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8. 21:52ㆍ북한산둘레길
#16구간 보루길: 회룡탐방지원센터 ~ 보루 ~ 원도봉입구
어제 15구간을 끝냈던 회룡역에서 내려 회룡탐방지원센터로 간다. 오늘은 우이령입구까지 둘레길 16~20구간까지 끝내려 한다. 회룡골 입구 나무 공예집(?) 앞에서 전망대까지 약 15분 급경사 계단 길이 이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회룡골 회룡사와 석굴암이 보이고, 그 뒤로 사패능선이 보인다. 동쪽으로 트인 전망대에 서면 의정부시내와 수락산이 보인다. 조망은 다르지만 14구간 산너미길 구간의 전망대와 느낌이 비슷하다. 조금 더 올라 해발 230미터 지점에 사패산 제3보루가 있다.
고구려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와 대치하며 아차산에만 보루를 설치한 줄 알았는데, 교통의 요지였던 도봉산 중턱에 보루가 있었다고 있다. 근래에 복원하여 형태가 갖춰진 아차산 보루와 달리 사패산 제3 보루는 세월에 흘러내려 흔적만 희미하게 남았다.
원심사, 안말공원 구간은 포대능선의 아래쪽으로, 야트막한 언덕 사이사이로 여러 실개울이 흐른다. 강북의 화계사 옆 지형과 비슷한데, 같은 화강암 지역에 같은 기후라 오랫동안 비슷한 침식이 벌어진 것 같다.
고속도로 아래쪽을 지나 계속 고속도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걷는데도, 자동차 소음이 상당히 거슬린다. 도로를 만들지 않을 수 없지만, 이렇게 큰 소음은 큰 문제다. 도로에서 퍼져 나오는 소음은 편리를 위해 당연히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라는 인식부터 생겨야 한다.
#17구간 다락원길: 원도봉입구 ~ 호원동 ~ 다락원
얕은 능선을 넘어 원도봉 계곡에 내려서며 16구간이 끝난다. 여기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망월사를 비릇하여 많은 사찰이 있다. 나는 원각사 앞마당에 들어갔다 길이 없어 돌아 나온다. 원각사 주변엔 카페와 음식점이 있는데, 난개발의 둑이 터지지 않고 자연과 사람이 만났으면 좋겠다. 조금 더 내려오니 고속도로 고가도로가 어지럽게 이어져 있고, 둘레길은 원도봉계곡 호원천을 따라 주택가로 이어진다. 수량에 비해 넓은 호원천은 준설(?) 공사 중이다.
호원동 일대 주택은 깨끗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용적률이 아쉽다. 17구간의 절반은 도시를 통과하는데 숲길로 경로를 바꿨으면 좋겠다. 호원삼거리를 지나 미군기지가 있던 나대지는 토양정화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미군 교육기관이 있던 곳으로 근린공원이 계획되었으나, 토건공화 한국에서는 공원대신 2023년 개발계획이 수립되고, 그린벨트가 해제되어 앞으로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 곳이다.
흐트러진 공사장 벽을 지나 숲을 지나니 숨겨놓은 정원 같은 작은 계곡이 나타난다. 계곡을 나와 YMCA 다락원캠핑장(정확한 이름은 바뀜)에 도착한다. 여기 캠프에 아이를 데려다줬던 기억이 난다. 캠핑장을 끼고돌아 다락천을 건너는데 동쪽 멀리 수락산이 보인다. 그린벨트 지역이라 고층건물이 없지만 주변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쌓여있고 어지럽다. 시민들에게 녹지로써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게 막아놓고 개발예비군으로 대우받는 그린벨트가 안타깝다.
언덕을 조금 올라 17구간 포토 포인트, 둘레길 이용약자 동행구간을 지나면 17구간이 끝나고 18구간이 시작된다.
#18구간 도봉옛길: 다락원 ~ 도봉산 주 등산로 입구 ~ 무수골
도봉옛길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도봉산 정상부와 포대능선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정상과 높은 능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넓고 길게 원도봉 골짜기들이 이어진다. 높음이 있으면 낮음이 있다. 길고 깊은 심호흡을 하며 자연의 긍정적 기운을 들인다. 전망대를 떠나 다시 걷는다.
생명으로서 기본 욕구와 사회를 이루어 살고자 하는 인류 문명 발달의 역사 속에서 돈과 권력으로 남보다 위에 있고 싶은 욕망도 함께 생겨났다. 군림하고자 하는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면 수억 년 전 혼돈과 야만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한국의 12.3 계엄사태가 이를 보여주는 사례이고, 돈이 넘쳐나는 세상도 혼란이 커지고 있다.
산에 오르고 내려오는 것은 보통 수직방향 길이다. 둘레길은 산을 감싸며 걷는 수평방향 길이다. 대체로 둘레길 위쪽은 자연이 살아 있고, 둘레길 아래쪽은 난개발이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다. 둘레길이 경계가 되지 말고, 국립공원 경계 외곽으로 완충지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진다.
