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악의 폭염, 그래도 산에 간다 (2018.8.12)

2018. 8. 22. 23:22북한산특집

2018년 여름. 7월 초에 시작된 폭염이 8월 입추가 지나도 꺾일 줄 모르고 계속된다. 이번 폭염은 낮 기온도 높지만, 새벽 기온도 열대야 기준을 훌쩍 넘는 30도 언저리에 머물고, 가뭄까지 닥쳤다. 물 없는 가마솥에 계속 불을 지피는듯한 날씨다. 언론과 날씨 전문가들은 폭염 원인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티벳고원 고기압의 한반도 정체를 꼽고 있다. 여름은 어느 정도 더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열대야가 2주일 이상 지속되니 지치고, 지치다 보니 삶의 질도 떨어진다. 

 

재난 상황이라고 하여 지쳐서만 살 수 있는가? 인류에게 최악이 기후변화 재난이 와도,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에너지를 덜 쓰는 방식으로 놀며 즐거움을 찾는 것도 인간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동네 뒷산, 북한산에 여름 산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써 놓고 보니 산행 이유가 참 길다. 

 

하지만, 연일 폭염경보가 내려지는 날씨에 아무 때나 산에 오를 수는 없어서, 평소 산행보다 훨씬 이른 아침 6시 50분 집을 나선다. 워낙 더운 날씨가 오래 지속돼서, 이른 아침 기온 30도는 그래도 버틸만하다. 

북한산 정릉지구 탐방안내소를 지나 만나는 청수계곡은 가뭄과 더운 날씨에 바짝 말라 있다. 청수 폭포 아래 작은 물 웅덩이에는 물고기들의 아슬아슬하게 모여있다. 

 

청수2교를 지나 영추사 방향으로 가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더위에 고생할 거 같아서 대성 능선길을 선택한다. 청수 계곡에서 북한산성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다. 

아침이지만 청수 계곡에서 대성 능선 길로 오르막길을 조금 올랐더니 벌써 윗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다행히 우거진 나무들이 아침 햇살을 가려준다. 조용히 걷는 숲 사이로 가끔 높은 주변 봉우리들이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대성 능선에서 보는 형제봉은 큰형 같은 느낌이고, 북한산성 주능선과 칼바위 능선도 꽤 높은 산의 느낌을 준다. 확 트인 시야가 아니지만, 나무 사이로 보이는 주변 풍광 또한 여름 산행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자연재난이 닥친 여름에 호젓한 대성능선 길을 걸으니 명상이 절로 된다.

산은 억겹의 세월 동안 동식물을 품고, 바람길이 되고, 강의 근원이 되고, 흙과 모래를 만들어 주며 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묵묵히 해왔다. 많은 자연과 생명을 품고, 멋진 풍광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생존의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사람들이 산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 높은 산이 닳고 닳아 낮은 언덕이 되더라도, 산은 오랜 시간 제 역할을 했기에 경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단지 산이 높고 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폭염과 가뭄에 도시는 바짝 마르고 타들어 가지만, 산의 숲은 살아 있다. 매미는 이 더운 여름에도 사랑 노래를 불러댄다. 바람은 나뭇잎이 타들어 가는 것을 막고, 나뭇잎은 햇볕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그늘을 만들어 땅이 타들어 가는 것을 막는다. 땅이 타들어 가지 않으니, 나무는 쉽게 말라비틀어지지 않는다. 물론, 이 숲 시스템이 유지되는데 어떠한 의식적인 반응은 없다. 오랜 기간 주고받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숲과 땅의 공존 시스템일 뿐이다. 

'나에게, 우리에게 생존을 위한 삶과 공존을 위한 삶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대성 능선이 영추사 윗길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숲이 그늘을 만들어 주어 오히려 산행길이 도시길 보다 덜 덥다고 느껴진다. 대성능선 길은 형제봉 능선과 합류하여, 대성문으로 이어진다. 

여전히 공사 중인 대성문을 지나, 왼쪽으로 북한 산성길을 따라 대남문 방향으로 가다가 보현봉이 가까이 보이는 북한산성을 오늘의 산행 최고점으로 삼는다. 북한산성에 오르니 산 바람이 시원하여 몸의 체감온도도 뚝 떨어진다. 폭염을 잠시 벗어났을 뿐인데, 언제 폭염이었지? 할 정도로 폭염은 기억으로만 남고, 체감은 잊혀진다. 

사람의 감각은 중요하지만, 감각이란 참 가볍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산 바람은 좋은데, 일요일 아침인데도 광화문 쪽 도심 어딘가의 시끄러운 스피커 소음이 여기 북한산 산꼭대기까지 쉽게 올라오고 만다.

 

폭염 없는 세상에 더 머물고 싶지만, 어차피 다시 폭염 세상에 뛰어 들어야 하기에 가장 짧은 코스로 하산한다. 지나왔던 대성문을 지나, 빠른 걸음으로 영추사까지 내려간다. 가족에게 약속했던 10시 이전 하산도 지켜야 한다. 몸이 힘들지 않게 빠르게 내려오는 게 목적이다 보니, 하산길은 자연과 교감할 새가 없다. 내려올수록 더 덥구나, 여전한 폭염이었구나를 느끼며, 정릉 탐방안내소를 지난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 기온은 34도. 낮술보다 빠른 아침 술, 맥주 한잔을 한 번에 마시는 걸로 한여름 폭염 산행을 기념한다.


산행지: 북한산 - 북한산성 (해발 약 700m 잠룡봉 지점, 서울 성북)

날  짜: 2018년 8월 12일

날  씨: 맑음, 폭염경보

산행코스: 북한산 정릉 탐방안내소 - 청수폭포 - 대성 능선 - 대성문 - 북한산성 - 대성문 - 청수계곡 - 북한산 정릉탐방안내소

산행시간: 3시간 (오전 6시 50분 ~ 9시 50분)

일  행: 단독 산행

교  통: 도보 (북한산 정릉 탐방구간은 162번, 110A/B번, 1020번, 143번 시내버스 이용 가능)


[포토 산행기]

[숲은 폭염을 이겨내고 있다]
[북한산 대성능선 길, 숲 사이로 보이는 봉우리]
[북한산 대성능선 숲 사이로 보이는 봉우리]
[북한산 대성능선 길에서, 형제봉]
[북한산 대성능선 길에서, 형제봉?]
[북한산 대성 능선길에서 본, 북한산성 주능선길, 깊은 산속 같다]
[대성 능선길에서 만나는 오묘한 바위]
[폭염을 견디는 민달팽이]
[칼바위 능선]
[칼바위 능선, 다른 느낌]

 

[왼쪽 백악산, 가운데 인왕산, 그 뒤로 안산]
[보현봉 아래에서 남쪽 조망]
[보현봉 아래서 서울 조망]
[일선사 갈림길 전망대에서 본, 북한산성 능선과 앞쪽의 칼바위 능선]
[대성문과 일선사 아래 골짜기가 정릉천 발원지]
[폭염이지만 시원했던 대성문 가는 숲길]
[보현봉 옆, 북한산성에서 본 노적봉, 백운대, 저 멀리 도봉산]
[북한산 백운대와 진달래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
[보현봉]
[청수 계곡 전경, 햇살이 뜨거워지며 사진도 지친 느낌]
[북한산성과 보현봉]
[칼바위 능선]
[영취사의 아침]
[나뭇잎 그늘이 있어 다행인 하산 길]
[폭염과 가뭄이지만 물이 졸졸 흐르는 청수 계곡]
[청수 폭포  근처까지 하산]
[청수 계곡 입구, 산속 계곡은 물이 흐르지만, 도심 하천은 말라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