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후기 3(2003년 7월26일)
2003. 10. 1. 20:52ㆍ산행일기
2003년 7월26일 오후 (벽소령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점심을 먹고, 벽소령을 출발한다. 오늘은 세석을 거쳐 장터목 대피소까지 가야한다.
이제 1시 12분이니, 천천히 가더라도 장터목대피소까지는 갈 수 있는 시간이다.
벽소령 대피소를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음정으로 하산할 수 있는곳까지 20분 정도는 평평한 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을 지나면 덕평봉(1521m)을 오르게 되는데, 경사가 급하지는 않지만, 앞에 가는 부산아저씨의 걸음이 오르막길인데도 느려지지 않는다. 평지에서나 내리막길에서나 오르막길에서나 항상 같은 속도로 산행을 하니 뒷쫓아 가는 나만 죽을 지경이다. 결국 오르막 중간쯤에서 아저씨를 포기하고 그냥 내 걸음으로 가다가 덕평봉을 넘어 내리막길에서 빠른걸음으로 따라 잡았다.
덕평봉을 지나면 선비샘이 있는데, 사람들이 밥을 해먹고 그릇을 씻고, 이를 닦고 있었다. 애써 못본척하며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선비샘을 지나고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거친길이 이어지는데,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곳도 있다. 칠선봉에 도착하기 전에 작은 봉우리에서 또 휴식을 취한다. 점심을 먹어서 그런지, 몸에 힘은 없고 오르막길만 나타나면 아주 느린걸음으로 오를 수 밖에 없다. 쉬는데도 바람은 안불고 안개, 아니 구름만 주위에 자욱하다. 옆에서 쉬던사람들도 '참 경치가 좋은곳인데...'하며 아쉬워한다.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목적지를 향해서 가야지.
10분 거리에 있는 칠선봉(1576m)을 돌아 계속 빠른 발걸음을 옮기는데, 부산아저씨와의 거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20분여를 가면 아주 가파른 나무계단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나무계단을 오르다보니, 계단 중간에서 쉬던 사람들이 모두 몇개나 되냐고 묻는다.
난 그냥 입에서 나오는데로, "200개요!" 라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 한다.(왜 그럴까?)
기나긴 나무계단을 오르고, 밧줄을 잡고 오르니 겨우 영신봉(1651m)이라는 팻말과 함께 주위에 고사목과 야생화가 많이 보인다. 영신봉에서 촛대봉까지는 넓은 세석평전이지만, 구름때문에 세석평전의 넓은 모습은 볼수가 없었다.
벽소령을 출발한지 2시간 10분만인, 3시20분 세석대피소 갈림길에 도착했다. 처음 계획으로는 3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무척이나 빨리 산행을 했고, 꽤나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부산아저씨는 이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로 해서 오늘 산행은 끝이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을 찍고 이제 다시 홀로 산행을 한다. 세석평전에는 다른곳보다 야생화가 더 많았고, 궁금하게 여겼던 보라색꽃이름이 비비추라는것도 알았다.
세석평전에서 사진을 몇장 찍으며 쉬었지만, 시간은 3시 30분.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지도상에 2시간 거리로 표시되어있으니, 여유있게 갈 수 있다. 천천히 주위 야생화를 관찰하며 몇걸음 가서 쉬고, 몇걸음 가서 쉬기를 반복하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오르막의 끝이 없다. 15분정도 오르니 촛대봉(1703m)라는 이정표가 있다. 해발 1700미터가 넘는곳, 지금까지 능선길 중에 가장 높은곳에 올라온것 같다. 세석을 출발한지 15분밖에 안지났지만, 너무 힘이 들어 촛대봉에서 15분을 쉬었다. 쵸코바를 먹고, 남은 과일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촛대봉을 넘어서 장터목 가는길도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것이 노고단쪽보다는 험하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장터목에서 오는 사람들, 세석에서 가는사람들을 많이 마주친다.
삼신봉에 도착하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구름이 바람에 날리며, 얼굴의 땀을 식혀 주었다. 바람이 부니 파란하늘이 잠깐나타나 날이 개는게 아는가 기대를 했지만, 끝내 구름은 없어지지 않았다.
삼신봉에서는 희미하게 장터목 대피소의 방송소리가 들려왔다. 어깨가 부서질듯 하고, 배낭을 받치는 허리가 뻐근하고, 발목이 욱신거려도, 이제 조금만 가면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한다.
