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공룡능선을 넘다 (2003년 6월 6일~7일)

2003. 9. 1. 00:08산행일기

작년(2002년) 여름에 설악산에서 돌아오면서 더불어한길의 여러 사람들과 약속을 했다. 다음에 꼭 공룡능선을 넘자고... 그 약속과 다짐을 한 지 10개월 여만에 설악산을 다시 찾았다.

(08:20) 동서울에서 설악산 용대리로 가는 버스를 탔다.

(11:50) 3시간 30분 걸려 백담사 계곡 입구의 용대리에 도착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 시원한 황탯국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국물이 시원하고 너무 좋았다. 밥을 먹고 셔틀버스가 출발하는 주차장으로 올라가면서, 선크림을 발랐다. 같이 온 2명의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될 정도로 듬뿍 발라 서로 보며 웃었다.

(13:00) 주차장에서 백담사 전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셔틀버스는 많은 대수가 운행되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13:10) 백담사 계곡을 바라보며 40여 분동 안 올라가던 버스가 멈췄다. 이제부터 백담사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13:40) 백담사까지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된다. 비가 오지 않아서 백담사 계곡 물이 많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원하다. 백담사는 입구만 돌아 나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넓던 길이 좁아졌고, 조금 험한 구간도 있지만, 대체로 경사가 급하지 않은 무난한 길이 이어진다. 옆으로는 맑은 수렴동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오늘은 희운각 대피소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도상에 표시된 시간을 줄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올랐다.

(15:00) 영시암에 도착했다. 영시암은 작은 암자로 북한산의 백운계곡에 있던 작은 암자가 생각났다.

(15:30) 수렴동 대피소는 가야동계곡과 구곡담 계곡이 갈라지는 곳이다. 벌써 자리는 모두 예약이 되었다고 한다. 왼쪽의 가야동계곡으로 오르면 희운각으로 바로 오를 수 있지만, 초행길이라 위험한 등산로인 가야동 쪽으로의 산행은 포기하고, 구곡담 계곡으로 갔다. 구곡담 계곡은 설악산의 대표적인 계곡인 천불동 계곡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계곡인데, 용소 폭포, 용이 폭포 등 폭포가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깎아지른듯한 용아장성릉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의 빠른 발걸음만큼이나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봉정암이 500m 남아서 이제 조금 여유 있게 가려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 가팔라진 길이 끝나지 않는다.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오르니 그곳이 깔딱 고개라고 누군가 가르쳐 준다. 깔딱 고개를 넘으면 바로 봉정암이다. 봉정암에는 밥줄이 길게 늘어져있고,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왠지 불안하다.(18:00)

우리는 소청을 지나 희운각까지 가야 하는데, 같이 간 일행이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한다. 여기서 잘 때도 없고, 비박 준비도 안 했는데 그들을 설득해서 발걸음을 옮겼지만, 한 사람은 무릎이 좋지 않아 발걸음이 상당히 느려졌다. 빗방울은 계속 떨어지고, 시간은 없고.. 최악의 경우 야간산행까지 해야 할 참이다.

(18:20) 봉정암을 떠나 20분 만에 도착한 소청 산장에도 사람들이 넘친다. 중청 산장의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봉정암, 소청 산장으로 밀리고 밀려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일행이 또다시 혼란스러워하고 당황해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러지 말고 목적지까지 가자고 일단 차분히 설득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감정적인 결정이나 대응은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18:50) 드디어 도착한 소청, 바람이 거세고, 빗방울이 간간히 뿌린다. 용야장성릉과 공룡능선이 구름 속에 가려졌다가 나왔다 한다.
소청을 떠나 희운각으로 출발하는데, 저 멀리 속초시의 불빛이 보인다.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기 간 어려워 보인다. 비 때문에 미끄러워진 길에 몇 번씩 미끄러지면서 내려가다 보니, 드디어 반가운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지만, 희운각에서 들려오는 사람 소리가 반갑기만 하다.

(20:10) 희운각에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몇몇 사람들은 구조대장을 따라 비선대까지 내려갔지만, 수십 명의 사람들은 겨우 비를 피하고 있었다. 자는 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일행은 '야간산행을 하자'는 다소 무모한 얘기를 했지만, 비박을 하자는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대피소에서 담요 3장을 빌려, 주위에서 주운 찢어진 우의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담요를 깔고, 한 장은 덮고, 나머지 한 장은 이슬을 피하기 위해 천막처럼 치고 세 사람은 체온을 나누며 설악산 희운각에서 따뜻한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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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어제밤 잠자리가 불편해서 일어나보니 6시가 넘었다. 이른 시간이지만 희운각 대피소에 머물렀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늦게 일어난것 같다. 아침은 희운각 대피소 옆을 흐르는 계곡물(가야동 계곡 상류)을 떠서 해먹는데, 다른 등산객은 햇반을 주로 먹는데, 직접 밥을 해먹는것은 우리밖에 없는것 같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계곡물에서 이를 닦고 그대로 버렸다. 그 물은 가야동계곡을 흘러, 백담사 계곡을 흘러, 소양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인데...최상류에서 이렇게 한다면 그 밑에 물이 어떻겠는가? 참 좋게 이해할 수도 없고, 취향을 무조건 욕만 할 수도 없구, 신경쓰지 말고 외면해 버리는게 나을듯 하다.
 