다락원 능선 갈림길을 지나 내려오니 도봉산악 구조대가 나온다. 어딘가 했더니 도봉산 주탐방로였다. 길은 연결되어 있으니 이어지는 게 당연한데 이렇게 쉽게 다락원에서 도봉산입구로 넘어오니 신선한 느낌이다. 북한산 생태탐방원에 들러 산악 관련 전시를 보고 나와 광륜사, 능원사 앞을 지나 무수골 방향으로 넘어간다. 잎이 모두 떨어진 참나무 숲을 지나니 마을길이 나타난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농촌마을(?) 무수골이다. '서울 = 도시' 등식이 성립된 시대에 무수골은 다양함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10여 년 전 비 내리는 여름밤에 무수골에 양서류 서식지 조사를 하러 왔었다. 북한산 자락 계곡에는 개구리가 있지만,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개구리를 찾으려 했었다. 탐사 결과는? 무수골 논에서 개구리들이 신나게 울어대고, 첨벙첨벙 뛰는 소리가 들렸다. 개구리 서식은 확인했지만 눈에 띄지는 않았다.
#19구간 방학동길: 무수골 ~ 정의공주묘
무수천을 건너 19구간 방학동길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세 뼘 넓이의 작은 물길 옆으로 길이 이어진다. 물길과 둘레길 옆으로는 투박한 나무로 적정하게 지지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언덕 같은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쌍둥이전망대가 보인다. 있는 줄도 몰랐는데, 전망대에 올랐더니 도봉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초록이거나, 붉게 타오르거나, 하얀 설경은 아니지만 비스듬히 들어오는 저녁햇살을 맞는 도봉산 산세에서 포근함이 느껴진다.
동지 4일 전이라 해가 짧다. 어두워지기 전에 20구간까지 끝내기 위해 속도를 낸다. 다행히 크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다. 주변에 사는 시민들에게는 이 길은 둘레길보다는 이웃 산책길이 될 것 같다. 도봉옛길, 방학동길, 이런 이름도 좋다.
수많은 골짜기들이 작은 실개울이 흐른다. 어떤 실개울은 더 큰 계곡이 되어 이름을 남기지만, 골짜기에서 시내로 졸졸 흘러내린 실개울은 대부분 도심 지하에 묻히고 만다. 그 위에도 건물, 그 주변 너른 공간도 건물, 도로가 생긴다. 실개울을 묻어 버린 것이 서울 난개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해가 북한산 뒤로 완전히 내려갈 무렵 19 구간을 끝낸다.
#20구간 왕실묘역길: 정의공주묘 ~ 은행나무 ~ 우이동 우이령길 입구
20구간 시작하며 바로 조선 세종 딸 정의공주묘 앞을 지난다. 문종의 친동생, 단종의 고모, 세조의 누나였다고 한다.
길을 건너면 폭군 연산군묘 입구다. 조선 왕은 유교 제도에 맞게 통치하는 게 임무였으나, 폭정을 일삼자 신하들에 의해 쫓겨났다. 봉건시대와 민주 시대가 달라 그대로 비교할 순 없지만, 왕이 국민들에게 쫓겨난 것이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12.3 내란 사태가 다시 떠 오른다. 시민 개인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긴 사건이라 자꾸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고인 물이 썩기 쉽듯, 충격과 공포가 마음에 고이게 되면 고통을 준다. 명상할 때는 쏟아 버려도 고이기를 반복할 텐데, 걸고 있으니 계곡물처럼 생각이 고여있지 않고 흘러 내려간다. 생각이 흘러가고 시간이 지나면 잊힐까? 물이 흘러 땅을 파고 돌을 뚫고 흔적을 남기듯, 그들의 악행은 우리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 역사에 깊고 선명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마음은 치유되어도, 권력에 중독되어 망상에 빠진 그들의 심판은 역사의 흐름에서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연산군묘 앞 560살 은행나무를 지나, 둘레길 20구간 언덕을 넘는다. 찻길에선 안 보이던 우이천이 둘레길 옆으로 흐른다. 우이령과 소귀천계곡에서 흘러온 우이천 역시 난개발에 하천 둑을 잃어버리고 도심 속 배수로로 전락해 있다. 자연에 대한 폭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절정에 이르고 있다. 어두워질 무렵 우이경전철 우이역에 도착하여 20구간을 끝낸다.
#둘레길 정보
구 간: 북한산 둘레길 16구간, 17구간, 18구간, 19구간, 20구간
날 짜: 2024년 12월 18일
날 씨: 맑음
일 행: 맑은물
코스: 회룡역 - 회룡골 - 보루길 - - 우이동
소요시간: 4시간 50분 (12시 25분 ~ 17시 15분)
교 통: 1호선 회룡역, 우이경전철 우이역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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