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7. 12:47ㆍ전국산행일기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 그대로 일도 많고, 탈도 많고, 사고도 많았던 2011년이 끝난다. 더불어한길 사람들과 2011년 마지막날 만나 2012년 첫날 산행을 하기로 했다. 미혼이 다수이던 시절에는 연말연시에 1박 2일로 여행+산행을 떠나는 것이 더불어한길의 전통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부모가 되었고, 한동안 새해 첫날 산행은 '그땐 그랬지'라고 말하는 추억의 한 장면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한길 회원 '먼발치에서'와 산행 계획을 세우다가, 용의 해를 맞이하여 이름에 용(龍) 자가 들어가는 산중에서 선택하기로 했다. 용화산, 용문산, 용봉산 등등 많은 후보 중에 가평의 석룡산(石龍山)을 가기로 정했다. 정상에 용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긴 바위가 있어 석룡산으로 불린다는데, 과연 이번 산행에서 용바위를 찾을 수 있을까?
2011년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집을 출발하여, 가평 읍내에서 후배 종만을 태우고 가평천을 따라 석룡산 아래 조무락골로 향한다. 해는 지고 약한 눈이 내린 길은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용수목과 38교를 지나 조무락골로 들어간다. 민박집에 도착하여 방문을 열자 먼저 온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다 고구마를 삶아 먹으려 하고 있다.
올해 마지막을 같이 보내고, 새해를 같이 맞이할 사람들이 누구일까? 오직한길과 8살 딸 명, 녹친의 종식선배, 은빛날개와 먼발치에서, 녹친의 혜윤씨, 후배 종만씨, 나와 아내 나비, 이렇게 모두 8명이 2011년, 2012년 연말연시를 함께 보낼 사람들이다. 우리가 저녁 당번이지만 함께 음식을 준비하여 만찬을 즐긴다.
제야의 종소리가 티브이에서 울릴 때를 한참 넘기도록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고, 새해 첫날 아침, 떡국을 먹고 산행을 시작한다.
민박집 마당 출발하여 새들이 춤추고 논다는 조무락(鳥舞樂)골 상류를 향해 천천히 올라가니 이름에 걸맞게 겨울 산새들 소리가 시끄럽다. 계곡물이 꽁꽁 얼어붙은 추운 겨울산에 이렇게나 많은 새들이 살고 있다니 뭔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쁘다. 사실, 원래 새는 사계절 가리지 않고 많을 텐데, 아무래도 차갑게 얼어붙은 계곡물의 침묵이 새의 수다를 더 크게 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
잠시 후 계곡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길과, 능선을 따라 계곡을 오르는 길이 나왔는데, 우리는 계곡을 따라가다 쉬밀 고개를 지나 정상을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복호동폭포까지는 산책길 같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복호동폭포는 하얀 빙폭이 되어 잇다.
복호동폭포를 지나서도 한동안 산책길 같은 편한 길이 이어진다. 주변으로 물푸레나무, 밤나무, 참나무, 잣나무 등등 많은 나무들이 어울려 있는 겨울의 산책길도 우거진 숲길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너고부터는 서서히 가파른 언덕이 시작되더니, 이내 된비알이 시작된다. 어젯밤에 얘기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어색한 종만 씨는 선두에 서서 외로운 산행을 하고 있다.
눈길을 쓸고 가는 은빛날개의 반려견 노마는 눈이 녹아 털에 얼음이 붙어서 떼어 줘야 하고, 가파른 길이 시작되었지만 하얀 눈길을 달려온 명이는 신났고, 종식 선배와 혜윤 씨에게서는 설명이 쉽지 않은 산꾼의 느낌이 풍긴다.
된비알 길을 올라가지만 반려견 노마와 명이의 속도에 맞춰 가다 보니 힘듦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산행이 계속된다. 날씨도 그다지 춥지 않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서울 쪽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 산에서도 눈을 볼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생각보다 많은 눈이 쌓여있어서 모두가 즐거운 겨울 산행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2004년 산행 때 참나무 숯을 위해 조림을 했다는 표지판이 있던 곳이, 몇 년 사이에 빽빽한 물푸레나무 숲으로 바뀌어 있다. 가끔 마주치는 자작나무 껍질은 2년 전, 겨울산행을 했던 설악산 서북능선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쉬밀 고개를 향해 올라갈수록 하늘은 맑고 파랗지만, 화악산을 넘어온 구름에서 날리는 소낙성 눈이 날리기 시작하고, 은빛날개를 따라온 노마는 2010년 영동의 천태산 산행과 달리 추위도 타고 점점 뒤처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된비알을 지나 쉬밀고개 도착.
