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보호와 파괴의 전선, 포천 왕방산 (2016.8.27)

2016. 8. 31. 17:25산행일기

산속에 살거나, 매주 산에 갈 여유가 없는 한 모든 산행은 오랜만일 수밖에 없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으로 떠나겠다는 다짐만 하고 여름을 지내다가, 8월 말이 되어 경기도 포천의 왕방산을 찾았다. 한창 산행을 많이 할 때는 경기도 포천과 가평 일대 산을 헤집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실로 오랜만에 포천 산행이었다.

왕방산 산행을 검색해 보니 집에서부터 산행 시작점 대진대학교까지 1시간 40분쯤 걸린다. 여유 있게 집을 나서 중계동에서 3100번 좌석버스를 탔는데, 주말이라 길이 많이 막힌다. 서울에서 3100번, 3500번을 타면 대진대 안쪽, 등산로 입구까지 바로 갈 수 있는데, 예상보다 무려 5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J는 기다림의 지루함을 숨긴 무표정한 얼굴로 반겨준다. 
요즘은 산 입구를 사유지라고 막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진대 총장공관 옆으로 등산로가 있다. 등산객들에게 길을 내어준 대진대 총장, 누군지 모르지만 호감 상승이다. 초입은 작은 등산로들이 어지럽게 갈라져 있지만,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숲이 우거진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많이 덥지 않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1주일 전 체온보다 뜨거웠던 무더위에 산행을 했다면, 산행 초입부터 온몸이 땀으로 젖었을 텐데, 불과 하루이틀 만에 남하한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거짓말처럼 기온이 낮아졌다. 덕분에, 초가을 날씨에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능선을 직전 짧은 오르막 구간에서는 힘을 낼 필요가 있지만, 몸이 힘들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다.

주능선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올라온 대진대 앞쪽의 너른 뜰과 달리 서쪽은 산과 골짜기(왕방계곡 상류) 밖에 없다. 경기도 산과 언덕 곳곳이 난개발로 신음하고 있지만, 그나마 이렇게 자연이 넓게 버티고 있어서 공기정화 역할을 해준다. 주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많지 않고 대체로 평편하다. 요즘 인기 있는 큰 산의 둘레길, 트레킹 길만큼 걷기 좋은 길이다. 능선길이라 초가을 산들바람이 계속 스쳐 지나간다. 대진대 쪽 조망이 꽤 괜찮을 것 같은데, 참나무 숲이 우거져 보이지는 않는다.

무념무상으로 잠시 걷다가 주위가 트인 첫 번째 바위 전망대에 오른다. 날씨가 좋아서 경기도 최고봉 화악산에서 시작해서 한북정맥의 높은 봉우리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국망봉, 명지산, 연인산, 운악산, 주금산, 죽엽산을 지나 남쪽의 수락산, 불암산과 북한산 도봉산까지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는 통신설비와 연주대의 형상이 어렴풋한 관악산까지 보인다. 먼 조망뿐 아니라 산 아래로 펼쳐지는 포천시, 소흘읍의 넓은 뜰도 난개발이 차츰 진행되고 있긴 해도, 아직은 초록뜰이 더 많아 아름답다.
다시 등산로로 내려와 노란마타리, 닭의장풀 등 초가을 야생화를 만나고, 숲길을 걷다 보니 왕방산 정상에 도착한다. 왕방산 정상은 주변이 트였지만, 그래도 등산객들이 몰리는 경기도의 다른 유명산에 비하면 정상 훼손은 덜하다. 한북정맥 능선과 포천 뜰이 하늘과 구름, 산들바람, 풀냄새와 어우러진다.

 

정상에서 깊이울 계곡으로 내려가려고, 포천시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200~300여 미터 내려와 만난 정자에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맞다가, 옆 사람들의 대화에서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상으로 되돌아가 보니, 깊이울 계곡 표지판과 등산로가 서쪽 방향으로 보인다. 국사봉을 지나 소요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인데, 왕방산 주능선보다는 조금 경사진 길이다. 능선길을 따라가다가 북쪽 방향으로 표시된 깊이울 계곡 표지판을 만난다.

