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은 배움이다. 계룡산 산행기(2001년 9월 16일)
2001. 11. 4. 15:18ㆍ산행일기
초가을 산행에 인생을 배웁니다.
(계룡산을 다녀와서)
<사진생략>
관음봉에서 바라본
동학사 계곡 ⓒ2001 엄준용
동학사 입구의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이슬에
등산화와 바지가랑이가 젖었지만, 오솔길 옆의 풀과 나무에서 가을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습니다. 산속의 아침공기를 깊이 들여 마셨다 뱉으니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듯 합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이런 상큼함이 너무 좋았는지, 흥겹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 속을 벗어나 봐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조용필, 여행을 떠나요)
가을 공기에 취하고, 노래에 취하고, 가파른 오르막길이지만 우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단숨에 능선길까지 올랐습니다. 오늘 가야할 작은 봉우리 몇 개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천황봉이 보입니다.
일단, 우리는 오뉘탑을 향해서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산길을 따라 갔습니다. 얼마쯤 가다보니, 일행중에 한사람이 조금씩 뒤처집니다.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춰서 걸으며, 함께 하는 산행의 매력을 생각해봅니다. 전문산악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들의 산행이다 보니, 평소 체력이 좋아 산행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힘들어하면서 뒤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성들이 좀 더 힘들어하지만, 남성보다 산행을 더 잘하는 여성도 많습니다. 하지만, 함께 산행을 하는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도와가며 산행을 하게 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산행 중에 힘이 들다고 뒤처진 사람을 그냥 두고 먼저 가는 상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아마추어 산행처럼 구성원끼리 서로 도와가며, 의지해 가며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두 생각의 차이, 신체의 차이가 있고, 사는 방식이 틀리지만, 결국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잖아요. 차이점을 인정해 주고, 자신이 가진 작은 힘으로 서로 도와가며 살면 참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정상에 올라 함께 함성을 외치며 환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아직, 산행은 절반도 못했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네요.
아무튼, 길옆의 이정표는 오뉘탑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었고, 이정표를 보고 일행은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에 노래도 부르고, 큰소리로 웃기도 했는데, 암자에서 조용히 산행을 하라는 경고 방송이 나왔습니다. 오르막길이라 미처 보지 못했는데 바로 위에 오뉘탑이 있고, 작은 암자가 있더라구요.
오뉘탑은 큰탑과 작은탑이 오누이처럼 사이 좋게 서있는 탑인데, 암자에서 불공을 드리던 스님과 호랑이가 물고온 처녀가 평생 남매로 지내며 불공을 드렸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오뉘탑옆의 암자에서 물병을 채우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삼불봉으로 향했습니다.
20여분 올라 금잔디 고갯길과 자연성능이 나누어지는 삼불봉 고개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는 술과 안주,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한 산 속에서 저런 것을 팔아, 자연을 찾은 사람을 실망시켜야 하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막걸리 한잔씩하고 가는 등산객들을 보니, '힘든 산을 오르는 길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군침이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거든요. 대신, 우리는 준비해간 초컬릿을 나눠먹으며 악(?)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삼불봉은 서너개의 철계단을 이용하여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삼불봉에서 자연성능을 거쳐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계룡산에서는 가장 험하다고 들었지만, 힘들기보다는 아기자기한 산세가 예뻐 보입니다. 동학사로 가라앉듯 미끄러지는 계곡, 넉넉함을 안겨주는 들녘, 옥빛 저수지가 산아래 놓여 있습니다. 머리 위에는 새파란 하늘이 계룡산의 초가을을 비춰줍니다. 자연성능을 가면서는 일행들과 얘기를 나누다가도, 바위 봉우리가 있으면 몇몇이 모여 '야호'를 소리쳤습니다. 다른 산들과는 달리 메아리가 빨리 대답을 해줍니다. 야호!
삼불봉에서 1시간 정도를, 산 아래에서는 4시간 남짓 걸어 도착한 관음봉(816m). 우리는 이제 더 올라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곳까지 왔습니다. 계룡산의 정상인 천황봉에는 군사시설로 보이는 거대한 안테나(?)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관음봉이 실제로 계룡산의 정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팔각정 옆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갑사쪽으로 향하는 산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잠시나마,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오만해졌기 때문일까요? 올라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남았는가를 물을 때면, 조금만 가면 된다고 가볍게 말해 버립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오르는 사람은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습니다. 희망을 주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내 자신에게 말해보지만, 조금전에 지났던 사람들은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요? 그렇다고 힘들어하는 사람한테 한참을 더 올라가야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고, 난감한 문제네요.
연천봉으로 갈라지는 길에서부터 갑사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가파릅니다. 가뭄때문에 계곡물이 말라서 물을 구하기는 힘들지만,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따가운 햇살을 가려줘서 다행입니다. 관음봉에서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 갑사에 도착했습니다. 갑사주변 많은 문화재들은 다음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고, 서둘러 공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라디오에서는 금방이라도 중동에서 전쟁이 날것처럼 시끄럽습니다.
