해 오르막길을 단숨에 올랐더니 큰 잣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청계산 정상이다. 정상은 조망이 괜찮아, 남한강부터 백운봉, 용문산, 유명산, 봉미산, 운길산, 예봉산, 앵자봉 능선까지 사방이 딱 트여 좋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서 봄햇살을 맞으며 시끌벅적 봄을 즐기고 있지만, 나무그늘 없는 정상의 4월 햇살이 너무 따가워 오래 머물지는 않고,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코스로 하산을 한다.
내려오면서 '함께가자우리'에게, "부용산으로 갈까?" 했더니, 한동안 말이 없다. 당장 대답을 않는 걸 보니, '안 간다고 할 수도 없고, 힘든 데 간다고 할 수도 없고......' 속으로 매우 난감해하는 거 같다.
'말을 다시 거둬들일까? 그냥 부용산으로 가자고 다시 말해볼까?' 고민하다가 일단 갈림길이 나오는 형제봉까지는 말없이 걷는다. 형제봉을 지나 갈림길에 다다르자 말이 없던, '함께가자우리'가 먼저 부용산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부용산으로 방향을 잡고 나니 그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청계산 주능선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부용산 능선에 접어드니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한적한 길이 시작된다.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사이에 진달래꽃들도 활짝 피어 어울려 있다.
하지만, 한적함도 잠깐. 조금 더 걷다 보니 위에 철탑 공사하는 삭도(Rope Way)가 요란하게 자재를 옮기고 있다. 잠시 삭도가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다가, 공사용 임도를 따라가 보니, 엄청난 전선과 거대한 설치용 기계가 나타난다. 전기가 필요하고, 철탑이 꼭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의 공사도 필요하겠지만, 늘어나는 전기소비를 언제까지 공급할 수 있을지... 조금 먼 미래를 볼 때 언제까지 가능할지 요즘 들어 점점 회의가 든다.
넓은 공사용 도로를 지나고 부용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의외로 가파르다. 힘이 부칠 때가 됐지만 한걸음 한걸음 옮겨 부용산 정상에 오른다. 부용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30~40m 지점에는 팔당호와 양수리, 두물머리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앉아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다가 다시 다음 봉우리로 가니 그곳에도 역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양평군에서 나름 좋은 등산로를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 같다. 청계산에서 부용산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사실 남한강과 북한강을 나누는 한강기맥 구간으로, 한강기맥은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을 다시 만나게 해 주고는 조용히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전망대를 지나서는 계속 내리막길이라 쉽게 양수역에 도착하게 됐고, 양수역 앞에서 '함께가자우리'와 뒤풀이를 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전철이 개통되어서 훌륭한 주말 등산로를 가지게 되었으니, 청계산과 부용산에 가는 사람들이 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면, 과천 청계산과 달리 계속해서 맑고 깨끗한 산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산행지 : 청계산 (경기 양평)
날 짜 : 2009년 4월 12일 (일)
날 씨 : 맑음 (4월인데, 기온 약 25도. 더웠음)
산행 코스 : 국수역 - 샘터 - 형제봉 - 청계산 정상 - 형제봉 - 부용산 갈림길 - 부용산 - 양수역
산행 시간 : 6시간 (11:40 ~ 17:40 )
일 행 : 함께가자우리, 맑은물
교 통 : 수도권 전철 중앙선 이용 (국수역, 신원역-개통 예정, 양수역 )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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