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변한다. 청계산 국사봉만 빼고 (2007.3.25)

2007. 4. 4. 23:46산행일기

회사 후배와 밤늦게까지 취중 토론을 하다가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해가 중천이다. 더불어한길 3월 정기산행 날인데 늦잠을 잔 것이다. 부랴부랴 짐과 후배를 챙겨서 인덕원역으로 향한다. 약속시간보다 꽤 늦은 시간에 인덕원역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먼발치에서-은빛날개 부부는 기다림에 지쳐 근처 화원에 꽃구경을 가고 없다. 하는 수 없이, 후배와 둘이서만 청계산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더불어한길 정기산행 날인데 더불어한길 사람들이 하나도 없이 산행을 하려니, 버스에서 조금 아쉬운 생각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20대 후반~30대 초중반의 나이대에 접어들어서 요즘 바쁘다. 직장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결혼이나 연애도 해야 하고 다들 바쁜 삶을 사는 것 같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나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 그저 친목산행만 하는 동호회가 삶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는 현상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운영진이 잘하고 있는가? 회원들이 산행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더불어한길을 중심으로 고민해 볼 문제가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미친 듯이 일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을 즐기는 사람들도 없지 않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공부하여,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돈을 벌어 여유와 행복을 구매하는 것이 주류의 삶이다.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이렇게 산행의 여유를 갖는 것도 사치일 수 있다.
그렇게 사는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경쟁이 아니라 서로 나누고 돌보며 여유를 찾으며 사는 길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더라도, 꿈꿔 볼 수 있을까? 다른 세상을 꿈꿔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세계 최장 노동시간의 불합리함을 얘기해 봤자, 상대방은 그저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이고 말 것이다.

상황은 이미 벌어진 것이니 오늘은 후배와 즐겁게 산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인덕원역을 떠난 마을버스는 청계골 입구에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를 구불구불 돌아서 청계사천을 따라 한적한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버스 창밖으로 한때 유명했던 개구리 논이 마른 밭으로 변해 버린 것이 보인다. 그냥 그렇게 세상은 변해가는가 보다. 말없는 개구리는 인간을 탓하지는 않고, 그냥 살기 좋은 다른 동네로 이사 갔겠지? 이웃 동네가 개발되면, 또 다른 이웃 동네로 가고, 몇 년 뒤에 이웃으로 또 이동하고...

마을버스 종점인 청계사 주차장에서 내려 청계사로 향한다. 그동안 청계사를 찾았을 때 보다 오늘 유난히 사람들이 많다. 청계사는 불자와 등산객으로 혼잡한 가운데, 청아하고 깨끗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은 청계사 왼쪽을 돌아 절고개를 오르는데, 어느새 노란 생강나무 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중부지방의 산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이 생강나무 꽃이라 반갑다. 아직 조금 이른 진달래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절고개를 지나 후배와 둘이 걷는 산길에 그리 급할 것은 없다. 굳이 한 곳에 오래 앉아서 쉴 것도 없이 잠깐잠깐 멈췄다 가는 것이 쉬는 것이다. 회사에선 제품 개발기간에 쫓겨 눈코 뜰 새 없이 지내지만, 산에 오면 좋은 것이 무엇일까? 느리게 걸으며 잠시 여유를 찾을 수 있어 산에 오면 좋다.

매봉과 이수봉 갈림길에 있는 노점의 동동주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어 한잔 마시고 산행을 한다.
망경대와 석기봉 방향 대신 이수봉을 지나 국사봉으로 향한다. 이수봉을 지나니 등산객 숫자가 많이 줄어든다. 후배와 산중 잡담을 하며 걷다 보니 금세 국사봉 정상이다. 날씨가 좋으면 남쪽으로 굽이치는 백운산, 광교산 능선과 수리산, 모락산, 관악산 등의 조망이 시원할 텐데 오늘은 황사에 시야가 좋지 않아 아쉽다.

국사봉을 지나 청계사 계곡을 향해 하산을 한다. 이수봉으로 올라올 때와 달리 청계사 계곡쪽 하산 길은 경사가 꽤 급하다.
계곡에 도착하니 주중에 비가 내려서 계곡물이 졸졸졸 흐른다. 시원한 여름 계곡과 달리 봄 계곡은 아기자기함이 느껴진다.
청계사 주차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인덕원을 거쳐 전철을 타고 인천 집으로 돌아온다.

* 산행 후기의 후기
성인군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인 탓에 사람에게 실망하고, 사람을 멀리하고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산은 나에게 한 번도 실망을 안겨준 적이 없었다. 다만, 일방적으로 산에 대하여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산행할 때 아쉬웠던 적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과도한 욕심 때문이었지, 언제나 그 모습의 산이 나에게 실망을 준 것은 아니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나의 일방적인 욕심은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받아들이며, 사람을 사랑해야겠다.


- 산행지 : 청계산(경기 과천, 의왕)
- 날  짜 : 2007년 3월 25일
- 날  씨 : 맑음(황사)
- 산행시간 : 3시간 5분(12:45~15:50)
- 산행코스 : 주차장- 청계사- 절고개- 갈림길- 이수봉- 국사봉-청계사 계곡-주차장
- 동  행  : 맑은물과 회사 후배 JM
- 교  통  : 전철 4호선 인덕원역, 매시 20분 청계사행 버스 출발


[포토 산행기]

청계사 마을버스 종점에서 출발
이른 진달래 꽃 망울
생강나무 꽃
청계산 청계사
청계사 와불, 누워있는게 편하죠.
청계사 동종, 보물 제 11-7호
청계사 동종 설명
[청계사를 지나 전망대에서 본 석기봉과 망경대]
이수봉
국사봉
국사봉에서 어느 방향인지, 첩첩산중
청계사천 상류
청계사천 상류 & 청계사 아래