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봄을 앞두고 오른 북한산 비봉 (2012.2.19)

2012. 2. 29. 16:48북한산특집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얼었던 강물이 녹고 눈 대신 비가 온다고 하는데, 올해는 봄이 늦게 오려고 하는지 오늘이 우수지만 추위가 다시 왔다. 추운 날에는 집안에서 나가기 싫지만, 오늘은 녹색당 산행모임 사람들과 북한산에 가기로 한 날이라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 도착해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는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있다. 

 

팔봉산님, 홍일표, 하늘아이님이 어제 토요산행을 가려다가 하루 미뤄 나오셨고, 녹색당 당원인 공자유님과 정원님, 시민 산행모임 녹색 친구들 회장님과 회원도 나오고, 그 밖에 녹색당 당원까지 모두 1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처음 산행을 북한산에 가기로 했을 때는 좀 여유롭게 산에 가려했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나오니 반갑기도 하지만, 조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조금 있다가 어떤 분이 '그래도 녹색을 생각하는 당이니까 의미 있는 산행을 하자'라고 하셔서 오히려 긴장했던 마음이 풀린다.

 

'그럼 그렇지...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복궁역에서 버스를 타고 이북 5 도청 앞에 내려서, 공자유님이 가져오신 준비물과 즉석에서 구한 신문지를 활용하여 '국립공원 케이블카 반대(싫어요) - 녹색당'이라는 몸자보를 만들어 가방에 붙이고, 산행을 시작한다. 만들 때는 너무 급조한 느낌이 났으나, 막상 배낭에 달고 여럿이 산행을 하니 재활용 분위기가 나서 나름대로 괜찮아 보인다.

 

2월 산행은 겨울산행에 가깝지만, 1월만큼 바싹 얼어붙은 느낌이 나는 것은 아니다. 계곡에 남아있는 두꺼운 얼음덩어리의 체적이라도 줄어든 것 같고, 산속 나무들도 더 이상 잠만 자는 게 아니라 늘 기온을 감지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 기온이 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가 모르는 땅속 깊은 곳의 뿌리부터 물을 끌어올리는 일을 시작하겠지.

 

오늘 오신 분들중에 공자유님은 5년 전에 무릎을 크게 다친 후 몇 년 만에 산행에 나서는 것이라, 산행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운동선수들이 무릎을 다쳤다가 복귀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봉산님은 다음 달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질 녹색당의 정책강령에 관심이 많으셔서 많은 얘기를 했고, 하늘아이님은 별로 말씀이 없었다. 녹색 친구들의 회장님과 회원님은 현직 산행모임 출신답지 않게(?) 뭔가 힘들어 보였는데, 아마도 사람이 많은 산을 천천히 오르는 것과 코드가 살짝 어긋난 것 같았다. 지난달 운길산에 함께 갔었던 산초님과 초록주의님도 녹색당 창당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고 있다.

 

그렇다고 예비 '당원'들의 산행이라고 하여 대단히 정치적이거나 딱딱함은 없다. 이북 5 도청 옆을 출발하여, 비봉을 거쳐, 사모바위까지 오르는 동안 때로는 걸으며 얘기하다, 쉬면서 물을 나눠 먹고, 농담도 하고 엄살도 부린다. 때로는 같은 길을, 때로는 다른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다 보니 오늘의 목적지 사모바위 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산행 비수기(?)인데도 사모바위 앞 너른 터에는 등산객들이 참 많다. 우리도 너른 공터에 둥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나눠먹으며 얘기를 나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아내가 싸준 점심을 먹고, 산행코스가 짧아서 아쉬웠던 팔봉산님등 몇몇 분들은 긴 산행을 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가고, 나머지는 승가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였다. 승가사 옆을 지나 하산하며 도착한 곳은 결국 출발했던 이북 5 도청 옆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등산코스. 사모바위에서 하산하는 데는 1시간 남짓 걸렸다.

 

오늘 뒷풀이에는 녹색당 내에서 아직 널리 회자되지는 않은 '동물권'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하여, 5시가 넘어 서울녹색당 운영위원장인 오리님이 오셔서 동물권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한다. '동물복지, 동물해방'등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얘기를 들어보니 왠지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사람도 살기 힘든 판에 동물까지...'라는 의식은 문제 해결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식에 기초해 있는데,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이미 동물들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밤 10시가 다 되었다. 산행시간 3시간 30분에, 뒤풀이 시간 7시간. 상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지만, 뒤풀이의 대부분은 다음 달 창당 예정인 녹색당에 관한 '녹색정치토론'의 시간이었다.

 

이제 막 출발을 하고 있는 녹색정치에 관한 토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상의 장소에서, 더 많이 사람들이 참여하여, 생활 속 다양한 주제로 더 많이 얘기되어야 한다. 그게 꼭 규격을 맞춘 토론일 필요도 없고, 기록에 남는 토론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제 막 만남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행장소 : 북한산 

산행일시 : 2012년 2월 19일

날씨 : 맑음 (약간 쌀쌀)

산행시간 : 3시간 30분 (11 :30 ~ 15:00)

산행코스 : 이북 5 도청 -> 비봉 -> 사모바위 -> 승가사 갈림길 -> 이북 5 도청

일행 : 9명 (산초, 공자유, 초록주의, 나, 팔봉산님, 홍일표, 하늘아이, 녹친 2분) 

교통 : 서울 버스와 지하철


[포토 산행기]

[비봉능선에 올라 바라본 삼천사 계곡]
[사모바위에서 바라본 문수봉(좌), 보현봉(우)]
[신문지 활용 몸자보 만들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라니..]
[구기동 계곡으로 산행 시작]
[돌고기?]
[나무 겉모습은 겨울, 나무의 속마음은 봄]
[비봉 능선이 바로 위]
[왼쪽 삼천사 계곡에서 가운데 문수봉으로 케이블카를 만들겠다는 국립공원공단 --> 2012년 황당계획은 결국 폐지되었음]
[사모바위 앞에서 함께 점심을~]
[겨울인데도 녹색기운이 있는 녹색당원들]
[승가사 아래 계곡이 녹기 시작했다]
[식물과 세균이 서로 돕듯,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녹색당의 초록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