쉬밀 고개에 도착하니 바람이 아래와 완전히 다르다. 해발 1400미터 화악산 중봉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쌩쌩, 체감온도는 30분 전 보다 10도 이상 낮을 듯싶다. 여기에서 화악산 가는 길은 등산로 통제되어 있고, 쉬밀 고개를 넘어가면 화천군, 남서쪽 길이 석룡산 정상으로 가는 길인데, 바람에 눈이 날려 등산객의 흔적이 없다.
겨울 산행 경험 없는 종만 씨는 걱정스러운 듯, "무리하지 말고 여기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한다.
나도 여러 산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사람의 흔적이 없는 산은 처음이다. 다른 한길 사람들은 몇 년 전 소백산에 쌓인 눈을 얘기하며 농담을 하지만, 쌓인 눈은 소백산이 더 많지만, 그땐 사람의 흔적이 명확했고, 날씨도 따뜻했지만, 오늘은 바람도 차고, 아이와 반려견도 있다. '더불어한길' 산행 같았으면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하겠지만, 산꾼의 풍모를 풍기던 종식 선배와 혜윤 씨가 먼저 치고 나가고, 다른 일행도 별 걱정이 없이 보여서 불안한 마음을 접고 일단은 따라나선다.
쉬밀 고개 능선은 거센 바람에 날려온 눈으로, 어른들은 종아리까지 명이는 무릎 위까지 쑥쑥 빠진다. 반려견 노마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서, 은빛날개가 품에 안고 산행을 한다. 정상에 가까워오니 상고대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상고대에 홀려 추위와 힘든 상황을 잊고 걷다 보니 어느새 해발 1147미터의 석룡산 정상에 도착한다.
귀를 때리고 손의 온기를 빼앗아 가는 바람의 영역 석룡산 정상은 사람이 오래 머무를 곳이 못된다. 서둘러 사진 몇 장만 기록으로 남긴다.
어느덧 아침 먹은 시간이 꽤 지나서 배가 고파오지만 정상에서 뭘 먹을 상황은 아니다. 잠깐 휘날리는 눈이겠거니 했는데, 눈도 점점 거세어진다. 올라왔던 길이 더 편한 코스지만, 날씨가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해 거리가 짧은 능선길(3.2 km)로 가기로 한다.
정상을 떠나 맞은 편의 1140미터 봉까지 가려면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아주 초급의 릿지 코스지만 눈이 내려 보이지 않기 시작하는 길이 이제는 미끄럽기까지 하다. 은빛날개의 품에 안겨온 노마도 힘들어하고, 노마를 안고 올라온 은빛 날개도 힘들게 내려간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겨울 산행이 처음인 종만 씨에게 나는 화악산에서 넘어온 구름 때문에 일시적으로 내리는 눈이라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1140미터 고지를 올랐는데도 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내리막만 내려가면 될 텐데, 눈길을 걸었더니 허기가 져서 모두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다행히 한때 산꾼이 썼을 법한 움막을 발견하고 들어가 보지만, 날카로운 산바람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산에서 어쨌든 뭐를 먹기는 해야겠지만, 움직이던 몸을 멈추니 짧은 시간 한기가 몰려온다. 그나마 겨울 옷을 두툼하게 입고 온 사람들은 괜찮지만, 옷이 얕은 종만 씨와 어린 명이는 쉬면서 온기가 식었는지 오한을 느끼는 것 같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서둘러 다시 출발하는데 눈발은 그치기는커녕 이제는 함박눈이 되어 한쪽 얼굴을 때린다. 말 그대로 북풍한설(北風寒雪)이다.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화악산과 조무락골 일대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지만,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조망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산길이 코스는 짧다지만, 올라올 때보다는 다소 험한 릿지길을 몇 번 지나고, 올라올 때보다는 더 미끄러운 눈길을 지난다. 석룡산이 나름 널리 알려진 산이라 생각했는데, 겨울 등산객은 많지 않았는지 등산로가 희미하고 눈은 발목 이상까지 쌓여 있는 길이 계속 이어진다.