계룡산은 창밖으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사진 생략>
▲ 오뉘탑
남매탑, 청량사지쌍탑이라고도 불린다.
ⓒ2001 엄준용
오마이뉴스 기사
일행 중 한 사람은 이런 상큼함이 너무 좋았는지, 흥겹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 속을 벗어나 봐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조용필, 여행을 떠나요)
가을 공기에 취하고, 노래에 취하고, 가파른 오르막길이지만 우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단숨에 능선길까지 올랐습니다. 오늘 가야할 작은 봉우리 몇 개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천황봉이 보입니다.
일단, 우리는 오뉘탑을 향해서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산길을 따라 갔습니다. 얼마쯤 가다보니, 일행중에 한사람이 조금씩 뒤처집니다.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춰서 걸으며, 함께 하는 산행의 매력을 생각해봅니다. 전문산악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들의 산행이다 보니, 평소 체력이 좋아 산행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힘들어하면서 뒤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성들이 좀 더 힘들어하지만, 남성보다 산행을 더 잘하는 여성도 많습니다. 하지만, 함께 산행을 하는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도와가며 산행을 하게 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산행 중에 힘이 들다고 뒤처진 사람을 그냥 두고 먼저 가는 상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아마추어 산행처럼 구성원끼리 서로 도와가며, 의지해 가며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두 생각의 차이, 신체의 차이가 있고, 사는 방식이 틀리지만, 결국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잖아요. 차이점을 인정해 주고, 자신이 가진 작은 힘으로 서로 도와가며 살면 참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정상에 올라 함께 함성을 외치며 환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아직, 산행은 절반도 못했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네요.
아무튼, 길옆의 이정표는 오뉘탑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었고, 이정표를 보고 일행은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에 노래도 부르고, 큰소리로 웃기도 했는데, 암자에서 조용히 산행을 하라는 경고 방송이 나왔습니다. 오르막길이라 미처 보지 못했는데 바로 위에 오뉘탑이 있고, 작은 암자가 있더라구요.
오뉘탑은 큰탑과 작은탑이 오누이처럼 사이 좋게 서있는 탑인데, 암자에서 불공을 드리던 스님과 호랑이가 물고온 처녀가 평생 남매로 지내며 불공을 드렸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오뉘탑옆의 암자에서 물병을 채우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삼불봉으로 향했습니다.
20여분 올라 금잔디 고갯길과 자연성능이 나누어지는 삼불봉 고개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는 술과 안주,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한 산 속에서 저런 것을 팔아, 자연을 찾은 사람을 실망시켜야 하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막걸리 한잔씩하고 가는 등산객들을 보니, '힘든 산을 오르는 길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군침이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거든요. 대신, 우리는 준비해간 초컬릿을 나눠먹으며 악(?)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삼불봉은 서너개의 철계단을 이용하여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삼불봉에서 자연성능을 거쳐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계룡산에서는 가장 험하다고 들었지만, 힘들기보다는 아기자기한 산세가 예뻐 보입니다. 동학사로 가라앉듯 미끄러지는 계곡, 넉넉함을 안겨주는 들녘, 옥빛 저수지가 산아래 놓여 있습니다. 머리 위에는 새파란 하늘이 계룡산의 초가을을 비춰줍니다. 자연성능을 가면서는 일행들과 얘기를 나누다가도, 바위 봉우리가 있으면 몇몇이 모여 '야호'를 소리쳤습니다. 다른 산들과는 달리 메아리가 빨리 대답을 해줍니다. 야호!
삼불봉에서 1시간 정도를, 산 아래에서는 4시간 남짓 걸어 도착한 관음봉(816m). 우리는 이제 더 올라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곳까지 왔습니다. 계룡산의 정상인 천황봉에는 군사시설로 보이는 거대한 안테나(?)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관음봉이 실제로 계룡산의 정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팔각정 옆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갑사쪽으로 향하는 산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잠시나마,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오만해졌기 때문일까요? 올라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남았는가를 물을 때면, 조금만 가면 된다고 가볍게 말해 버립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오르는 사람은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습니다. 희망을 주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내 자신에게 말해보지만, 조금전에 지났던 사람들은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요? 그렇다고 힘들어하는 사람한테 한참을 더 올라가야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고, 난감한 문제네요.
연천봉으로 갈라지는 길에서부터 갑사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가파릅니다. 가뭄때문에 계곡물이 말라서 물을 구하기는 힘들지만,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따가운 햇살을 가려줘서 다행입니다. 관음봉에서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 갑사에 도착했습니다. 갑사주변 많은 문화재들은 다음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고, 서둘러 공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라디오에서는 금방이라도 중동에서 전쟁이 날것처럼 시끄럽습니다.
계룡산은 창밖으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사진 생략>
▲ 오뉘탑
남매탑, 청량사지쌍탑이라고도 불린다.
ⓒ2001 엄준용
오마이뉴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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