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0도 대한(大寒) 추위에 오른 북한산 (2018.1.25 )

2018. 1. 31. 01:12북한산특집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바쁜 날들이 이어져, 잠깐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중에 산에 가기로 결심했다.

때는 연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 마침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강추위가 며칠째 지속되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산에 갈지 말지 잠시 고민했지만, 아침만 지나 기온이 오르면 북한산 다녀오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집을 나선다.  

 

버스에서 내려 정릉 탐방안내소 주차장에 도착한다. 아직 온몸에 온기가 남아있을 때 옷과 등산화 끈을 한번 더 확인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들머리 청수계곡은 꽁꽁 얼어붙어, 물소리도 없고, 바람소리도, 새소리도, 사람 소리도 없이 고요하다. 청수교를 건너 보현봉 방향 청수천 계곡 옆길을 따라 걷는다. 청수천 약수터를 지나니 멀리 계곡 끝으로 큰 바위 봉우리가 보이니, 북한산이 웅장하게 느껴진다. 겨울이라 나무 가지들이 앙상하지만, 봄여름 가을에는 나무에 가려 보지 못하는 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

 

한파는 계곡물을 얼음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지만, 겨울 계곡에 감춰진 작품은 유별나게 산을 좋아하거나, 우연히 산을 찾은 사람만 운 좋게 볼 수 있다. 추위에 움츠러들면, 놓치는 것들이 많다. 자연적으로 진열된 얼음 작품을 감상하며 계곡을 따라 영취사까지 오른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며 영취사 풍경 소리는 연말 구세군 종소리만큼이나 따뜻하게 울려 퍼진다.

 

이 추운 겨울, 평일에 누가 산을 찾는다고, 영취사 마당 한편에는 뜨거운 차를 마실 수 있는 물통이 있다. 따뜻한 차를 한잔 마셨더니, 몸이 따뜻해지고, 마음까지 따뜻함으로 채워진다. 영취사 옆을 돌아 약간의 바윗길과 계단을 오르면 일선사 갈림길 데크에 도착하는데, 동쪽 조망이 확 트인다. 정릉계곡 맞은편 칼바위 능선, 그 뒤로 동쪽으로 수락산과 불암산, 서울 용마산, 또 그 뒤로 천마산, 약간 남쪽으로는 남양주 예봉산과 하남 검단산, 경기도 광주 용마산 능선까지 줄줄이 이어진다. 겨울산의 풍광에 기분이 좋아지고, 오래전 산을 자주 다니던 시절이 함께 떠오른다. 산은 그대로인데, 세월은 어찌하여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가? 이런 감성에 빠져 있는데, 오늘 처음으로 다른 등산객을 만나, 현실로 돌아와 대성문으로 향한다.

 

대성문은 공사 중이라, 우회 구조물을 조심스럽게 돌아 내려간다. 북한산성 길은 미끄러워 보여, 우회로를 따라 대남문으로 가는 길에 절뚝거리는 들개를 만난다. 나와는 30~4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인데도, 사람을 정확히 인식하면서 동시에 경계를 한다. 더 다가오거나, 더 멀리 도망가지도 않는다. 어차피 북한산 들개는 유기견인데,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대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짠한 느낌이다. 사람과 어떤 이유에서 헤어지고 북한산으로 들어온 개. 쩔뚝거리는 다리는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면서 다쳤거나, 추위에 동상일 꽤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미 야생화된 개에게 저 또한 기구한 운명이려니... 나는 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대남문에서 남서쪽으로 펼쳐진 멋진 조망을 담으려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보지만, 불과 수십 초 만에 배터리 전력이 뚝뚝 떨어져 사진을 포기한다. 여우가 신포도를 대하듯, 나는 '저 멋진 풍광은 플라스틱과 전력이 소모되는 사진이 아니라 마음에 담으면 돼'라며 마음을 변명한다. 대남문도 춥지만, 대남문에서 대성문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성길은 그야말로 살을 애는 듯한 칼바람이 무섭게 몰아친다. 능선 아래쪽은 기온이 낮아도, 바람이 불지 않아 체감온도는 괜찮았는데, 북한산성에 올라서니 찬 바람에 얼굴이 얼음이 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꽁꽁 동여 싼 덕분에 체온이 유지되어, 보현봉이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잠시 조망에 빠져본다. 북한산 아래 펼쳐진 거대 도시의 혼잡함과 무관 한듯한 유유자적 떠 있는 구름, 희미한 대기까지, 지금 이 순간 세상의 한 조각을 본다. 산행의 행복, 상쾌함, 설렘과 동시에 터질 듯 팽창해 가는 도시에 대한 좌절감이 함께 느껴진다.