그렇게 30분 정도 내려오니 삼팔교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잣나무 숲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북풍이 불고 있는 마루금을 내려서니 눈보라는 약해졌지만, 눈은 계속 멈출 줄 모른다. 조금씩 내려갈수록 눈이 적게 쌓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사람의 발자국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외길이라 생각하여 오직 한 길과 딸 명이가 먼저 앞장서고 종만 씨가 그 뒤를 따라나섰는데, 표지기가 묶여 있는 산길을 지나치고 그만 가지 말아야 할 임도로 들어서 버렸다. 몇 년 전 여름, 근처의 가평 연인산에서 임도로 들어섰다가 고생한 적이 있어서, 아차 했지만, 이미 늦어서 어쩔 수 없다. 서둘러 달려가서 한참 앞에서 선두를 만났지만, 이젠 되돌아가기엔 늦어서 모두 천천히 임도를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또 한 번의 갈림길에서 표지기가 나왔지만, 위치가 애매하여 일단은 임도를 더 따라가다 보니 다시 길이 없어진다. 10여분을 내려갔었지만, 다행히 산행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라 당황하지 않고 서로를 독려하고, 어린 명이를 안심시켜 가며 왔던 길을 되돌아 반대편 임도로 내려간다.
조금 난감한 상황이지만, 잣나무 숲 위로 내리는 신설은 고요하고 아름답다.
그렇지만 아직 내려갈 길이 멀다. 어린 명이는 발이 아프다고 하여 아빠 오직한길과 내가 번갈아 엎어가며 내려온다. 이 순간은 정말 서로의 체온이 필요한 순간이고 명이가 춥지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다소 힘들더라도 명이를 엎어준다. 한참을 가도 표지기가 매여져 있는 길이 나오지 않았는데, 뒤쳐져 오던 은빛날개가 뒤에서 표지기를 봤다고 한다. 대략 지형을 보니 바로 아래 계곡 내지는 바로 앞의 능선 위로 등산로가 있을 것 같아, 종식 선배를 선두로 잡목 숲을 지나 내려가기로 한다. 다행히 20여분 만에 등산로를 만난다.
이제 사람들의 얼굴도 펴지고 어느새 눈도 그쳐 있었다. 골짜기 옆 등산로를 따라 20여분 내려오니 어젯밤 묵었던 민박집이 나타났다. 주인분 내외가 마당과 길에 쌓인 눈을 쓸고 있는 것을 봐서는 여기 아래쪽도 눈이 그친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아침 일찍 눈이 조금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틀리긴 했지만,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의 날씨는 일기예보보다 현지 기상 사정이 더 중요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 산행이 되었다.
바위룡이라는 이름을 가진 석룡산의 신년 산행은 이렇게 아슬아슬했지만 모두에게 한 가지 추억과 깨달음을 안겨준 것 같다. 겨울 산행, 특히 높은 산의 겨울 산행은 아무리 날씨가 좋다고 해도 모든 장비를 다 갖춰야 함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산행이었다. 7년여 만에 다시 찾은 석룡산이었는데, 앞으로 7년 후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되면 정말 산은 그대로인데 나는 이렇게 변했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될 것 같다.
눈 내린 용수목을 지나 가평천을 따라 가평읍내로 나와 따끈한 국물로 몸을 녹이고 각자 힘찬 용의 해를 다짐하며 집으로 떠나고, 아내와 나도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산행지 : 석룡산 (경기 가평, 1150m)
날 짜 : 2012년 1월 1일
날 씨 : 맑은 후 소낙성 눈 3cm
산행시간 : 7시간 20분 (09:30 ~ 16:50)
산행코스 : 조무락골 민박 - 복호동폭포 - 쉬밀 고개 - 석룡산 정상 - 능선길(잣나무길 주의!) - 조무락골 민박
동 행 : 8명(종식, 종만, 오직한길+딸, 은빛+ 반려견, 먼발치에서, 혜윤, 나비, 맑은물)
교통 : 승용차 (대중교통은 가평 버스터미널에서 용수목행 버스 이용)
[포토 산행기]
[아직은 여유가 넘친다.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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