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백운대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양주 앵무봉(2011.9.18)

2011. 9. 29. 15:31산행일기

휴일 아침, 별 일 아닌 걸로 아내와 티격태격했다. 상황이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니지만, 그 순간에는 그렇지 못해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도 나는 쉽게 기분이 풀어지는 편이라서, 가까운 산으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제안한다. 아내는 기분이 늦게 풀리는 편이라, 시큰둥한 표정이지만 주말이라 나들이 겸 해서 따라나선다.

 

집을 나설 때까지도 사람들로 북적거릴 서울의 산을 제외하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출발하고 나서 멀지 않은 양주의 앵무봉으로 향한다. 경기도 양주의 앵무봉은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워 뒤로 미루었던 산이다. 

 

낡은 승용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의정부 외곽길을 돌아,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울대고개와 장명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말머리고개를 차례로 넘는다. 말머리 고개를 넘어 기산저수지를 지나며 좌회전, 마장저수지가 보이는 곳에서 다시 한번 좌회전하여 안고령 골로 들어가야 했지만, 가다 보니 어느새 마장저수지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차를 돌려 마장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안고령골이라고 쓰인 식당 간판들을 발견한다. 

 

일단, 안고령골로 들어섰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산을 찾을 때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산행 들머리를 찾으려니 머리가 깜깜해진다. 동네가 크지 않아서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 안고령 마을 끝 식당 주차장까지 올라갔다가, 블로그에 소개된 연세 요양원을 겨우 찾는다. 

하지만 차를 세웠다고 산길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 유원지 마당을 가로질러 헤매다가, 최근에 새로 지은듯한 깨끗한 집 옆의 산길에 작은 표지기를 발견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작은 밤송이 들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아직 밤이 나오기엔 이른 시기지만 밤송이를 까 보니 엄지손톱보다 작은 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작고 덜 여문 햇밤이지만 아내와 나는 밤 한쪽도 나눠 먹는다. 밤나무와 참나무가 섞여 있는 등산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듯, 길 흔적만 남아 있어 마치 옛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다.

조금 더 오르다가, 길 옆에 앉아 집 반찬으로 대충 준비해 온 도시락을 나눠 먹는다. 아내와 나의 냉랭했던 분위기는 산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풀어졌다. 숲의 기운이 서로의 날카로움을 부드럽게 만드는 효능이 있는 것 같다.

아래 음식점을 지나 올라오는 길이 합쳐지면서 등산로는 뚜렷해졌지만,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여름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나무의 허리가 뚝 잘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나무에게 이는 비극은 아니니, 이곳에 머물며 자연스럽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잠들 것이다. 숲 속의 벌레들에게, 풀들에게, 나무들에게 자신을 허락하고, 다시 자연이 된다.

 

가파르기만 하던 등산길이 어느 정도 오르니 오르락내리락 길로 바뀐다. 아직은 숲이 우거진 여름이라 주위 조망이 시원하지는 못하지만, 잔뜩 흐린 초가을 바람은 시원하다. 아내와 딱 1시간만 산행을 하고 돌아내려 오기로 해서, 정상 근처까지 갔지만, 함께 가지 못하고 혼자 정상까지 달린다. 숨이 헉헉 차오르고, 오랜만에 심장 박동은 최대 부하를 기록한다. 5분을 달려 정상에 오르니 동서남북 사방이 확 트인다. 특히, 남쪽으로 보이는 북한산 뒷모습은 절경 중에 최고다. 동북쪽으로는 불곡산의 모습이 또렷하고, 그 뒤로 연인산 능선 등 가평의 고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남서쪽으로는 계양산이 보이고, 그 뒤로 군기지를 머리에 이고 있는 수리산이 눈에 들어온다.

날씨는 흐렸지만, 바람이 솔솔 부는 날이라 1년에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조망을 만끽한다.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기록을 남기고, 정상을 돌아 내려온다. 아래에서 아내는 빨리 내려오라고 산새 같은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내려와 보니 아내는 정말 새처럼 소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 조망이 좋아 올랐다고 한다. 

올랐던 길을 되돌아 차를 세워놓은 요양원 방향으로 내려가니 2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집에서 조금 일찍 나왔더라면, 3시간 정도면 아내와 함께 정상까지 갔다 왔을 텐데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앵무봉은 북한산의 북쪽 절경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좋은 산이다.


산행 : 양주 고령산 앵무봉

날짜 : 2011년 9월 18일

날씨 : 잔뜩 흐리고 산들바람

산행코스 : 안고령 마을(연세 요양원)- 북쪽 능선 - 정상 - 북쪽 능선(원점회귀)

산행시간 : 2시간 15분 (14:05~16:20)

동행 : 맑은물과 아내

교통 : 승용차 이용 안고령 마을 접근


[포토 산행기]

[산행 들머리 - 연세요양원 뒷쪽]
[도깨비 참나무]
[초가을 야생화]
[살아 숨 쉬는 숲]
[잠자는 도토리]
[???]
[등고선 같은 무늬가 예쁜 버섯]
[앵무봉의 가을꽃]
[정상에서 바라본 일산, 한강, 김포, 서해바다]

 

[앵무봉에서 바라본 북한산 인수봉, 백운대]

 

[북한산 인수봉, 백운대]
[앵무봉 정상에서 바라본 계양산]

 

[앵무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서쪽, 멀리 관악산-삼성산, 아주 멀리 수리산이 보인다]
[서울 - 국회의사당, 저 멀리 뒤쪽 산은 수리산]
[앵무봉 정상]
[앵무봉에서 북서쪽 방향, 멀리 보이는 뒤쪽은 아마도 북한 땅]
[ 북동쪽 조망, 연인산 방향]
[두메부추]
[뜨겁고 치열했던 삶의 흔적]

 

[앵무봉 야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