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6. 11:08ㆍ산행일기
한 달 전 철마산에서 힘이 느껴지면서도 섬세한 산줄기를 한참 바라보았다. 철마산-천마산을 연결하는 천마지맥인데 그 모습이 아름다워 한번 걷고 싶었다. 마침 한 달 만에 산행 기회가 생겼고, 주저 없이 천마지맥으로 향했다.
천마산 정상만 오르려면 남양주 평내 혹은 마석에서 오르는 게 좋지만, 천마지맥을 걷기 위해 오남역에 내려 오남초등학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창밖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소도시의 가을풍경이 버스 속도로 지나간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 예정된 오남읍의 정감 있는 풍경도 곧 사라질 텐데, 빽빽한 고밀도 건물숲이 아닌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이 보존되는 저밀도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버스에서 내려 근처 편의점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오남저수지 옆 산행들머리로 향한다. 한 달 전 하산길의 반대방향이다. 같은 등산로를 한 달 간격으로 다시 찾으니 친숙한 기분이다. 오남저수지옆 계단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며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준다. 산행시작 전에 충분히 몸을 푸는 것이 가장 좋지만, 산행 시작 후 10~20분 동안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며 산행강도를 서서히 올려주는 것은 부상 예방에 좋다.
몸을 풀며 걷는데, 주변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고라니 한 마리가 겅중겅중 뛰어간다. 반짝이는 회색털의 매끄러운 고라니의 질주가 감동이다. 감동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등산로옆 갈잎이 바스락 거리더니 다람쥐가 톡 튀어나와 조르륵 근처 나무로 달려간다. 길 옆에 도토리를 찾거나 숨기려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 것 같다. 산행 중에 크고 작은 동물도 만나고, 날씨도 좋고, 오늘은 산행 시작이 참 좋다.
출발한 지 약 30여 분 만에 복두산 정상(해발 410m)에 도착한다.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지나치기 쉬운 복두산은, 200년 넘은 소나무 아래에 평상이 있는데, 오남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훌륭한 휴식장소다.
이후 천마지맥까지는 늦은 단풍, 간간이 보이는 철마산 능선, 바위와 어우러져 멋지게 자라는 소나무를 보며 느긋하게 걸을 수 있다. 산행 시작한 지 1시간 정도 걸려 천마지맥을 만나는 578봉 아래에 도착하여, 정상 옆길을 따라 천마지맥에 합류한다.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북쪽 등산로에 비해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남쪽 등산로는 등산객들의 왕래가 적었는지, 낙엽이 더 많이 쌓여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소리만 빼면, 바람소리, 까마귀 소리, 가끔 산새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산행이 이어진다.
수많은 낙엽이 올해도 나무에게 양분과 탄소를 공급해 주고 늦가을이 되자 바닥으로 내려왔다. 옛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귀향하는 선비처럼, 봄여름 내 자신의 역할을 다한 낙엽은 귀토를 한다. 말 그래도 땅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참 잘했어,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될 거야"
조용한 등산로에서 낙엽과 나무, 나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인사말을 남긴다.
천마지맥에 537봉으로 표시된 바위 전망대에 올라보니 북쪽으로 철마산과 내마산 조망이 참 좋다. 등산로에서 몇 발 벗어난 지점인데, 여름에는 나뭇잎에 가려 이런 전망대조차 찾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이 계절에는 나무와 낙엽이 산의 몸통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나무 사이로는 대규모 전원주택지가 있는 수동면 수산리 마을과 팔현리 골짜기가 보인다.
이후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는데, 낙엽에 쌓여 등산로가 보이지 않고, 경사진 등산로는 미끄럽기까지 하다. 늦가을이라 주변 조망을 얻었지만, 미끄러운 길이라는 부담을 함께 받았다. 눈이 내리고 땅이 어는 겨울철에는 꽤 난도가 높은 코스가 될 것 같다. 조금씩 고도를 낮추며 걷다 보니 돌무더기가 있는 괴라리(과라리) 고개가 나온다.
