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4. 23:48ㆍ북한산특집
날씨가 싸늘해도 3월은 모두가 인정하는 봄이다. 3월이 되면 집에 머물기보다 밖에 나가고 싶고, 도시에 머물기보다 교외로 나가 자연을 통해 봄이 오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진다.
아직은 이름뿐인 봄에, 아직은 이름뿐인 정당, 녹색당 산행모임에서 지난 2월 북한산 산행에 이어 3월에는 도봉산을 가기로 했다.
녹색당 창당하면서 알게 된 산초님과 산행 약속을 하고, 게시판과 SNS에 산행 알림 글을 남겼지만, 지난달 산행했던 당원들에게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자율적인 참여를 강조하는 녹색당이라고 해도 4월 선거를 앞둔 시점에 산행 공지를 하고 산에 간다는 것은 조금은 부담스러운 일, 자체 검열을 한 것이다.
토요일 아침, 그래도 서너 분은 오시겠지?라는 기대를 하며 도봉산으로 향한다. 도봉산 버스종점 옆 만남의 광장에서 약속대로 산초님을 만났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은 것은 없다고 한다. 공지를 생략 하긴 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다니, 아쉽기는 하다.
산초님과 매표소 앞 산행안내지도를 보며 산행코스를 정한다. 오늘의 코스는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왼쪽 통일교를 건너, 보문능선을 따라 자운봉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결정하고, 존재감 없는 녹색당 당원 2명은 이른 봄 도봉산 산행을 시작한다.
초반 도봉사 입구까지는 산책길 같았으나, 이후에는 손을 써야 하는 바위구간도 나타나고 가파르기도 하고 산행다운 산행을 한다.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기온과 상관없이 마음은 이미 봄인 등산객들이 많아졌다. 그러고 새싹뿐만 아니라 등산객 숫자도 봄을 알려 주는 징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산바람이 휘이익 불고 가면 몸이 추워지고,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는 다시 땀이 나고, 몸은 산행을 기억하고 있어 힘들지 않지만, 기온 변화에 대한 적응은 더디다.
조금 움직였다고 티를 내는 우리 몸과 달리, 도봉산의 숲은 아직 봄에 침묵하고 있다. 3월 초 날씨가 풀리면 곧 봄이 될 것 같은 기분에 빠지지만, 풀과 나무들은 서두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고 언제나 적당한 시간에 맞추어 봄을 맞이한다.
우이암 갈림길을 지나 주능선 길에 오르니 자운봉이 보이고, 오봉도 보이고, 인수봉과 백운대를 비롯한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들도 눈에 들어온다. 산에 대한 정복욕은 없지만, 오봉을 볼 때마다 저 멋진 곳에 다가서고 싶은 욕망이 생기곤 한다.
산초님과 등산로를 걸으며 현재의 녹색당의 모습과 녹색당의 가치 등 많은 얘기를 나눈다. 지난가을 창당 발기인 대회 후 불과 4개월여 만에 창당에 성공하여 한국에도 녹색당이 생겼다. 창당 발기인대회 이전부터 각종 모임에 참석하고, 녹색당의 기초 틀과 당원 가입을 권유하고 다녔던 나 스스로도 총선 전 창당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이렇게 초록 정치를 확장해가다 보면 녹색당은 창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안된다고 하던 것이 결국 여러 사람의 뜻이 모아져 되었다.
경제성장, 경제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사람들 간에 우애와 협동, 핵발전의 위험 대신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는 정당,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정당이 창당되었지만, 산초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런 급속한 확대가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다. 좋은 의도록 시작한 진보정당이 작은 생각의 차이와 권력다툼으로 변질했듯이, 어렵게 창당한 녹색당의 성격과 지속성, 이미 우리 내부에 있을 정치적 야망들에 불안한 마음도 나눈다.
대화도 좋지만, 이제는 점심을 먹을 시간, 경치 좋은 바위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나눠 먹는다.
봄바람을 피해 점심을 먹고는 금세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가 흐린 날씨에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자운봉까지 가지는 않고 하산하기로 한다. 무리한 산행보다는 안전한 산행이 현명한 선택이다.
시간을 벌었으니 다시 아까 나누던 얘기를 이어서 산나물, 약초, 대체의학 등 음식과 자연의학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다.
한의사인 산초님도 오래전부터 대체의학 쪽도 관심이 많았으나, 녹색당이 이미 제도권 정당으로 창당한 이상 그런 주장을 정책적으로 펼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의존하는 에너지 의존 서양 의료시스템이 문제가 있어도 바꾸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고, 침-뜸의 논란에서 봤듯이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한다. 나는 비의료인의 입장에서 산업사회에 맞물려있는 무상의료, 무상복지 주장에 비판적인 얘기를 꺼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가 입장에서는 보다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것일 게다.
많은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봄이 흐르는 도봉산 계곡까지 내려왔고, 마지막으로 '핵(사고는) 안보(이는) (비) 정상회의' 손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했다. 비록 둘 뿐인 산행이지만, 오히려 깊고 다양한 얘기를 나눈 산행이었다.
간단히 막걸리를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지난 2008년 초에 더불어 한길 친구와 수락산 산행을 하며 신좌파와 진보신당 창당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정치적인 산행을 한 적이 있는데, 4년이 지난 오늘은 '녹색정치와 녹색당'에 대해 정치적인 산행을 한 것 같다. 몇 년 뒤에는 어떤 이와 이런 정치적인 산행을 하고 있을까?
산행지 : 도봉산 (서울, 경기 양주)
날 짜 : 2012년 3월
날 씨 : 흐림
산행코스 : 도봉산 만남의 광장 - 능원사 - 우이암 갈림길 - 도봉산 정상 - 마당바위 - 도봉계곡 - 광륜사 - 만남의 광장
산행시간 : 10시 30분 ~ 3시
일 행 : 맑은물, 산초
교 통 : 전철 도봉산역 이용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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