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31. 12:30ㆍ산행일기
예년 같았으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되었을 7월 말. 올해는 아직도 적당한 비와 더위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대책으로 인해 여름휴가도 미확정인데, 마침 한길 친구와 가까운 곳으로 여름 산행을 가기로 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이 있는 산행이 제격이지만, 멀리 갈 수는 없다. 집에서 가까운 정릉 청수 계곡도 좋지만, 익숙한 집밥 같은 북한산 청수 계곡을 벗어나 경기도 하남 검단산에 가기로 한다.
토요일 계획 했던 산행이 일요일로 하루 미뤄지면서, 토요일 시간이 안 됐던 친구들, 친구 가족이 함께 참여하여 모두 6명이 산행을 하게 됐다. 작은 산행모임 치고는 중규모 산행이다.
집을 나서 모임 약속장소는 하남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옆 상점가에 도착한다. 지난 10년 동안 산행을 하지 않았던 하나사랑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눈다. 하남에 사는 오직한길이 가족과 함께 나타났고, 산행시간을 칼같이 지키던 호옹이 오늘은 환승문제가 생겨 10여분 늦게 도착한다.
약속시간보다 20분 늦은 11시 50분 산행을 시작한다. 한길 산행인들이 이제 약속시간을 지키기로 한 걸까?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옆 검단산 입구는 의외로 산행 관련 상점과 식당이 많았지만, 그린벨트 지역이라 상가지역을 벗어나자 바로 숲길로 이어진다. 요즘 서울 근교에서 찾기 힘든, 평탄한 숲길이 참 좋다. 서울-경기의 평탄한 곳, 구릉지는 거의 사유화가 되었고, 사유화가 된 곳은 환경규제 없이 난개발로 망가진다.
한길 사람들과 함께 걷는 길이지만, 연이어 딴 생각이 맴돈다. 현대 한국인이 가진 산과 야생동물에 관한 두 가지 오해. '숲은 산에 나무가 많은 곳이다'. '야생 포유동물은 산에 산다'. 상식적으로 평지에도 숲이 있을 수 있지만, 평지 땅은 대부분 인간이 활용하다 보니 평지의 숲은 사라졌고, 야생 포유동물들도 험한 산으로 생존 공간을 옮기며, 두 가지 오해가 이제는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더 많은 평지 숲, 더 많은 공터가 있으면 좋겠다. 공공의 터인 동시에 사람과 자연의 공동 공간 공터.
평지 숲길이 조금씩 경사가 급해질 무렵 어디선가 제법 큰 물소리가 들려온다. 원래 오늘 오르는 이 코스에는 계곡이 없지만 주중에 내린 많은 비로, 제법 시원한 계곡이 생긴 듯하다. 여름 산행에서 계곡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우리는 길 옆 계곡으로 접근하여 손을 씻고 세수를 하며 쉬어간다. 물이 생각보다 더 깨끗하고 차갑다. 우리 말고도 많은 시민들이 계곡가에서 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시대 저탄소 로컬 바캉스다. 전에 이 길을 지났다는 오직한길에 의하면, 평소엔 물이 거의 흐르지 않고, 중간중간 물이 고여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계곡은 제법 길게, 높은 곳까지 이어지다 물길이 사라진다. (*독바위골천 상류)
넓은 임도 같은 산길을 따라 오르니, 방금 전 사라졌던 계곡의 상류에서, 물이 콸콸 흐느는 약수터 쉼터가 나온다. 시원하게 씻고 갈 수 있는데, 서쪽 조망도 뻥 뚫려있다. 가까운 하남과 서울 동쪽 일대, 멀리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등이 조망된다.
쉼터를 지나야 비로소 좁은 등산길을 만난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부터는 제법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거리는 300~400미터에 불과하지만, 20분 넘게 꽤 가파른 길만 올라야 한다. 검단산의 작은 깔딱 고개 구간으로 부를 만하다. 호옹의 반려견 구름이도 잘 따라오다가 이곳에서 멈추고 만다. 질퍽하게 젖은 이유도 있고, 이젠 힘이 빠질 때도 되었다.