삼신봉에서 내려와, 연하봉(1730m)을 거쳐, 장장 10시간35분의 산행을 끝내고 5시5분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장터목 대피소에 대기자 명단으로 등록했다가, 예약이 됐다는 메일을 받았으나, 확인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고, 예약이 다시 취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산에와서 따지면 뭐하겠냐 싶어, 그냥 이슬 피할 공간이나 알려달라고 해서, 화장실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화장실 옆이지만, 냄새는 안나고, 이슬과 바람을 막아주는 유리가 있어 괜찮은 공간이었다. 일단,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있는데, 젊은 여성 서너명이 내 자리를 침입했다. 겉으로는 긴장, 속으로는 반겼지만, 잠시 후 그들은 대기자에서 자리를 배정받아 대피소 안으로 떠나고, 그들과 일행인 남자들과 지내게 되었다.
저녁을 먹으려 취사장으로 다시 나와보니 대피소 곳곳에 사람이 넘친다. 취사장에도, 샘터에도, 밥먹는곳에도, 대피소 앞에서 벌써 잠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천왕봉 일출때문에, 백무동에서, 중산리에서,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다보니,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 샘터에서 치약으로 이를 닦고, 비누로 세수를 하고, 세재로 식기를 닦는 사람들도 있다. 조그만 아이들도 부모를 따라 아무생각없이 치약과 비누를 사용한다. 저 오염된 물은 중산리 계곡으로 흐르고, 계곡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세수를 하고, 목이말라 저 물을 마신다. 결국 자신이 버린물을 자기 입으로 먹는것이다. 산행을 하면서는 하루정도는 씻지 않고 지내는것도 좋은 경험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 옆에서 자야할 사람들은 같이 온 사람들하고 대피소 앞에 모여 놀고, 난 홀로 자리를 지켰다.
시간은 이제 겨우 8시를 넘어서고 있는데, 혼자 멀뚱멀뚱 있으려니 심심해서, 팩소주 하나들고 그들과 어울렸다.
대전에서 왔다는 그들과 나이차가 많지 않아서, 말이 잘 통했고, 함께 어울려 놀다보니 소등시간이 2시간이 지난 11시가 되어 버렸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로 왔는데, 메트리스가 없어서 등에 한기가 느껴진다. 장터목 산장에서는 예약되지 않는 사람에겐 모포를 빌려주지 않는다.
2003년 7월26일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체, 하루종일 자신을 숨긴 지리산의 모습을 찾아 능선을 걷고 또 걸었던 날인것이다.
영신봉을 오르는 나무계단, 200개는 훨씬 넘을듯.^^
세석평전의 비비추. 지리산에는 비비추가 참 많았다.
세석평전에 있는 세석대피소.
연하봉을 넘어, 야생화와 고사목.
장터목 대피소, 이름처럼 사람들로 시끄러웠다.
점심을 먹고, 벽소령을 출발한다. 오늘은 세석을 거쳐 장터목 대피소까지 가야한다.
이제 1시 12분이니, 천천히 가더라도 장터목대피소까지는 갈 수 있는 시간이다.
벽소령 대피소를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음정으로 하산할 수 있는곳까지 20분 정도는 평평한 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을 지나면 덕평봉(1521m)을 오르게 되는데, 경사가 급하지는 않지만, 앞에 가는 부산아저씨의 걸음이 오르막길인데도 느려지지 않는다. 평지에서나 내리막길에서나 오르막길에서나 항상 같은 속도로 산행을 하니 뒷쫓아 가는 나만 죽을 지경이다. 결국 오르막 중간쯤에서 아저씨를 포기하고 그냥 내 걸음으로 가다가 덕평봉을 넘어 내리막길에서 빠른걸음으로 따라 잡았다.
덕평봉을 지나면 선비샘이 있는데, 사람들이 밥을 해먹고 그릇을 씻고, 이를 닦고 있었다. 애써 못본척하며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선비샘을 지나고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거친길이 이어지는데,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곳도 있다. 칠선봉에 도착하기 전에 작은 봉우리에서 또 휴식을 취한다. 점심을 먹어서 그런지, 몸에 힘은 없고 오르막길만 나타나면 아주 느린걸음으로 오를 수 밖에 없다. 쉬는데도 바람은 안불고 안개, 아니 구름만 주위에 자욱하다. 옆에서 쉬던사람들도 '참 경치가 좋은곳인데...'하며 아쉬워한다.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목적지를 향해서 가야지.
10분 거리에 있는 칠선봉(1576m)을 돌아 계속 빠른 발걸음을 옮기는데, 부산아저씨와의 거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20분여를 가면 아주 가파른 나무계단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나무계단을 오르다보니, 계단 중간에서 쉬던 사람들이 모두 몇개나 되냐고 묻는다.
난 그냥 입에서 나오는데로, "200개요!" 라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 한다.(왜 그럴까?)
