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후기 2(2003년 7월26일)

2003. 9. 30. 12:45산행일기




2003년 7월26일 (노고단대피소 → 장터목 대피소)


밤새 옆사람 어깨에 부딛히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치다, 깨어보니 5시 15분이었다. 계획보다 늦은 시간이라 서둘러
즉석북어국과 어제 저녁 준비한 찬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배낭을 정리하다보니 6시 30분이 되어서야 노고단 대피소를 출발했다.
산장옆
이정표가 가리키는 천왕봉까지의 거리는 25.5km이다. 오늘은 장터목 대피소까지 갈 계획이니 24.6km를 가야한다.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산행시작은 대피소뒤의 노고단재를 오르는것으로 시작된다.
10분정도 오르막길을 올라 노고단재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을때에는
지리산 종주능선은 물론, 천왕봉까지 보인다고 들었지만, 아침 안개가 짙게 끼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노고단 일출을 찍어러 왔다가 야생화를
찍고 있는 전문사진사와, 단체사진을 찍고있는 일행을 뒤로 하고 내리막길로 향한다.

노고단재에서 길은 크게 험하지 않아서
빠른걸음으로 걸었다. 나뭇잎에 맺힌 이슬과 안개가 빗방을 처럼 후두둑 떨어지기도 한다. 30분을 가면 돼지평전이 시작된다.
멧돼지가
나타난다고 해서 돼지평전이라고 하는데, 약 1km정도 평평한 길이 계속되지만, 주위가 보이지 않으니 평지인지, 산인지 알 수는 없다.


노고단재를 출발한지 1시간만에 임걸령 샘터에 도착했지만, 물을 마시지는 않고 사진만 찍고 지나쳤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아저씨도 나처럼 단독산행을 하시는 분인데, 어디까지 가냐고 해서, 장터목까지 간다고 하니, 이시간에 좀 어려울것 같다고 하신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임걸령샘터를 지나고는 오르막길이다. 바람이 조금씩 불어, 안개가 걷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오르막을 올라 평지를
조금더 가니 오른쪽에 바위전망대 같은곳이 있어 올라가보니 피아골에 안개가 가득한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이 하루종일 본 유일한 지리산
계곡의 모습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름다운 운해를 보고 흐뭇한 마음에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와 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계곡이니, 봉우리니 하는 커다란 경치에만 너무 매달려있는것은 아닐까?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조금 가니 반야봉을 오르는 노루목 갈림길이 나왔다. 시간이 늦어서 반야봉은 포기하고 다음에 있는 삼도봉으로 향했다. 노루목에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일행이 시끌벅적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을 보니, 함께 산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씁쓸해 졌다.


다음 도착지 삼도봉(1522m)은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만나는 곳이라서 삼도봉이란 이름이 붙은것인데, 삼각 표석에 각
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삼도봉을 지나면 긴 나무계단이 화개재까지 이어진다. 노고단을 출발한지 2시간 10분만인 8시 40분에 도착한
화개재는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기 위한 공사를 하고 있었다. 화개재 북쪽은 뱀사골인데, 그곳에서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
한여성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인터넷 산행동호회고, 대구에서 왔다고 한다.

화개재를 지나면 토끼봉(1586m)을 오르게
되는데, 노고단을 출발한 이후 가장 길고 가파른 오르막이었지만, 앞서가는 노부부를 보니 힘들다는 생각도 못하겠다. 그리고, 실제로도
사전조사하면서 본것 만큼 힘든 오르막은 아니였다.

토끼봉을 지나면 다음 목적지는 연하천산장이 된다. 토끼봉에서 내리막과 평지과
이어지다가 또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오르막길을 오를때마다 점점 어깨에 부담이 더해온다. 다리에 오는 부담보다 어깨를 짇누르는 배낭의 무게때문에
30분이상 산행하기가 힘들다.
토끼봉과 연하천대피소 중간쯤 길옆에 어떤 가족이 쉬고있는데, 아이들이 6살, 8살 정도 되어 보인다. 그중
작은 아이가 엄마에게 말하길,
"다람쥐에게는 아무것도 안주는것이 다람쥐를 위한 길이다. 야생을 위한 길이다, 맞재?" "응" 그 말을
들으니 설악산의 길들여진 다람쥐가 떠올랐다. 훼손된 흙길과 풀과 나무는 오랜시간이 걸리면 어느정도 복원이 되겠지만, 길들여진 다람쥐의 입맛은
영원히 고칠 수 없을 것이다.

