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16. 23:58ㆍ산행일기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청년들의 등산모임 더불어한길의 생일은 3월 9일로, 올해로 벌써 7번째 생일을 맞게 되었다. 모임에서 만나 결혼에 성공한 먼발치에서-은빛날개의 집들이 겸, 회원인 봄날의 생일 축하 겸, 신임 운영진 선출 겸 일석삼조 모임에 참석하여, 토요일 밤새도록 놀다가 일요일 아침 봄날과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주중에 때 아닌 봄눈이 내려서 경기도 지붕 가평에 가면 눈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봄날과 무작정 가평으로 출발한다. 떠나면서 목적지를 연인산으로 정했는데, 청평을 지날 무렵 호명산 너머로 하얀 머리를 한 산이 눈에 들어왔고, 그 산이 명지산인 것 같아 명지산으로 목적지를 급하게 변경한다. 익근리 명지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산손님을 싣고 온 버스가 여러 대 서있다.
(12:10) 매표소 아저씨의 친절한 안내를 받고, 산행을 시작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익근리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로 인해 산이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
평소에도 멋진 계곡이었겠지만, 오늘 익근리 계곡은 더 매력적이다. 주중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고, 바위에는 얼음이 투명하게 얼어있지만, 물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그 옆으로는 버들강아지 나무와 생강나무 꽃망울이 봄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산새 소리도 오랜만에 들어본다.
매표소를 지나 한동안 질퍽이던 산길이 승천사를 지나고, 명지폭포 입구를 지나 깊은 계곡으로 들어갈수록 눈 쌓인 길로 바뀌더니, 정상으로 오르는 두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부터는 눈길만 계속 이어진다. 하얀 눈이 쌓여있어도 햇살은 따뜻한 것을 보면 명지산에도 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봄날과 둘이 산행을 하다 보니, 쉬지도 않고 계속 걷는다. 하지만, 계곡이 끝나고 가파른 길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눈밭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봄날의 배낭에서 언제 챙겼는지, 어제 집들이 때 먹던 부침개가 나온다. 어제는 배가 불러 별로 손이 가지 않던 음식이었는데, 오늘은 참 반갑다. 사물에 대한 태도가 참 주관적이다.
봄날은 이름만큼이나 참 평화로운 친구인데,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며 목소리 큰 것이 주관이 뚜렷한 것으로 여겨지는 요즘 시대에 말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14:15) 짧은 휴식을 끝내고,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지고, 온몸에선 후끈거리며 땀이 난다. 힘이 든다고 느낄 무렵, 그동안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조망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안 가서 명지 2봉 -백둔봉 갈림길을 왼쪽으로 보내고, 우리는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서니, 차가운 겨울바람이 뺨을 때린다. 귀목봉, 한북정맥 골짜기에서 불어온 바람은 한겨울 바람보다 더 매섭다. 하지만, 귀목봉-청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그 주위의 골짜기들의 눈 덮인 모습에 잠시 추위를 잊는다.
(14:45) 능선에 올라서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명지산 정상에 도착한다. 해발 1267미터, 경기도에서는 화악산 다음으로 높은 산인데, 날씨가 좋아서 조망은 막힘이 없다. 북동쪽의 화악산과 수덕산, 백둔봉, 그 너머 연인산과 한강, 그 너머로 뾰족한 백운봉과 용문산, 상판리 일대, 운악산, 귀목봉, 청계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의 바람은 한겨울보다 더 차가웠지만, 배낭에서 모자를 꺼내 귀까지 푹 눌러쓰고, 주변 풍광을 보고 또 본다. 앞으로 10개월 가까이 이렇게 하얀 겨울산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마음속에 많이 담아 두고 싶다.
(15:20) 겨울산의 모습을 많이 보고 있지만 더 머물고 싶어진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때 길이 막힐까봐 익근리로 하산을 한다. 내려가는 길은 한동안 능선을 타야 하는데, 강씨봉과 명지산 사이 골짜기에서 얼굴이 마비될 정도로 찬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에 만들어진 거대한 눈 언덕의 모습이 이채롭다.
능선을 내려서 계곡길로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람이 사라진다. 수많은 계단길을 내려서서 두어 시간 전에 지났던 갈림길에 도착한다.
갈림길 부터는 올라갈 때 지났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인데, 익근리 계곡은 올라오며 봤던 계곡과 다른 계곡의 느낌이 들만큼 다양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16:45) 올라갈 때 지나쳤던 명지폭포를 보기 위해 계곡으로 내려간다. 명지폭포는 반쯤 녹아 물이 콸콸 떨어지고 있다. 얼어붙은 겨울 폭포도 아니고 시원한 여름 폭포도 아니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명지폭포를 뒤로하고 등산길로 올라와 승천사를 지나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40분.
많은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는 3월 초중순에 겨울산을 보고 왔더니 마치 계절의 시계를 거슬렀다가 돌아 온 느낌이든다. 혼탁한 세상을 뒤로하고 가평의 청정지역에 갔다온 것이니, 시간을 거스르지는 못하고 공간 이동을 한것일까?
어쨌든 자연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가는 세상은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가며 충분히 선택하고 이동할 수 있는 미래라는 생각을 하며 혼잡한 대도시로 돌아온다.
산행지 : 명지산 (가평, 1267m)
산행날짜 : 2007년 3월 11일
날씨 : 맑음
산행시간 : 5시간 30분 (12:10~17:40)
산행코스 : 익근리(주차장) -승천사 -갈림길 -명지 2봉 갈림길 -정상(명지 1봉) -갈림길-명지폭포 -승천사 -익근리
동행 : 2명 (맑은물, 봄날)
교통 : 승용차(서울-익근리 2시간)
[명지산 포토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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