기나긴 나무계단을 오르고, 밧줄을 잡고 오르니 겨우 영신봉(1651m)이라는 팻말과 함께 주위에 고사목과 야생화가 많이 보인다. 영신봉에서 촛대봉까지는 넓은 세석평전이지만, 구름때문에 세석평전의 넓은 모습은 볼수가 없었다.
벽소령을 출발한지 2시간 10분만인, 3시20분 세석대피소 갈림길에 도착했다. 처음 계획으로는 3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무척이나 빨리 산행을 했고, 꽤나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부산아저씨는 이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로 해서 오늘 산행은 끝이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을 찍고 이제 다시 홀로 산행을 한다. 세석평전에는 다른곳보다 야생화가 더 많았고, 궁금하게 여겼던 보라색꽃이름이 비비추라는것도 알았다.
세석평전에서 사진을 몇장 찍으며 쉬었지만, 시간은 3시 30분.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지도상에 2시간 거리로 표시되어있으니, 여유있게 갈 수 있다. 천천히 주위 야생화를 관찰하며 몇걸음 가서 쉬고, 몇걸음 가서 쉬기를 반복하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오르막의 끝이 없다. 15분정도 오르니 촛대봉(1703m)라는 이정표가 있다. 해발 1700미터가 넘는곳, 지금까지 능선길 중에 가장 높은곳에 올라온것 같다. 세석을 출발한지 15분밖에 안지났지만, 너무 힘이 들어 촛대봉에서 15분을 쉬었다. 쵸코바를 먹고, 남은 과일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촛대봉을 넘어서 장터목 가는길도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것이 노고단쪽보다는 험하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장터목에서 오는 사람들, 세석에서 가는사람들을 많이 마주친다.
삼신봉에 도착하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구름이 바람에 날리며, 얼굴의 땀을 식혀 주었다. 바람이 부니 파란하늘이 잠깐나타나 날이 개는게 아는가 기대를 했지만, 끝내 구름은 없어지지 않았다.
삼신봉에서는 희미하게 장터목 대피소의 방송소리가 들려왔다. 어깨가 부서질듯 하고, 배낭을 받치는 허리가 뻐근하고, 발목이 욱신거려도, 이제 조금만 가면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한다.
삼신봉에서 내려와, 연하봉(1730m)을 거쳐, 장장 10시간35분의 산행을 끝내고 5시5분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장터목 대피소에 대기자 명단으로 등록했다가, 예약이 됐다는 메일을 받았으나, 확인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고, 예약이 다시 취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산에와서 따지면 뭐하겠냐 싶어, 그냥 이슬 피할 공간이나 알려달라고 해서, 화장실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화장실 옆이지만, 냄새는 안나고, 이슬과 바람을 막아주는 유리가 있어 괜찮은 공간이었다. 일단,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있는데, 젊은 여성 서너명이 내 자리를 침입했다. 겉으로는 긴장, 속으로는 반겼지만, 잠시 후 그들은 대기자에서 자리를 배정받아 대피소 안으로 떠나고, 그들과 일행인 남자들과 지내게 되었다.
저녁을 먹으려 취사장으로 다시 나와보니 대피소 곳곳에 사람이 넘친다. 취사장에도, 샘터에도, 밥먹는곳에도, 대피소 앞에서 벌써 잠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천왕봉 일출때문에, 백무동에서, 중산리에서,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다보니,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 샘터에서 치약으로 이를 닦고, 비누로 세수를 하고, 세재로 식기를 닦는 사람들도 있다. 조그만 아이들도 부모를 따라 아무생각없이 치약과 비누를 사용한다. 저 오염된 물은 중산리 계곡으로 흐르고, 계곡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세수를 하고, 목이말라 저 물을 마신다. 결국 자신이 버린물을 자기 입으로 먹는것이다. 산행을 하면서는 하루정도는 씻지 않고 지내는것도 좋은 경험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 옆에서 자야할 사람들은 같이 온 사람들하고 대피소 앞에 모여 놀고, 난 홀로 자리를 지켰다.
시간은 이제 겨우 8시를 넘어서고 있는데, 혼자 멀뚱멀뚱 있으려니 심심해서, 팩소주 하나들고 그들과 어울렸다.
대전에서 왔다는 그들과 나이차가 많지 않아서, 말이 잘 통했고, 함께 어울려 놀다보니 소등시간이 2시간이 지난 11시가 되어 버렸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로 왔는데, 메트리스가 없어서 등에 한기가 느껴진다. 장터목 산장에서는 예약되지 않는 사람에겐 모포를 빌려주지 않는다.
2003년 7월26일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체, 하루종일 자신을 숨긴 지리산의 모습을 찾아 능선을 걷고 또 걸었던 날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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