깔딱 고개를 오르면 용마산-검단산 주능선 길을 만난다. 이제 100미터만 가면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 도착하니 사방이 확 트여있다. 하늘의 먹구름이 주변 산들을 모두 눌러 앉힌 것 같다. 동쪽으로 팔당댐, 팔당호, 부용산, 청계산, 백운봉, 용문산이 이어지고, 남종면, 광주 퇴촌면 뒤로는 야산 같은 정암산과 해협산이 보인다. 용문산 보다 더 먼 동쪽 끝으로는 치악산으로 추정되는 높은 산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확인불가다. 북쪽으로는 예봉산, 예빈산, 적갑산과 그 뒤로 서울 불암산, 수락산이 위치하고, 더 멀리 북한산 도봉산이, 아주 먼 곳으로 양주 불곡산을 쌍봉으로 식별해 낸다. 불곡산 뒤로 높은 봉우리가 보이는데, 경기 북부 산이니 마차산 소요산 정도로 추정된다. 서쪽으로도 남한산성이 가깝게 보이고, 뒤로 관악산, 서울 남산과 한강, 그 뒤로 보이는 서쪽의 봉우리는 인천 계양산인 듯한데, 정상의 통신탑이 제대로 식별되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
친구들과 일부 산은 함께 찾아냈는데, 일부 산은 주관적인 추측이 아니냐고 말한다. 이제 친구들도 내가 산의 형태에서 산을 알아내는게 아니라, 방향과 주변 지형(산맥)에서 상대적 위치로 봉우리를 알아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 주변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어떤 정치-경제 환경에 있는지에 따라 대략 알 수도 있다. 나이 들 수록 더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친구들이 점심 먹을 곳을 찾아 먼저 정상을 떠난 뒤에도, 나는 주변 산을 보고 또 본다. 산에서의 조망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머무르고만 싶다. 가까운 곳의 팔당면, 양수리, 남한강, 북한강 주변까지 샅샅이 살펴보고 뒤늦게 친구들을 따라간다.
먼저 떠난 친구들이 점심 장소로 정한곳은, 참나무 숲 가운데 울퉁불퉁한 바위 식탁이다. 주변 조망은 막혔고, 어제까지 불던 시원한 바람이 없어 조금은 후텁지근 하지만, 한길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여 앉은 이 점심시간이 좋다. 예나 지금이나 대충 준비한 김밥, 과일, 오이, 등등... 별 다른 게 없지만, 이런 점심에 모두들 즐거워하는 이런 만남이 좋다.
점심을 먹고, 전망대 방향으로 10여분을 더 갔더니, 검단산과 바로 맞닿아 있는 팔당댐과 장마철이라 물이 가득 찬 팔당호가 보인다. 계속 북쪽 방향으로 갔더니, 앞이 확 트인 암릉 전망대가 나온다. 바로 아래로 팔당대교에서 광나루로 흘러가는 한강이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구리시와 서울시, 불암-수락-도봉-북한산은 계속해서 멋진 조망을 발산하고 있다. 집 근처에서 보는 북한산 바위 봉우리도 멋있지만, 멀리에서 보는 북한산 산세도 최고다. 20세기 초중반 무렵까지, 서울이 이렇게 고층 도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 경기 지역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산의 저 멋진 산세를 보고 산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졌을 것 같다.
전망대 이후로는 급격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바윗길과 흙길이 반복되며 이어진다. 참나무 숲이 햇볕을 가릴 정도로 우거졌다가 중간중간 전망이 트이기도 한다. 제법 낮은 곳까지 내려왔다는 느낌이 들 무렵, 철봉과 운동시설이 나타난다. 2002년 즈음, 한길 친구들과 검단산을 찾았을 때 이곳 철봉에 매달려 힘자랑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추억인 듯, 상상인 듯 떠 오른다. 일장하몽(一場夏夢), 어느덧 18년이 지난 시간 다시 찾은 검단산, 시간의 흐름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운동시설을 지나 5분만 더 내려오면 유길준(서유견문) 묘역이 나오는데, 운동시설과 달리 이곳을 지나간 기억은 없다.
유길준 묘역을 지나면 산길이 끝나고, 넓고 평탄한 숲길이 송파하남 어린이 천문대 옆쪽(애니메이션 고등학교 근처)까지 이어지며 산행은 끝이 난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어울리는 막국수 한그릇으로 산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산행지: 검단산 (m) / 경기 하남, 광주
날 짜: 2020년 7월 26일
날 씨: 흐림
일 행: 5명 (호~옹, 맑은물, 오직한길, 명, 비, 하나사랑)
산행코스: 하남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 쉼터(약수터) --> 주능선 --> 정상 --> 유길준 묘역 --> 어린이 천문대
산행시간: 4시간 30분 (11시 50분~16시 20분)
교 통: 대중교통 (2020년 8월, 5호선 풍산역 개통, 이후 하남검단산역 개통)
[검단산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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