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처음 오른 북한산 청수계곡-칼바위능선(2020.3.15)

2020. 3. 22. 00:32북한산특집

2020년 봄. 전쟁 같은 코로나-19 사태로 '출근을 제외한' 일상이 흐트러지고 있다. 특히, 어린 딸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등학교 입학식도 못하고 있다. 아이는 지금 겪는 상황이 곧 세상이라 받아들이겠지만, 개학이 연기된 것과 학교의 첫출발 입학식이 연기된 것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 사태에 대해 학교 봉쇄만이 유일한 답이라면, '현대의 학교 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무거운 고민은 어른의 몫. 이 세상의 부조리와 불행한 고민은 청소년 이상에게 떠 넘기기로 하자. 나중에 어른이 되어 이 세상의 부조리에 맞설 때, 어릴 때 쌓아 놓은 즐거움은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2020년 3월 둘째 주 일요일. 교육 육아에 지친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나는 아이와 북한산성에 오르기로 한다. 요즘 자신감이 부쩍 늘어난 아이는 백운대를 가자고 했지만, 아직은 북한산성까지만 오르는 것이 현실적이다.
봄이 온듯 하지만, 쌀쌀해진 날씨에 맞추어 따뜻하게 산행 준비를 하여 북한산 청수 계곡으로 향한다. 청수 계곡은 아이와는 수시로 찾은 놀이터 겸 산책로다. 전염병 사태가 심각하지만, 북한산 공원 입구에는 햇볕 좋은 휴일을 맞이하여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건강하게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 전체의 면역도 높아질 것이다. 
 
산행 안내판을 보며 아이와 산행코스를 정한다. 현 위치 청수계곡 주차장에서 보국문으로 올랐다가 칼바위 능선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아직 따뜻한 봄은 아니지만, 청수 계곡에서 봄 느낌이 난다. 물소리도 가벼워진 느낌이고,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생강나무도 만난다. 즐겁게 오르다 보니 넓적 바위까지 금세 오른다. 계곡출입이 허용된 넓적 바위부터는 계곡에 내려가 물길을 따라 오르며 아이와 개구리 알, 도롱뇽 알 찾기를 한다. 아이는 어느새 몽글몽글 쌓인 개구리 알과 투명하고 길쭉한 도롱뇽 알을 잘 구분한다.
계곡을 떠나 등산로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발아래에서 제비꽃을 찾았다. 나도 같이 발아래를 보며 걸으니 제비꽃도 피고 양지꽃도 피어있었다. 위쪽만 보며 빨리 걸었으면 찾지 못했을 이른 봄 꽃을 아이 덕분에 보게 되었다.
 
청수계곡 상단의 약수터를 지나면서부터는 등산로 경사가 조금씩 가파르게 된다. 아이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총총총 힘든 기색도 없이 잘도 오른다. 조금 높은 곳까지 올라 추울 줄 알았는데, 남향의 오르막길이라 생강나무 꽃, 양지꽃을 쉽게 발견한다. 보국문이 가까워 올 무렵, "오늘은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안 할 거야. 아빠, 새담이 참 대견하지?"라며 아이가 다짐하듯 묻는다. 대견하다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 대견하고 싶었거나 칭찬받고 싶은 기분인가 보다. 
 
가파른 길을 올라 도착한 보국문은 계절이 바뀌는 문이다. 오르막길은 남향이라 따뜻했는데 보국문 통과하자 햇살마저 날려 버릴 듯한 찬 바람이 불어 닥친다. 아이는 바람에 날릴듯 하면서도 신나 하다가, 이내 춥다고 한다.
보국문과 대성문 사이에 있는 성덕봉 (631 전망대)에 갔다 올려다가 시간을 고려하여 바로 북한산성을 따라 칼바위 능선으로 향한다.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은 나무 사이로 북한산 주 봉우리인 노적봉, 백운대, 인수봉이 보이곤 한다. 거센 산바람을 피해 아이와 점심 먹을 공간을 찾다가 칼바위 능선 갈림길, 북한산성 바로 아래쪽에 자리를 잡는다. 바람은 피했지만 조금 싸늘한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따뜻한 실내로 놀러갔어야 했나?'. 하지만 아이는 기다렸던 점심시간이라 웃으며 즐겁게 밥을 먹는다.

