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물결이 넘실대는 포천 광덕산 (2019.5.28 )

2019. 5. 31. 00:26전국산행일기

꽃 피고, 새싹 보이던 날이 며칠 전 같은데 어느덧 세상은 온통 초록이다. 세상에 점점 무감각 해지는 감각 때문에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봄 산행을 마음먹고 있다가 초여름이 되어서야 휴가를 내고 산행을 떠난다. 마침 아내도 시간이 되어서, 함께 산에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낮 동안 빨리 다녀올 수 있는 경기도 산 중에 포천 광덕산을 목적지로 정한다.

포천 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논밭과 들판, 산도 이제 초여름 초록색으로 바뀌고 있다. 백운계곡을 지나 도착한 광덕고개 휴게소는 주말처럼 붐비지 않지만, 좋은 계절이라 한적하지도 않다. 산에 자주 다닐 때 이 광덕고개 휴게소를 기점으로 여러 번 산행을 했었는데, 이제는 낡아 보이는 휴게소 모습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우리는 휴게소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반달가슴곰이 지키는 강원도 경계 표지판 옆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도로 옆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니, 잣나무가 우거진 평평한 길이 시작된다. 등산로 왼쪽은 광덕고개지만, 등산로 오른쪽으로는 마을이 한동안 이어져 동네 뒷산을 걷는 기분이다. 이쪽 마을 길은 광덕산에 올랐다 하산할 때 많이 이용하는 길이다. 마을이 보이지 않게 되고도 잣나무 숲길은 한참 동안 완만하게 이어진다. 우연히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등산로에 잣나무 새싹들이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다. 등산로의 잣나무 새싹이 큰 나무로 자라기는 어렵겠지만, 새싹을 밟을까 봐 발걸음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5월 말 잣나무 숲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본 것은 행운이다. 잣나무 숲 분위기가 좋아 조망은 잊고 걷는데, 길이 가파르게 이어지는가 싶더니 광덕고개 방향으로 멋진 전망대가 나온다.

 

한북정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인데, 날씨도 좋아 최고의 조망을 보여준다. 한북정맥은 광덕고개를 지나 백운산을 넘고, 도마치봉으로 이어진다. 오래전 친구들과 다녔던 국망봉, 강씨봉 산행이 짧게 스쳐 간다. 동쪽 저 멀리로는 석룡산과 경기 최고봉 화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초록이 가득 찬 포천 이동면 백운계곡 일대의 모습도 포근하고 아름답다. 이 계절에 초록 계곡 조망에서 느껴지는 벅찬 감정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전망대에서 더 머므르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등산로로 돌아와 다시 정상을 향해 걷는다. 잣나무 숲을 완전히 벗어나 고도가 좀 높아지니 봄 꽃들이 아직 많이 피어있다. 시간은 거스를 수 없지만, 계절을 거스르는 일은 때론 가능하다. 평일이라 인적이 드문 산에는, 새소리,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정상을 앞두고 위험지역 안내판이 있어서, 암릉길이 이어지나 우려했지만, 힘든 구간 없이 1000미터가 넘는 광덕산 정상에 쉽게 도착한다. 정상은 약간 펑퍼짐 하고 한쪽으로는 잡목이 자라고 있지만, 남쪽으로는 관음산, 그 너머로도 산 봉우리들이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명성산, 각흘산이 보이는데, 그 너머로는 금학산, 고대산 등이 이어진다. 동북쪽은 잡목이 우거져 있는데, 그 사이로 석룡산 화악산이 보인다.

 

광덕산 정상에서 기상관측소 가는 길 옆에는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터'가 있다. 오래전 벌어진 전쟁이라는 큰 비극을 실제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는 20살 청년의 죽음은 예나 지금이나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2004년 참여정부 시절 국방부 유해 감식 발굴단이라는 부대가 창설되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고 한다. 많이 늦었더라도 나라가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 하는 것은 참 잘하고 있는 일이다.)

 광덕산 정상 부근에는 기상 레이더 관측소와 조경철천문대가 나란히 붙어 있다. 광덕산 기상 레이더 관측소는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일기예보를 볼 때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직접 보니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 든다. 자연을 관측하는 둥근 기상 관측 레이더는 주변 자연과 잘 어울린다. 

기상 레이더 관측소 옆의 조경철 천문대는 20세기 사람들에게 익숙한 천문학자 고 조경철 박사를 기념하여 2015년에 생겼다고 하는데, 오늘 산에 와서야 알게 되어 둘러볼 생각을 못하였다. 대신, 천문대 앞 공터에서 주변 조망에 다시 빠져든다. 아무래도 난 먼 우주보다는 가까운 지상 조망에 더 끌린다. 