 

전망대를 내려와 북한산성을 따라 대성문으로 가는데, 대성문 근처는 가파른 데다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어 몇 번 엉덩방아를 찢는다. 대성문을 지나 올라왔던 영취사로 하산하려다가, 북한산성을 따라 보국문까지 걷는다. 보국문에서 청수계곡으로 내려 가려다 또 다시 북한산성을 따라 걷는다. 칼바위능선 갈림길에서도 계속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칼바위 방향으로 향한다. 칼바위 능선은 이런 겨울철 매우 위험한 구간이지만, 다행히, 위험 구간에는 안전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칼바위 능선을 내려와 만나는 갈림길에서 청수 계곡에 방향으로 내려선다. 아직 눈이 쌓여있는 길에는 발자국 하나 없다. 더 큰 산이면, 날씨가 짓궂었으면 길을 잃을 위험도 있지만, 북한산은 그 정도로 위험한 구간은 없다. 여기저기 갈림길에서 희미한 길의 흔적을 따라 내려오니 넓적 바위가 보이고, 청수계곡을 만난다. 이제부터는 청수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겨울철 눈에 잘 띄는 동고비를 만나고, 멋진 얼음 폭포도 만난다. 해가 잘 들지 않는 계곡은 빠르게 추위로 채워지고 있어, 빠른 걸음으로 하산한다.

 

정릉 탐방안내소를 지나 다시 거대 도시 서울로 돌아온다. 도시 기온은 북한산보다 높지만, 마음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훨씬 더 차갑다. 서울 생활 몇 년째인데, 아직도 서울이란 도시는.....

 


산 행 지 : 북한산 보현봉. 대남문 (서울, 714m)

산행날짜 : 2018년 1월 26일

날  씨 : 맑음 (영하 20도 한파)

산행 시간 : 4시간 (11:00~15:00)

산행 코스 : 북한산 정릉계곡 - 영취사 - 대성문 - 대남문 - 대성문 - 보국문 - 칼바위 - 넓적 바위  - 청수 계곡 - 정릉계곡 주차장

일 행 : 1명 (맑은물)

교 통 : 서울 시내버스


[포토 산행기]

[정릉 청수 계곡 입구]
[정릉 청수 폭포, 인공구조물에 의한 폭포]
[청수 계곡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보현봉]
[꽁꽁 얼은  청수 계곡  상류]
[고요하게 얼어 붙은 영취사]
[영취사 뒤편 전망대, 눈보라가 몰아친다]
[영취사 뒤 가파른 계단]
[겨울이 만든 작품]
[보국문과 성덕봉]
[잊고 사는 인간 이외의 존재]
[일선사 갈림길에서 칼바위 능선(앞), 불암산(?) 조망]
[겨울 대남문]
[대남문에서 대동문으로 향하는 북한 산성길]
[대동문 근처 북한산성 길에서, 노원구 뒤편의 수락산-불암산, 더 멀리 남양주 예봉산-검단산]
[북한산성 안쪽은 300여년 전과 같지만, 바깥 쪽 서울은 많이 변했다]
[겨울 북한산, 백운봉, 노적봉, 인수봉, 오른쪽 끝으로 도봉산도 조금]
[북한산성에서 바라본 북한산 노적봉, 백운봉, 인수봉, 오른쪽 뒤편으로 도봉산]
[북한산에서 보기 힘든 눈보라 언덕]
[얼어붙은 청수 계곡, 능선 가운데 뾰족한 봉우리는 형제봉. 눈보라도 날린다]

 

[북한산성에서 바라본 청수 계곡 일대]
[칼바위 능선에서 본 북한산 백운대와 도봉산]
[청수 계곡 넙적 바위]
[청수 2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