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6. 23:08ㆍ산행일기
깊어가는 가을에 집에서 가까운 인왕산을 찾았다.
오가며 종종 바라보는 산이지만, 93년쯤 일반인에게 개방될 때 한번 오른 이후로 오랜만에 인왕산 산행이다.
아내와 버스를 타고 사직공원에 내려 방향감으로 산행 들머리를 찾는다. 주택가를 지나 인왕산 아랫길을 따라가다 보니 서울 성곽길을 만난다. 성곽길 옆 공원에만 올라도 경복궁과 종로 광화문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최근에 서울의 옛 물길에 호기심이 생겨서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산과 언덕을 이어보니 대략 옛날 물길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체육공원을 지나 성곽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손가락 굵기에 길이가 15cm가 넘는 지네가 앞을 지난다.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큰 지네인데 다행히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길을 지나 다시 풀숲으로 들어간다. 서울, 그것도 도심 바로 옆에서 큰 지네를 마주치니 징그럽다기보다는 이런 곳에도 희귀한 지네가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지네를 보내고 나타난 도로를 가로질러 정상으로 향 할려니, 등산로가 수해로 유실되어 올 겨울(2011년)까지 공사를 한다는 안내판이 앞을 막고 있다. 코스를 변경하여, 도로를 따라 돌아 만 수천 약수터가 있는 등산로를 따라간다. 작은 만 수천 약수터를 지나 오르는데, 느긋하게 가을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를 만난다.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있던 청설모가 소나무 아래로 내려오다가 고양이를 보고 기겁을 하고 오르는 모습이 재미있다. 나무 위에는 까치와 산새들, 하늘에는 까마귀들도 시끄럽게 군다. 인왕산은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들이 놀기에 괜찮은 곳이고, 이 가을은 참 괜찮은 시간이다.
산길을 걷다 보면 다시 성곽을 만나게 된다. 성곽길을 따라 걸어 높이 올라 갈수록, 조망이 좋아지더니, 어느새 눈앞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나오는 치마바위가 펼쳐져 있다. 전망 좋은 군 초소를 지나 5분만 더 올라가면 인왕산 정상이다.
인왕산 정상에 오르니 북쪽으로는 외북한산(외설악에 빗댄 말)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위쪽은 단풍이 들었는지 가을 색을 띠기 시작하고, 아래쪽은 아직 초록빛을 띠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한강과 서해바다가 가을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동쪽의 낙산은 작은 언덕처럼 보인다. 남산은 낮지만 녹지가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산처럼 보이는데, 낙산의 현재 모습은 조금 안타깝기는 하다. 인왕산 정상에서는 무엇보다 서울의 도심지역이 잘 내려다 보인다.
종로와 명동 일대의 고층빌딩은 산 위에서 바라보아도 아찔할 지경이다. 사람들이 중학천, 청계천, 무악천과 함께 어울려 살고, 남산도 위엄이 있던 시절보다 지금 빌딩 숲을 지은 세상을 왜 더 '발전된' 사회로 보는 것일까?
정상에서 올라왔던 성곽길을 따라 부암동 방향으로 돌아 내려온다. 뒤돌아본 거대한 암벽, 기차바위이다.
이후 윤동주시인의 언덕으로 하산하여, 부암동에서 맛있는 간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심 속 인왕산에서 나와 아내는 심각한 토건 문제, 도시 집중 문제를 봤지만, 도시를 인간이 만든 예술품으로 보는 분들도 있고... 서울 도심을 볼 수 있어서 언제든 가볼 만한 산이다.
산행지 : 인왕산 (338m, 서울 종로, 서대문)
날짜 : 2011년 10월 16일
날씨 : 맑음
산행코스 : 사직공원 - 성곽길 - 만수천 약수터 - 성곽길 - 정상 - 윤동주 시인 공원
산행시간 : 2시간 30분
일행 : 맑은물 & 나비
교통 : 대중교통 (전철 3호선 경복궁역 / 버스 사직공원)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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