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5. 23:55ㆍ전국산행일기
올해 초, 전라북도 완주에 갔다가 고산면 만경강 뜰 뒤로 예사롭지 않은 산세를 가진 산을 발견했다. 알아봤더니 해발 556미터의 완주 안수산이었다. 주위에서 보면 마치 닭 벼슬 모양으로 솟아 있어, 계봉산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나중에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내 마음속 '산행 희망 리스트'에 추가해 놓았다.
그러다가 몇 달 뒤 완주에서 친구 모임이 있어서, 다른 산 보다 빨리 '산행 희망 리스트'에서 안수산을 지울 수 있게 되었다.
완주에서 친구들을 만나 안수산에 다녀오겠다고 알리고, 산행 출발점인 고산 자연휴양림으로 출발한다. 입장료 2000원은 할인카드로 아끼고, 휴양림 관리사무소 근처에 주차를 한다. 주말을 맞아 고산 자연휴양림에는 사람들이 많다. 관리사무소 뒤쪽에는 지인이 둘러보라고 추천한 '완주 산림바이오매스센터 홍보관'이 있는데, 토요일 늦은 시간이라 들어가지 않고, 바이오매스 홍보관 건물 뒤쪽 등산로를 찾아간다.
(*추가. 나중에 산림바이오매스센터 홍보관 둘러봤는데, 바이오매스에 관심 없어도, 산림자원 순환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추천)
오늘 등산 코스는 이곳 관리사무소 뒷길에서 출발하여 바위능선을 따라 달걀바위를 지나 안수산 정상에 올랐다가, 휴양림 산림문화관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인터넷 등산지도 보다 고산휴양림 등산 안내판에 자세한 안수산 등산코스가 표시되어 있다.
산림바이오매스 홍보관 뒤쪽에는 벚나무가 우거져 있어 봄에는 무척 아름다울 것 같다. 까맣게 익은 버찌를 따먹으며 가다 보니 좁은 산길이 나타난다. 처음부터 가파른 길로 시작하더니 곧 바윗길로 이어진다. 가파른 바윗길은 힘들지만, 조금만 오르면 확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다. 산행 시작 몇 분만에 고산 자연휴양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도를 보며 상상했던 것보다, 골짜기는 더 깊고 봉우리는 더 높다.
등산로는 계속 바윗길로 이어져 높이 오를수록 조망이 좋아진다. 휴양림 골짜기 맞은편 동북쪽으로 더 멀리 있는 산까지 보인다. 지난번 대아저수지를 지나며 보았던, 거친 바위 봉우리 운암산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휴양림 매표소에서 이어져온 주능선 갈림길까지 올랐더니, 만경강, 고산의 너른 뜰, 고산면 시내, 주변으로 겹겹이 겹쳐진 산들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안수산 전망 참 좋다.
갈림길에서 안수산 정상 쪽 달걀바위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은 꽤 장엄하게 보인다. 짧게 바위 내리막을 지나 다시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 길이지만, 길 양 옆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고도감이 느껴진다. 오래전 올랐던 험한 설악산 공룡능선에 비할 수는 없지만, 계룡산 연철성령 정도는 될 것 같다. 안수산 주능선길 이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산 이름을 따서 닭 벼슬 능선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능선길에서 따끈따끈한 야생동물 똥을 만난다. 가까운 곳에 있을 야생동물의 존재를 생각하니, 깊은 산에 들어온 느낌이 더해진다. 계곡 어딘가에서 검은등 뻐꾸기 두세 마리가 번갈아 가며 부르는 노래는 언제 들어도 아릿한 느낌이고, 초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참나무 잎사귀가 내는 소리도 좋다.
능선길 중간에 안수사 갈림길이 나오지만 안수사는 들르지 않고 직진했더니, 안수사 뒤쪽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이 바위(봉우리)가 바로 달걀바위일 텐데, '추락위험' 경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손잡이형 계단을 잡고 손에 힘을 꽉 주고 오르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 발을 움직이며 내 호흡을 교환하며 내가 오르고 있는 이 산, 나의 오감을 즐겁게 해 주고 뿌듯함을 안겨주는 이 산이 지금 나에게 소중한 명산이다.
사방이 확 트인 달걀바위 위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이 바로 명산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풍광이 좋고 멋있는 산이기도 하지만, 내 발을 움직이며 내 호흡을 교환하며 내가 오르고 있는 이 산, 나의 오감을 즐겁게 해 주고 뿌듯함을 안겨주는 이 산이 지금 나에게 소중한 명산이다. 마치 우리 삶 같다고나 할까? 꿈꾸는 미래의 삶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숨 쉬며, 부딪히며 사는 바로 이 순간, 나의 삶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가? 앞으로는 누군가 명산으로 분류해 놓은 산이 명산이 아니라, 내가 산을 찾았을 때 나의 호흡을 받아주고, 나의 생각을 깨우쳐 주는 산, 오감까지 즐겁게 해주는 산을 명산으로 여기기로 한다.
안수산의 깨우침을 겪은 후에,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니 안수산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명산의 그것이 된다.
달걀바위와 정상이 붙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안수산 정상은 여기에서 약 500미터, 10분 정도 바윗길을 더 가야 한다. 고산 방향에서 올려다보면 안수산 정상과 겹쳐있는 달걀바위가 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휴양림 관리사무소를 출발한 지 약 1시간 만에 드디어 안수산 정상에 도착한다. 만경강이 흘러가는 서쪽으로 평야지대가 이어지지만, 약간 흐린 날씨 때문에 이른 석양이 내려앉기 시작하여 먼 조망은 보이지 않는다. 동쪽 너머로 이름을 알지 못하는 높은 산들도 이제 저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산의 한가운데 있으면 내 존재는 작아지고 만다. 가장 해가 높은 계절의 이른 석양이 고산 뜰에도, 만경강에도, 주변 저수지에 가득 담겨 있다.
안수산 정상을 지나 남동쪽 능선을 따라가면 서래봉(해발 704m)까지 이어지고, 대아저수지 쪽 동성산까지 이어진다. 오늘 목표한 대로 휴양림 방향으로 서둘러 하산한다. 안수산 정상 아래 하산길은 제법 가파르다. 이쪽으로 올라왔으면 짧고 강한 산행 경험을 할뻔했다. 능선에서 들리던 검은 등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 혹시나 하고 검은등 뻐꾸기를 찾아보지만, 소리로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녀석들이 눈에 쉽게 띌 리 없다. 박새류(되솔새?)의 맑고 고운 노랫소리도 그치질 않는다. 정상에서 30분 만에 산림문화휴양관 옆으로 하산하여, 휴양림 관리사무소로 돌아가 산행을 끝낸다.
분명 해발 554미터의 산이었지만, 명산 안수산의 풍광과 영화 배경음악 같은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산행기록을 남기는 이 순간까지 아련하다. 안수산이 명산은 명산이다.
산행지: 안수산(556m) / 전라북도 완주
날 짜: 2019년 6월 8일
날 씨: 맑음
일 행: 1명 (맑은물)
산행코스: 고산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산림바이오매스 체험관) - 주능선 - 달걀바위 (달걀봉) - 안수산 정상 - 산림문화휴양관
산행시간: 1시간 50분 (4시 20분~6시 10분)
교 통: 완주 고산 자연휴양림 (자가용)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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