(8:20) 희운각 대피소를 출발하여, 무너미고개를 넘어 드디어 공룡능선으로 접어 든다.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희운각 대피소를 출발한지 30분만에 신선봉을 올랐다. 신선봉은 공룡의 머리다.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거친 공룡의 등뼈가 멀리 마등령으로 이어지고, 대청봉에서 서쪽으로는 서북능선이 굽이쳐 이어진다. 바로 앞에는 뾰족한 용아장성릉이 비경을 뽑낸다.

(09:22)신선봉에서 20분을 내려가서 도착한 곳은 잦은바위골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종종 길을 잃어버려 조난사고가 발생하는곳이라고 한다.
잦은바위골갈림길에서 오르막을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니, 이정표가 나타난다.(희운각 1.9km, 마등령 3.0km)
이제는 공룡능선의 중간부분을 가고 있는것인데, 앞으로 뒤로 뾰족한 기암괴석이 이어진다.
내리막길이 15분가량 내려가니, 샘터라는 표지판과 함께 물이 조르륵 흐르는 샘터가 나타났다.(10:05)
샘터에서는 희운각이 2.4km이고, 마등령이 2,5km이니, 공룡능선의 정중앙인것이다.

샘터를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온것만큼 기나긴 오르막길을 오르고(10:30),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섰다가 기나긴 오르막을 오르니 1275m봉 옆 고개가 나왔다.

(11:00)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간식도 먹고, 식사도 하면서 쉬고 있었다.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경이 이어진다. 일행중 한명은 옆 바위봉의 중간까지 올랐다 내려왔는데, 맑은 날씨인데 바람이 엄청 세다.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섰다가 오르막을 올랐는데, 이제 마등령이 1.5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왔다.(11:35)
또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섰다가 오르막을 올랐다.(11:45) 이렇듯, 공룡능선은 평지가 거의 없이 계속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된다.

(12:15) 어쩌면 마지막 봉우리일지도 모를 높은 봉우리의 옆을 돌아서니 저 멀리 말의 안장같이 부드러운 능선이 보인다. 아마도 저곳이 마등령인것 같다. 마지막으로 울퉁불퉁한 너덜지대를 지나 드디어 공룡능선을 넘어 마등령에 도착했다.

(12:50) 마등령에서는 오세암으로 갈 수도 있고, 황철봉을 지나 미시령으로 갈 수도 있고, 비선대로 하산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비선대로 하산하기 위해 오르막을 올라, 마등령 정상(1320m)에 올랐다.
저멀리, 신선봉에서부터 굽이쳐 이어온 공룡능선의 모습이 살아있는듯 움직이는것 같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10분정도 내려가면 샘이있지만, 가뭄이라 거의 말라있다. 샘을지나니 어디선가 더덕향이 풍겨온다. 하산길은 경사가 가파르다. 날씨가 더웠지만, 나무그늘이 시원하다.

비선대까지는 고도 1000미터 가까이를 거의 수직으로 내려서야 하기때문에 하산길이지만 다리에 무척이나 무리가 많이 가는 코스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오르는길은 무척이나 힘들것 같다.

(14:40)배고픔을 참고, 풀려가는 다리를 추스리며 겨우 비선대에 도착했다. 가뭄이라 천불동 계곡의 물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역시 천불동계곡이다. 배낭을 집어던지고 물로 들어갔다. 시원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천불동 계곡에서 라면에 밥을 먹고, 소주와 맥주를 한잔씩 걸치니 역시 이맛에 산행을 하는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 맛에 산행하는것은 아니지만..^^
(15:30) 주위를 정리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비선대를 지나 신흥사쪽으로 내려가는데, 작년가을 수해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다.
(17:20) 드디어 신흥사를 지나 매표소, 소공원에 도착했다. 1박 2일밖에 안 되는 산행길이지만, 거리로 따지면 무척이나 먼 거리를 걸어온 것이다. 예상하지 않았던, 비박도 하고... 뒤돌아보니 뿌듯함이 느껴지고, 설악산을 벗어난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공룡능선의 비경은 어떠한 글쟁이가 오더라도 글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직접 가서 보시라~


산행지 : 설악산 (강원 속초, 양양)

날   짜 : 2003년 6월 6일~7일

날   씨 : 맑음

코   스 : 용대리 - 백담사 - 봉정암 - 소청 - 희운각 - 공룡능선 - 비선대 

소요시간 : 1박 2일

일   행 : 하나사랑, 지누, 맑은물

교   통 : 시외버스 (동서울 -> 용대리, 속초-동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