점심도 먹었으니 이제 오늘의 하일라이트, 칼바위 능선을 지나는 일이 남았다(석가봉, 598m). 혼자 산행할 때는 칼바위 능선 난이도 정도는 큰 걱정이 되지 않았는데, 아이와 과연 칼바위 능선을 넘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칼바위 능선 정상까지 갔다가 못 갈 것 같으면 돌아와 안전한 청수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출발한다. 칼바위 아래쪽으로 안전한 우회로가 있지만, 봄철 낙석위험으로 막혀 있다.
칼바위 능선 정상에는 봄바람이 세게 불지만, 덕분에 공기가 깨끗해져 북한산 백운대에서 인수봉, 도봉산까지 이어지는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울 근교의 산봉우리들도 모두 잘 보인다. 예전에 칼바위 능선을 지난 기억은 있는데, 칼바위 정상에서의 보았던 풍광은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어떤 산행은 풍광이 기억이 남고, 어떤 산행은 사람이 기억에 남고, 어떤 산행은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는다.
 
아이는 이제 조금 지쳤는지, 풍광에는 무관심하고, 어서 내려가자고 한다. 오늘 산행 구간 중 가장 위험한 가파른 바위구간을 앞에 두고, 안전한 뒤로 돌아갈까 하다가 일단은 내려가 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북한산 계곡과 형제봉 일대를 함께 다니며 어느 정도 아이의 수준을 알고 있지만, 이 구간은 특별히 더 조심해야만 한다. 내가 먼저 내려가며, 아이에게 안전하게 발 디딜곳을 알려주거나, 발을 잡아주며 한발 한발 내려와, 마침내 위험구간을 벗어난다.
아이는 뒤를 돌아보더니, '우와, 내가 이렇게 높은 곳을 내려왔어?' 하며 매우 뿌듯해한다. 위험구간을 지나고도 계속 이어지는 덜 위험한 바위 구간은 이제 즐겁게 내려간다. 
 
오르락내리락 바윗길과 흙모래길을 반복하다 보니 청수계곡 갈림길에 도착한다. 계곡으로 내려가면 청수계곡 넓적바위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오늘은 내원사길로 내려가기로 하여 북한산 생태숲 방향 능선길로 계속간다. 오르락내리락 가다 보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봉우리가 나타난다. 올라가 보니 통신탑과 함께 문필봉이라는 간이 표지판이 있다. 북한산 청수계곡 칼바위 능선의 새로운 봉우리 이름을 알게 되었다.

문필봉 아래 사거리에서 내원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해가 뉘엿뉘엿 지니 아이는 계곡이 음침하고 무섭다고 한다. 아빠와 있으니 괜찮다고 안심시키며 내려가니 익숙한 내원사가 보인다. 내원사에서 청수계곡 주차장까지는 차가 다니는 길이라 어렵지 않게 내려와 어두워지기 전에 산행을 끝낸다.
 
아이는 처음으로 북한산성까지 오르고, 칼바위 능선의 험한 길을 내려온걸 자랑스러워 한다.
아이가 힘들고 높은 산을 올라갔다 온게 대견스럽고, 아이에 대한 뿌듯한 마음이 생긴다. 잘 크고 있구나 우리 아이!


산행지: 북한산 칼바위능선 (서울)
날 짜: 2020년 3월 15일
날 씨: 맑음
산행코스: 정릉 청수계곡 - 보국문 - 칼바위능선(석가봉) - 문필봉 - 내원사 - 정릉 청수계곡
산행시간: 5시간 30분 (오전 11시 30분 ~ 오후 5시 )
일  행: 맑은물, 새담
교  통: 도보 (서울시내에서 정릉북한산 입구까지 버스, 110, 162, 143, 1113, 1020등 운행)


[포토 산행기]

[봄이 오는 청수계곡]
[봄이 오는 청수계곡]
[이른 봄을 알려주는 생강나무 꽃]
[개구리 알, 어떤 개구리인지는.....]
[도룡뇽알]
[못보고 지나칠 뻔한 제비꽃]
[양지꽃]
[보국문지나 북한산성 능선에서 백운대 방향]
[서울 전경, 오른쪽으로 형제봉, 백악산, 가운데 남산, 남산 오른쪽으로 관악산과 그 뒤로 삼성산, 수리산까지, 남산 왼쪽 청계산]
[칼바위능선에서 본 북한산 백운대, 인수봉과 저 멀리 도봉산]
[칼바위능선에서 본 북한산]
[칼바위능선에서 본 북한산]
[칼바위 능선에서 남서쪽 서울]
[칼바위능선 석가봉에서 본 성덕봉과 보현봉]
[칼바위능선 또 다른 전망대에서 북한산]
[칼바위능선에서 남쪽 서울 조망]
[칼바위능선 어딘가에서]
[칼바위능선에서 북한산 백운대, 도봉산]
[칼바위능선 문필봉]
[문필봉 근처에서, 도봉산 전경]
[내원사 지나 청수계곡 근처에서 올려다본 보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