 

기상 레이더 관측소에서 부터 광덕고개 휴게소(정류장)까지는 자동차 길이 이어진다. 험한 산악길이 아니라, 천문대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정도의 길이다. 우리는 자동차 길을 따라 약 500미터 정도 내려오다가, 자동차 길을 벗어나 지도에 점선으로 표시된 샛길로 내려가기로 한다. 샛길에 접어들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아 길을 잘못 들은 줄 알고, 이리저리 헤맸다. 그러다가 제대로 된 길이 없을 것 같아, 희미한 길 흔적을 찾아 일단 아래로 내려가기로 한다. 이런 산에서 점선으로 표시된 길을 선택한 것은 그리 좋은 결정은 아닌 듯하다. 잡목과 풀, 거미줄이 우거진 숲을 헤치며 내려갔더니, 계곡이 점점 넓어졌고, 마침 소형 중장비의 바퀴 자국이 아래로 이어지는 게 보였다. 정식 등산로는 아니지만, 원시계곡을 내려가기 훨씬 수월해졌다. 물길이 형성된 계곡이 아니지만, 습한 골짜기라 잡목들이 매우 우거졌고, 평지에서 보기 힘든 고비, 풀, 야생꽃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내려올 수록 계곡 물은 늘어났지만, 여전히 등산로는 보이지 않는다. 길이 있든 없든 지도 앱을 보며 계속 험한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잡목이 우거져 더 이상 갈 수 없을 지점에 얕은 능선을 하나 넘으니, 광덕고개 정류장에서 기상관측 레이더로 이어지는 자동차 길을 다시 만난다. 길은 콘크리트 포장길이지만,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앞쪽 저 멀리 겹겹이 푸른 산들이 보여 깊은 산간 오지 분위기가 난다. 펜션인지 귀촌인의 집인지 드문드문 집이 보인다. 광덕고개 국도길이 가까워오며 펜션이 많아졌지만, 5월 말 광덕고개 마을은 여전히 조용하다.

광덕고개 버스 정류장을 지나 광덕고개 휴게소로 돌아와 산행을 끝낸다.  오래전 아내와 광덕고개 휴게소에서 백운산을 다녀올 때와 마찬가지로 초록 풍경과 바람, 새소리, 그리고 함께 한 기억이 좋은 산행이었다.


#산행정보

산행지: 광덕산(1046m, 경기 포천, 강원 화천)

날 짜: 2019년 5월 28일

날 씨: 맑음

일 행: 2명 (맑은물, 아내)

코 스: 광덕고개 - 잣나무숲 - 전망대 - 광덕산 정상 - 기상레이더 & 조경철 천문대 - 샛길 갈림길 - 광덕고개 쉼터 - 광덕고개

시 간: 3시간 20분(12:30분 ~ 3시 50분)

교 통: 승용차 (광덕고개 휴게소 혹은 근처 공터 이용)


[사진으로 보는 산행일기]

[광덕고개 산행 시작 위치]
[광덕고개 산행 시작 3분]
[광덕고개, 한동안 이런 잣나무 숲이 이어진다]
[잣나무 숲의 어린 잣나무 싹]
[잣나무 숲이 끝나면 초록 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전망대 도착, 아래 광덕고개 휴게소가 있다. 왼쪽 멀리 석룡산, 화악산, 가운데 백운산, 오른쪽 멀리 연인산, 국망봉 등]
[5월 숲은 초록 초록 하다. 경기도에도 이런 곳이 있다. 광덕고개, 화악산, 석룡산, 국망봉 조망]
[이름 모를 5월 숲의 꽃]
[5월 광덕산의 대충 산진달래(정확하지 않음)]
[5월 광덕산의 병꽃]
[새싹이 나고, 새싹이 자라고]
[미래에 광덕산 숲을 밝혀줄 우리의 새싹, 까치수영?]
[5월 광덕산 숲속의 새싹]
[5월 광덕산의 둥굴레?]
[광덕산 정상에서 백운계곡으로 내려가는 능선, 박달봉 능선]
[광덕산 정상 인근에서 본 각흘산]
[해발 1046미터, 광덕산 정상 표지석]
[광덕산 정상에서 본 화악산]
[광덕산 정상에서 기상레이더 가는 길]
[광덕산 정상 인근,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지역]
[유해발굴 지역에 유난히 많은 애기 나리]
[조경철 천문대, 행정구역 상으로 강원도 화천군]
[조경철 천문대 앞에서 본 정면 각흘산, 왼쪽 멀리는 아마도 금학산-고대산, 오른쪽은 북쪽 방향으로 철원 방향]
[천문대 앞에서 북쪽 조망, 왼쪽 뾰족한 바위봉우리가 상해봉, 오른쪽 뒤로 한북정맥이 이어진다]
[천문대 앞에서 북동쪽 조망, 아래는 광덕고개 내려가는 길, 오른쪽 멀리는 석룡산-화악산]
[천문대에서 광덕고개 내려가는 샛길, 등산로에서 만난 고비]
[광덕산 원시계곡(광덕고개 쉼터 윗쪽 계곡)의 풀들]
[광덕산 원시계곡의 꽃]
[광덕산 원시 계곡의 꽃]
[광덕산 원시 계곡]
[광덕산 원시 계곡의 꽃]
[광덕산 벌깨덩굴?]
[광덕산 함박꽃]
[광덕고개 내려가는 길에 만난 계곡, 지촌천 상류]
[출발 장소, 광덕고개로 돌아 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