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9. 11:08ㆍ북한산특집
일요일에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여, 잠깐의 자유시간을 얻는다. 자유시간도 누려본 사람이 잘 누리는지라, 무엇을 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몸에 익숙했던 취미는 산행이라, 집에서 가까운 북한산 형제봉을 향해 집을 나선다.
오늘은 마침 어버이날이고, 나는 형제봉으로 향한다. 뭔가 연관이 있을듯한 조합이지만, 아무런 연관은 없고, 신록의 계절에 산을 찾는 게 좋을 뿐이다. 동네에서 버스를 타면 국민대까지 평소 주말이면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 연휴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40분이 넘게 걸린다. 국민대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 익숙한 탐방안내소를 지나 북한산 둘레길 명상의 길 구간으로 들어선다. 화사하게 빛나던 벚꽃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북한산 숲은 초록이 우거져 있다.
가장 급진적이고 거대하며 끊임없는 변화는 보잘것 없는 새싹, 나뭇잎에 의한 변화인데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인위적인 이론, 해석으로 얼룩진 오래된 이론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찾는다. 4월 숲이 어떻게 5월 숲으로 변하는지, 단순한 색상의 변화가 아니라, 그 아래 보이지 않는 변화의 원리에서 사회 변혁의 영감을 얻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초록과 잘 어울리는 산새 소리를 들으며 명상의 길로 들어선다. 동네 뒷산에서 들어서 익숙한 것인지, 작년에도 듣고 올해도 들어서 익숙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꽤 익숙한 소리다 숲 속에 울려퍼지는 산새 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에도 즐거움이 가득 차는 것 같다. 영불사 아래 실개울은 겨우 졸졸 흐르는 정도지만, 엊그제 내린 비로 제법 산속 계곡의 모습이다. 아무도 모르게 '비 오면 나도 계곡'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영불사 입구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알록달록 연등이 매달려 있다. 초록숲을 배경으로 매달린 붉은 연등은 뭔가 다른 존재로 다가온다. 영겹의 시간 속에 이 세상 모든 존재를 만들어낸 초록을 바탕으로 한 인위적인 붉은색 연등의 조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래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는 계절이다.
영불사를 지나 만나는 약수터는 수질문제로 폐쇄된지 오래다. 2년 전에 16개월 된 딸아이를 데리고 왔다, 점심을 먹었던 명상의 숲길 기억이 새롭다. 그 새 초록 숲은 2번 더 바꼈고, 딸아이는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갈림길에서 명상의 길을 뒤로하고 형제봉 방향으로 향한다.
형제봉 오르는 길은 산철쭉, 병꽃을 비롯하여 이름 모를 봄꽃들이 많다. 초록 숲의 바람은 시원하고, 꽃 향기는 달콤하지만 오랜만에 산행이라 숨이 차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심장의 쿵쿵거림이 나쁘지 않아 더 빠른 걸음으로 심장을 더 빨리 뛰게 만들어 본다.
험하지 않은 산길이라 쉬지도 않고 형제봉-보현봉 갈림길까지 간다. 갈림길에서 남쪽 큰 형님봉(형제봉은 2개의 봉우리가 있다)까지는 금방인데, 뒤를 돌아보니 북한산 보현봉 능선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형제봉에서 바라보는 보현봉~북한산성 능선은 마치 한계령 어디쯤에서 바라본 설악산 서북능선 같은 느낌을 준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 같은 산행을 하던... 설악산에 가고 싶구나.
큰 형제봉에서 조금은 험한 바윗길을 내려섰다가 작은 형제봉에 올라선다. 작은 형제봉에서 조망도 막힘이 없다. 형제봉이 좋은 점은, 남쪽으로 백악산과 평창동, 성북구일대 조망이 좋고, 북쪽으로 북한산 능선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을 바라보면 다가오는 좋은 느낌, 하늘을 바라보면 좋은 느낌, 숲은 바라보면 좋은 느낌, 산바람을 맞으면 좋은 느낌이 번갈아 다가온다. 높은 봉우리에 있으면 오래 머물고 싶지만, 인생처럼 내려서야 한다.
작은 형제봉을 내려서면서 계속 내리막길이다. 북한산 특유의 화강암 길이라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높은 봉우리는 아니니, 30분쯤 내려와 북한산 둘레길을 만난다. 평창동이나 국민대 방향으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북악 하늘길로 넘어가기로 한다.
여래사를 지나 서울시 지정 우수 조망명소에 오른다. 높은 전망대는 아니지만 정릉 일대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서울 성북구, 동대문구, 중랑구는 물론이고 그 뒤로 동서울을 감싸는 용마산-아차산까지 시원하게 보인다. 올 때 막혔던 내부순환도로도 여기서 보니까 시원해 보인다. 우수 조망명소 가치가 있다.
그런데, 전망대를 내려와서는 길이 헷갈린다. 비교적 길이 뚜렷한 북악하늘길대신 성북 숲유치원과 숲 체험장 방향으로 가니, 중간중간에 산사 길 안내판을 만나고, 여러 샛길이 나타난다. 그러다 잠시 길을 잃고 만다. 깊은 산이 아니라 조금 헤매다가 숲 유치원 마당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고, 덤으로 정릉3동 관음사~대성사 뒤편에 숨어있는 숲유치원과 숲 체험장 길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 아이와 함께 오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대성사에서 산을 벗어날 수도 있었으나, 다시 북악하늘길 방향으로 향하여 잠시 숲길을 걸어 북악 스카이웨이와 나란한 산책길을 만나 성북동 빌라 단지를 가로질러 산행을 끝낸다. 성북동에는 비둘기도 살고 있지만, 주택가 높은 나무 위에 꾀꼬리가 살고 있어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성북동 꾀꼬리는 상처 없이 지내다 내년에 또 왔으면 좋겠다
산행지 : 북한산 형제봉 (서울)
날 짜 : 2016년 5월 8일
날 씨 : 맑음
코 스 : 정릉 매표소(국민대 옆) - 명상의 길 - 형제봉 갈림길 - 북한산성 갈림길 - 형제봉 - 여래사 - 전망대 - 관음사 - 숲유치원 마당 - 북악 하늘길 - 성북동
시 간 : 3시간
일 행 : 나 홀로
교 통 : 대중교통 (서울 시내버스)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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