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 21:42ㆍ북한산특집
아내와 산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나 만큼 산을 좋아하지 않지만, 같이 가자고 하면 가끔은 따라나선다. 오늘은 아내에 맞게 산행 난이도를 정한다. 힘든 봉우리보다는 쉽고, 둘레길보다는 어려운, 정릉에서 화계사로 넘어가는 계곡 연결 산행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정릉탐방센터에서 청수교, 북한산 국립공원 사무소를 지나 내원사 오르는 길로 접어든다.
내원사 가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지만, 평소에도 산행객이 많지 않은데 오늘은 평일이라 더 조용하다. 지난봄에는 대학 친구와 오르고, 초여름에는 아이와 산버찌를 따먹기 위해 오르고, 가을에는 혼자 산책하다 멧돼지 흔적이 너무 많아 등골이 오싹했었다. 오늘도 콘크리트 길 옆 흙길에는 멧돼지가 다닌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멧돼지는 콘크리트 길로 다니기 힘들었는지 길 옆 흙길로 다닌 것 같다. 대낮이니 멧돼지가 갑자기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다행이다.
며칠 전까지 남아 있던 단풍이 11월 늦가을 바람에 모두 떨어져, 북한산은 짧은 시간 안에 겨울산이 되었다. 도토리도 낙엽도 모두 떠나보낸 참나무는 봄의 신록부터 뜨거웠던 여름, 태풍이 잦았던 가을까지, 일 년의 추억을 나이테에 새겨 놓았을 것 같다.
아내와 다정하게 오르다 보니 길 옆으로 큰 참나무들이 나오고, 그 뒤로 내원사의 높은 축대가 보인다. 내원사는 8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사찰이고, 정면으로 남산이 바라보이는 위치에 있어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높은 축대는 주변과 부조화를 이룬다.
내원사를 지나면 콘크리트 길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늦가을 나무 열매가 많아서 그런지 직박구리, 박새, 딱따구리, 딱따구리 소리가 활기차다. 얼마 오르지 않은 것 같지만 힘들어하는 아내 손을 잡고 끌고 오른다.
칼바위 능선(정상 아님)에 오르니 정면으로 도봉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수락산도 보인다. 능선길에서도 늦가을 조망이 좋다. 칼바위 능선을 뒤로하고 화계사, 냉골, 빨래골이 함께 표시된 범골 계곡(골짜기) 길로 내려간다.
골짜기 상단부는 양쪽으로 바위 덩어리들이 가로막고 있는 작은 협곡이다. 조용한 골짜기에 사람이 나타나니 새들이 휙휙 날아다니고, 소리치며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그런 가운데 이곳 딱따구리도 여전히 나무 쪼기에 열심이다. 문득 한 가지 가설이 떠오른다. 나무 쪼기에 특화된 딱따구리의 청력은 상당히 퇴화됐거나, 나무 쪼기 할 때는 청각보호 장치가 작동하는 듯하다. 그래서 다른 새들보다 사람의 접근에 덜 예민한 것 아닐까? 물론, 검증이 필요한 가설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약수터와 운동시설과 함께 '범골' 표지석이 있다. 범은 호랑이일 수도 있고, 삵일 수도 있지만, 이 좁은 골짜기에 예전에는 범이 많아서 얻은 이름인듯하다. 지금도 북한산 어느 곳에는 삵이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냉골 갈림길에서 가까운 냉골 대신, 우리는 화계사, 빨래골 방향으로 가는데, 소나무 위에 작은 암탉 만한 새가 앉아 있다. 꿩도 아니고, 닭도 아니고, 비둘기도 아니고, 처음 보는 새다. 나중에 찾아보니 메추라기라는 새였다. 삵은 살지 않지만, 범골에는 메추라기가 산다.
험하지 않은 바윗길을 따라 내려가니,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모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북한산은 곳곳에 멋진 전망대가 숨어 있다. 더 내려가면 빨래골로 이어지는데, 빨래골 위쪽 삼성암 뒤쪽에도 넓은 전망대가 있다. 그 뒤로 작은 만물상이라고 불릴 만한 봉우리가 있다. 내 멋대로 '소만물상'이라 이름 짓는다.
삼성암을 지나 다시 화계사 갈림길을 만난다. 화계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수행을 위해 산행을 지양하라는 안내판이 있어서, 둘레길로 조금 내려갔더니 500미터였던 길이 800미터로 늘어나 있다. 이곳에서는 빨래골로도 내려갈 수 있지만, 우리는 둘레길을 따라 화계사로 내려간다. 둘레길은 야트막 한 야산들인데, 주거지나 공원으로 개발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다행이다. 얕은 야산들 사이로 작은 실개천들이 형성되어 있어, 물은 화계사로 모인다. 그래서 화계사(崋溪寺)인가?
갈림길에서 800미터였던 화계사가 실제로는 그 이상인 듯 멀게 느껴질 즈음 화계사에 도착한다. 아이와 화계사 옆 계곡에서 놀던 추억을 되살리며 산행을 끝내고 아내와 집으로 돌아온다.
산행지: 북한산 청수 계곡 -화계사 (서울 성북구-강북구)
날 짜: 2019년 11월 29일
날 씨: 맑음
산행코스: 북한산 정릉 청수계곡 - 내원사 - 칼바위 능선 - 범골 - 삼성암 - 화계사
산행시간: 3시간 35분(10시 25분 ~2시 00분)
일 행: 맑은물, 가족
교 통: 도보 (참고: 우이-신설 경전철, 서울 시내버스 노선 다수)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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