명선봉(1586m)을 넘어 연하천산장까지 대체로 편한길이 이어지지만, 안개는 걷힐 생각이 전혀
없나보다. 지금은 힘든것보다 안개가 걷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보니, 내 주위는 나무와 풀의 아름다운 녹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었듯, 나도 그냥 녹색의 어떠한 기운이 되어 저 숲속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하천산장에 도착하기 전에 총각샘이라는 샘터가 있다고 하지만, 찾을 수는 없었고, 나무계단길을 내려서니 시끄러운 연하천 산장이
나타났다. 10시 27분, 노고단대피소를 출발한지 4시간만이다. 산장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산장앞에는 물이 흘러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시는데, 차갑고 물맛이 좋다. 지리산 종주 능선길에서 가장 물이 풍부한 곳이 연하천산장일 것이다.
연하천 산장은 6년전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밤늦게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던곳인데, 그곳엔 철조망이 쳐져있었다. 그때 내가 텐트를 쳤던곳도 이제는 새로운 생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연하천에서 움푹패인 산행길을 따라가다, 음정(벽소령 옛길을 따라 백무동으로 하산할 수 있다.)
갈림길을 지나 오른곳이 삼각고지(삼각봉)다.
삼각고지에서 쉬는데, 임걸령 샘터에서 사진을 찍어주셨던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먼저 인사를
하고, 아저씨도 반가운듯 이얘기 저얘기하다가 맘이 맞아서 같이 산행을 하기로 했다.
혼자 산행하는것이 지겨워질려고 할때라 이야기 상대를
얻은것이 기뻤다. 나와 띠동갑인 아저씨는 부산에서 오셨고, 매주 산행은 한다고 했다.
삼각봉을 떠난지 30분뒤에 커다란 바위가 등을지고 서있는 형제봉을
지나(11:30) 주변이 확트인 바위가 있어 쉴려고 오르니 후끈 열기가 느껴진다. 해가 안개에 가려졌지만, 나무 그늘이 없는 바위는 이렇게
뜨거웠던 것이다. 주변 경치를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종주를 하기에는 좋은 날씨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능선길 저멀리 벽소령 대피소가
보인다.

휴식을 끝내고 벽소령 대피소를 향해 가는데 가까워 보이던 벽소령 대피소를 30분 걸려, 12시 15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바위가 많아
길이 험하고, 안개에 바위가 젖어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벽소령은 보통 지리산 종주 능선의 중간 지점이라고 한다. 노고단까지 14.1km,
천왕봉까지 11.4km 이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부산 아저씨는 벌써 점심을 드셨다고 하여 혼자 밥을 먹었다. 샘터가
대피소 옆 60m로 표시되었지만, 실제 150m는 되는것 같았다.
샘터에서 물을 떠와 햇반을 끓이고, 햇반을 데운물을 컵라면에 부었다.
이렇게 하면, 가스도 절약하고, 물도 절약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점심을 먹고 부산 아저씨와 다음에 북한산 종주, 부산의 금정산을
오르기로 하고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벽소령을 떠날무렵, 안개가 짙어져 안개비가 내리는데, 어제밤 노고단에서 얘기했던 캐나다 여성들이 도착했다. 대단한 여성들이다.

그리고, 벽소령에는 "지리산 공비 토벌 루트 안내도"라는 커다란 지도 표지판이 있다. "...해방이후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빨치산
사건..."이라는 설명과 함께‥‥‥





노고단재에
있는 돌탑




노고단에는
원추리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돼지조심!!



피아골 운해



녹색의
기운이 되어 숲을 떠돌고 싶다.



연하천 산장



현대사의 아픔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