 

깊이울 계곡은 사람들의 휴양지라고 알고 왔지만, 능선에서 내려서는 중상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아 훼손되지 않은 원시계곡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큼직큼직하게 자란 고비, 숲이 우거져있고, 북쪽 사면이라 계곡을 채운 이끼류, 팔뚝만 하게 자라 이나무 저나 무에 늘어선 덩굴식물들만으로도 으스스한데, 계곡에서 뱀을 두 마리 만나니, 오싹함마저 느껴진다. 계곡을 건널 때나, 쓰러진 나무 위, 아래를 지날 때 뱀이 있을 것 같아 더 조마조마해진다. 그런데, 사실 이런 계곡에 뱀이 사는 건 당연한 것이고, 뱀이 따라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연과 원시와 떨어져 지내다 보니, 은연중에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두려움은 있지만, 제비울 계곡의 맑은 물에 자꾸만 손을 담그고, 세수를 하게 된다. 

 

원시의 깊이울 계곡은 하류로 내려올수록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계곡으로 서서히 바뀐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들끼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계곡은 여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물 놀이터를 제공해 준다. 주중까지만 해도 '언제 이 무더위가 지나가나?'라고 한탄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지나가는 여름이 아쉬워지니, 사람 마음이란 참 가볍고 간사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제비울 야영장에는 아직 아직 야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근처 개울에 여유 있게 발을 담그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제비울 계곡을 뒤로하고 심곡저수지를 지나 버스정류장까지는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버스정류장에는 포천 석탄화력 반대 포스터를 발견했다. 포천에는 이미 초대형 LNG 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또 다른 초대형 LNG 발전소가 건설 중인데, 이에 더해 또 석탄화력발전소까지 정부의 건설허가를 받아 건설 예정이라고 한다. 포천시에 과연 이렇게 많은 발전소가 필요할까? 당연히, 서울고 보낼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서울에서 가까운 곳 중에 그나마 땅값이 싼 곳에 이렇게 발전소를 왕창 몰아 짓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의 피해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존 LNG 발전소 설비를 일부 개선하면, 산업단지에 쓸 스팀(증기)을 공급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석탄화력을 짓는다니... 다행인 것은 포천시민들이 석탄화력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인데, 시민들의 뜻대로 석탄화력 건설이 무산되길 바라면서 포천시내를 거쳐 서울로 돌아온다.


산 행 지 : 왕방산 (경기도 포천, 737m)

날  짜 : 2016년 8월 27일

날  씨 : 맑음

산행코스 : 대진대 - 능선 - 왕방산정상 - 깊이울 갈림길 - 깊이울 계곡 - 심곡저수지

산행시간 : 4시간 15분 (12시 15분 ~ 4시 30분)

일 행 : 나 & 후배 J

교 통 : 대중교통 (좌석버스 이용)


 [포토 산행기]

[나쁜 화질 이해 바래요. 대진대 뒷쪽 능선길 도착]

 

[암릉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천시 외곽]
[공장과 들판, 개발과 자연의 경쟁이 벌어지는 포천]
[가을을 알리는 왕방산 마타리]
[서울 쪽, 저 멀리 수락산, 북한산]
[초가을 풍경]
[초가을 풍경#3]
[정상 표지석은 기념으로]
[왕방산의 초가을 풍경]
[왕방산의 초가을 풍경#2]
[포천시내와 저 뒤로 한북정맥의 높은 봉우리들]
[깊이울 계곡으로 향하는 중]
[원시적인 깊이울 계곡]
[깊이울 계곡 #2]
[깊이울 계곡#3]
[깊이울 계곡의 뱀, 중상류는 놀 곳이 아니다]
[깊이울 계곡]
[대형 LNG 발전소가 2기가 가동 중인 포천은 분지지형이라 건설중인 석탄화력이 완공되면 대기오염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