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0. 13:52ㆍ전국산행일기
'겨울이 가기 전에 겨울산에 한번 가야지' 다짐을 했는데 겨울이 끝났다.
'올 겨울 산행은 못 가는구나'라고 받아들이고 있는데, 최근에 몇 번 함께 산행을 했던 후배와 연락이 닿아 선자령으로 겨울산행을 떠나기로 한다.
금요일 밤, 4살 된 딸에게 '아빠 내일 산에 다녀올게~'라고 하자, '나도 갈 거야. 나도 큰 산 갈 수 있어'라며 귀엽게 고집을 부린다. 그러더니, '나도 여행에 가고 싶어. 아빠! 갔다가 내일 일찍 와~'라며 제법 사려 깊은 말을 이어간다.
토요일 아침, 서울 광나루에서 후배의 차를 타고 출발하여, 대관령 휴게소에 딱 12시에 도착한다. 산행 길이 시작되는 지점을 몰라 일단 신재생에너지 전시관 쪽에 차를 세운다. 5분 정도 걸어 대관령 휴게소 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가격과 맛이 괜찮다. 강원도의 식자재를 우선 쓰는 로컬푸드(지역 먹거리) 식당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식당을 나와 지도를 보며 양떼목장 입구로 200미터 정도 올라갔더니, 안내원이 이쪽은 등산로가 없다며 식당(휴게소) 옆쪽으로 등산로가 있다고 알려준다.
되돌아 내려와 휴게소 옆 길을 걸어 등산로를 찾았다. 오늘 계획은 서낭골 입구 - 계곡 -선자령 정상 - 능선길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코스다. 서낭골 입구는 겨울인데도 물이 얼지않고 흐르는 습지에 가깝다. 이어지는 조림 숲은 어젯밤 내린 눈으로 멋진 모습으로 변해 있다. 야트막한 서낭골을 지나 양 떼 목장 펜스 옆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넘으면 재궁골로 들어서게 되는데, 선자령 산행을 계획하면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겨울 계곡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여느 고산들과 달리, 깊은 골짜기가 아닌데도 제법 넓은 계곡이 있고 놀랍게도 물이 얼지 않고 흐르고 있다. 대관령에서 오대산 노인봉으로 이어지는 고산지대에는 곳곳에 습지가 숨어 있는 독특한 지형이라고 들었는데, 아마도 그런 습지 지형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재궁골에서는 자작나무, 낙엽송 숲과 함께, 50년은 넘어 보이는 거대한 활엽수들과 또 상당한 굵기의 물푸레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선자령 산행은 고산평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눈 덮인 계곡길과 그 사이를 흐리는 계곡물, 겨울 숲. 기대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니 더 즐거워진다.
재궁골 상류로 올라갈 수록 점점 커지는 쉬웅~쉬웅~ 비행기 소리, 훈련 중인 비행기인 줄 알았는데, 언덕 위 풍력발전기를 보고 나서야 그게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임을 알아차린다. 모든 풍력발전기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건 아닌데, 풍력발전기 1기의 블레이드가 공기역학적 문제가 있는지, 유난히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당장 성능에 문제없더라도, 안전을 위해서라도, 풍력발전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정비를 했으면 한다.
재궁골을 벗어나 하늘목장 갈림길에 도착한다. 하늘목장으로 돌아오면 여기까지 관광마차가 다니기도 한다니,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봄에는 가족여행을 와도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여행이 아닌 산행은 튼튼한 두 발로 최대한 걸어 다니는 게 좋다. 하늘목장 갈리길에서 선자령 정상 갈림길까지, 선자령 옛길을 따라 걷는 동안에는 대관령 일대의 풍력단지를 실컷 볼 수 있다. 등산로 바로 옆의 풍력발전기, 저 멀리 능선 위의 풍력발전기도 아름답다. 풍력발전기가 잘 돈다고 내게 당장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닌데, 잘 돌고 있는 풍력발전기를 보면 신이 난다. 반복적인 회전이지만, 리듬에 따라 춤을 추는 것 같다. 물론, 풍력발전기가 간접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화석연료 사용도 줄이지만, 딱 다가오지 않는 것도 사실.
선자령 옛고개길을 뒤로하고 10분 정도 봉우리를 오르면 선자령 정상에 도착한다. 꽤 넓은 선자령 정상에는 사람들도 많고, 바람도 많고, 눈도 많다. 강릉 일대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제법 봉우리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선자령은 선녀의 아이들이 놀던 아름다운 산(仙子山)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그럴듯하게 들린다. 원래 선자령 고개는 재궁골에서 강릉시 성산면으로 넘어가는 옛 고개였다고 한다.
하산 길은 남향인데다 날씨가 풀리고, 눈이 녹아 곳곳이 질퍽하다. 이 높은 산에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하산길 옆의 큰 풍력발전기를 뒤로하고, 갈림길에서 전망대 대신 숲길로 들어선다. 짧은 숲길이지만, 지금은 목장이 되고,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는 이 지역의 원래 자연의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있는 길이다.
숲길을 지나면 또 다시 성황당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리는 굿소리가 들리는 성황당 길 대신,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와 처음 출발했던 서낭골 입구에 도착하는 것으로 산행을 끝낸다.
봄이 오는 신호를 보았지만, 아직은 눈이 많은 겨울산행이었다. 봄이 오면 생활하기도 좋고, 꽃도 피고 좋은데도 겨울이라는 계절이 지나가면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산행지 : 선자령 (1157m, 강원도 평창)
날 짜 : 2016년 2월 27일
날 씨 : 맑음
산행코스 : 대관령휴게소 - 서낭골 - 재궁골 - 하늘목장 갈림길 - 선자령 정상 - 전망대 숲길 - 성황당 갈림길 - 대관령휴게소
산행시간 : 3시간 10분 (12:40~15:40)
일 행 : 맑은물과 후배 JM
교 통 : 승용차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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