괴라리 고개에서부터는 오르는 구간이 더 많다. 해발 500~600미터 능선을 걷는 고도감은 좋은데, 오남읍 팔현리와 수동면을 잇는 도로공사 현장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조용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천마지맥을 걸을 시간도 얼마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짧은 이동시간을 얻는 대신 소음을 얻는다. 물건을 사면 쓰레기를 같이 사는 것과 마찬 가지다. 편리함은 떠들썩하게 부각 대고, 소음과 쓰레기는 조용히 남겨진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수동면 지둔리 갈림길을 지나고, 점점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옮긴다. 인적은 없고, 산바람에 얼굴은 차갑고, 보행출력은 떨어지고, 까마귀 울음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만 들리니 이곳 지명인 과라리고개가 좀 괴한(?) 기분이 든다. 과라리봉(꽈라리봉)에서 천마지맥 두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되니 참 반가운 마음이 들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낙엽이 깔린 오르막이 계속되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천마산 정상을 보며 힘을 낸다. 제법 크고 멋지게 생긴 바위를 돌아 나오니 돌핀샘바위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어지는 보구니바위 안내판을 지나면 천마산 정상과 멸도봉 갈림길에 이른다.
정상이 바로 앞이지만, 오른쪽으로 탁 트인 바위가 보여 오르니 눈앞에 천마지맥과 팔현리 골짜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늦은 오후 하늘과 구름은 덤이다. 남쪽으로는 천마산 정상과 멸도봉 사이로 보이는 백봉산과 남서쪽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예봉산 적갑산 봉우리인 듯하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멸도봉에 올라 다시 조망에 빠졌다가는, 천마산 정상 옆 바위에 오른다. 이 바위봉에서 북쪽으로 내려 선 후 천마산 정상을 올라야 안전한데, 정상만 보며 서쪽으로 바로 내려가면 마지막에 1.5m 높이의 바위 단차가 나타난다. 뛰어내리기에는 높고, 왔던 길을 돌아가기에는 힘들어, 한참 어떻게 내려설까 고민하다 나무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설 수 있었다. 이곳에는 안전한 길 표지판이라도 설치했으면 좋겠다.
석양을 등지고 있는 소나무 바위길을 50미터 오르니 천마산 정상이다. 늦은 오후지만, 천마산 너른 정상 바위에는 등산객 10여 명이 쉬고 있다. 나도 정상에서 높은 바위에 올라 주변 조망을 바라본다. 늦은 오후하 파란 하늘이 점점 금빛으로 변하고 있다.
오남저수지에서 시작하여 천마지맥으로 걸어온 길을 눈으로 따라가 본다. 북쪽으로 가평군 북면 일대 연인산과 주변 봉우리가 보이고, 남쪽의 백봉산과 예봉산 적갑산, 희미한 양평 용문산, 여주 양자봉도 눈에 들어온다. 천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산 봉우리들도 하나 둘 가을을 떠나보내고 있는 것 같다. 쓸쓸한 기분이다.
이렇게 사방이 확 트인 정상에 오르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정상에서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다. 금빛 서쪽 하늘은 이제 그만 정상에서 내려가라고 신호를 준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천마산역 방향으로 하산하는데, 길이 위험하니, 천마의 집 방향으로 하산을 권하는 안내판이 있다. 100개가 넘는 나무계단을 따라 계속 내려가니 사고 발생지점이라는 임시안내문도 붙어 있다.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은 구간이었지만, 방심하면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하는 것 같다.
길이 조금 헷갈리던 참에, 동네분인듯한 분께 길을 물어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혼자 깔딱 고개 방향으로 내려갔더니, 청소년 수련원 근처의 출렁다리 길로 이어진다. 등산로 옆의 지도를 보니, 아까 동네 분이 내려간 길이 천마산역으로 가는 길이 맞았다. 웹상에 올려진 등산로가 늘 맞는 것은 아니다.
18년 만에 다시 출렁다리를 건너, 식당과 카페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주위가 많이 어두워졌다. 늦가을이라 일몰시간이 많이 짧아졌다. 10~20분만 더 늦었으면 야간 산행을 할뻔했다. 15분을 걸어 천마산역에 도착하여 경춘선 전철과 경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산행지: 천마산(810.2m) / 경기 남양주
날 짜: 2022년 11월 6일
날 씨: 맑음
일 행: 1명 (맑은물)
산행코스: 오남저수지- 복두산- 천마지맥- 괴라리고개- 천마산 정상- 천마산역
산행시간: 6시간 20분 (11시 30분~5시 50분)
교 통: 오남역(수도권 전철 4호선), 천마산역(경춘선)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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